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을 떠나는 새벽, 여우를 만났다.

APPLE GREEN

by 원성진 화가

새벽 2시.

도둑고양이처럼 문을 밀어내고, 숨소리도 죽여가며 거리로 나섰다. 발걸음은 바닥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듯 가볍게 떠 있었고, 도시의 어둠은 나를 모른 척하면서도 은근히 감싸 안았다.


새벽의 런던은 현실 위에 얇게 덧씌워진 또 하나의 막처럼, 손을 대면 사라질 것 같은 감각으로 놓여 있었다. 불빛들은 차례로 호흡을 거두고 있었고, 옅은 안갯속에서 가로등은 녹색에 가까운 빛을 서서히 번지게 했다.


차가운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드는 순간, 나는 떠난다는 사실을 몸으로 이해했다.


어제는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장식처럼 반짝였고, 사람들은 서로의 체온을 확인하듯 미소를 건네며 거리를 채웠다. 캐럴은 공기 위를 부유했고, 빛들은 밤을 부드럽게 감싸며 축복처럼 내려앉았다.

그러나 지금, 그 모든 것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가라앉아 있었다.

도시도, 나도, 말없이 다음 장면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기술의 빛이 물러난 자리에서 감각이 다시 깨어난다.

전류가 멈춘 새벽, 인간은 다시 ‘몸’이라는 원초적인 매체로 돌아온다.

APPLE GREEN.

그것은 기계의 냉기와 생명의 온기 사이, 아주 짧은 간격으로 깜박이는 경계의 색이다.


차에 올라 문을 닫는 순간, 바깥의 세계는 단절되고 내부의 작은 우주가 완성되었다.

엔진을 켜자 진동이 손끝으로 번졌다. 아직 낯선 방향의 운전, 그러나 텅 빈 도로는 나를 밀어내지 않고 조용히 받아들였다.


도시를 빠져나가던 찰나, 길가의 어둠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여우였다.

가늘고 유연한 몸, 빛을 머금은 털, 지나치게 선명한 눈. 그것은 이 도시의 질서에 속하지 않는 존재처럼 보였다. 여우는 잠시 나를 향해 시선을 두었다. 아주 짧은 정지. 그리고 흔적도 없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도시의 회로 어딘가에서 튀어나온 미세한 균열. 매끄럽게 다듬어진 기술의 표면을 가로질러, 자연의 감각이 순간적으로 되살아나는 틈. 나는 인간과 기계, 도시와 숲이 겹쳐지는 얇은 경계 위에 서 있었다.


포크스톤으로 향하는 길.

고속도로 위에는 안개가 낮게 내려앉아 있었고, 헤드라이트는 그것을 가르지 못한 채 흐릿한 우윳빛으로 번져갔다. 도로는 유동하는 표면, 감각 속에서만 유지되는 하나의 흐름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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