욕이 나왔다
#1. 에이 C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시계를 보니 짐작했던 시간보다 훨씬 더 흘러 버렸다.
뭘 했다고 시간이 이리 흘렀어
한 것도 없는데 벌써 이 시간이냐고
에이 C
왜 이렇게 시간이 나한테 잔인한 거야?
나한테 왜, 왜 나한테만 이러는 거냐고
#2. 시간이 쏜살같다
시간의 유속을 알기 어려웠다.
아니 그런 깨달음은 언감생심
시간은 그냥 가는 것,
절로 흐르는 것
그것이 내가 아는 시간이었다.
요즘처럼 '시간이 쏜살같다'란 말을 실감한 때도 없었던 것 같다.
이런 깨달음은 굳이 필요하지 않은데
절로 깨치고 말았다.
#3. 시간아, 천천히 흘러다오
제대로 이룬 게 없다고!
뭘 했다고 이러냐고, 뭘 했다고 지금에 와 버린 거냐고!
시간에게 따져 물어보지만
시간은 묵묵부답, 지 가던 대로 유유히 가고 만다.
하염없이 흐르는 시간은 야속하기 그지없다.
속절없는 시간은 잔인하기만 하다.
한 일은 없지만, 하고 싶은 일은 많은 요즘이다
그러니 부탁한다. 손발을 싹싹 빌어서라도.
#4. 잔인하다.
얼마 전 이효석의 <계절의 낙서> 중 구절들을 보며 뜨끔했었다.
세상에 남아도는 사람이라니!
가을이 깊어지면
나는 거의 매일같이 뜰의 낙엽을
긁어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날마다 하는 일이건만
어느덧 잔뜩 흩날려서는 떨어져 쌓인다.
낙엽이란 참으로 이 세상에 남아도는
사람의 수효보다도 많은가 보다.
가을은 때론 잔인한 계절이기도 하겠다 싶었다.
가을을 넘어 선 이 겨울이 더 잔인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흩날려 땅에 떨어져도 언제 왔었는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눈발처럼
이 세상에 남아도는 사람들처럼 무명씨가 되어
날 알아봐 주는 이 없이 사라지게 될까 봐
#무섭다. 울게 될까 봐
괘념 없이 흘려보내고 흐르는 것을 괘념치 않았던
그 시간들이 아깝고 아깝다
시간에 그냥 몸을 맡기면 되는 줄 알았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시간의 속도에 맞춰 몸만 고스란히 노화되었다.
무섭다. 이 시간이. 어느새 또 흘러가 버려
'한 것도 없는데 가버렸냐'고 울게 될까 봐
시계를 째려본다.
네가 가는 속도에 뒤처지지 않겠다고 힘껏 어깨를 추켜세워본다.
내가 이긴다. 내가 이긴다 이 시간을. 그렇게 믿어본다.
울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또 울기는 싫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