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의 자유는 색을 볼 수 없다/공항 폭탄

COLORLESS

by 원성진 화가

2025/01/08/08:00


3층 다락방에서 보낸 따스한 밤은 꿈결처럼 지나갔다. 아침이 밝아오자, 우리는 짐을 챙기며 조용히 숙소를 나섰다. 밤새 내린 눈은 마치 이별을 준비하듯 모든 것을 하얗게 덮어버렸다. 주차장에 세워둔 자동차는 눈 속에 갇힌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눈은 언제나 ‘끝’의 형상으로 내린다. 그러나 그 하얀 덮개는 종결이 아니라, 잠시의 정지다. 세상은 매 순간 덮였다가 녹으며, 사라지면서 다시 태어난다. 인간의 기억도 그와 같다. 흩날리며, 쌓이고, 결국은 또다시 녹아 흐르는 순환의 물질.


차 위에 쌓인 눈을 헤라로 긁어내는 동안, 독일 겨울의 날카로운 공기도 피부를 긁었다. 입김이 하얗게 흩어지며 얼어붙은 손끝이 뻣뻣해졌다. 발 밑에는 눈이 사각사각 소리를 냈고, 차가운 공기 속에서 숨소리조차 차분해졌다. 눈과 얼음을 모두 치우고 차를 데우기 시작하자, 엔진 소리와 함께 이른 아침의 고요가 서서히 깨졌다. 인간은 반복 속에서 새로움을 느낀다. 매일의 행위조차도, 의식이 깨어 있으면 의식의 풍경이 된다. 눈을 긁어내는 단조로운 동작 속에서도, 세계는 다시금 ‘시작되고 있었다.’


출발 준비를 마친 우리는 유럽 여행의 시작점이자 끝점인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공항을 향해 길을 나섰다. 도로 위에서 속도를 올릴 때마다 독일의 아우토반이 선사하는 짜릿한 감각이 몰려왔다. 스피드 리미트가 없는 도로에서 자유롭게 가속하며, 속도가 주는 해방감에 빠져들었다. 속도는 인간을 공간의 지배자로 만든다. 그러나 빠를수록 시간은 느리게 다가온다. 바람이 찢어지는 그 순간, 인간은 ‘순간의 무한성’을 체험한다. 속도는, 존재가 자기 경계를 잠시 잊는 형태의 도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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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최고 시속 200km로 달리는 동안, 바퀴 아래로 풍경이 쉼 없이 흘러갔다. 하얀 눈으로 덮인 들판과 드문드문 보이는 집들, 나무들 사이로 반짝이는 아침 햇살까지 모든 것이 하나의 긴 선처럼 이어졌다.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은 단조롭지만 아름다웠다. 고속의 바람이 차를 감싸며 잠시 동안 여행의 피로를 잊게 했다. 속도가 높아질수록, 사물은 형태를 잃고 선으로 변한다. 인간이 세상을 ‘형태’로 본다면, 속도는 그 형식을 해체한다. 그렇게 우리는 ‘보는 존재’에서 ‘흘러가는 존재’로 변한다. 세상을 붙잡는 대신, 세상 속으로 흘러드는 일. 그것이 여행이 주는 또 다른 자유다.


이 길 위에서 느낀 것은 속도의 쾌감과 경험했던 모든 순간을 밀도 높게 응축한 자유의 맛이었다. 끝을 향해 가는 길이었지만, 그 길마저도 여행의 일부임을 알았다. 끝을 향해 달리는 길에서 인간은 종종 ‘끝이 곧 과정임’을 깨닫는다. 종착지란 단지 시선의 멈춤이지, 삶의 정지는 아니다. 모든 여정의 마지막에는 다음 출발의 씨앗이 숨어 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가까워질수록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그러나 이 여정은 단순히 마무리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했다. 속도의 자유와 함께했던 이 마지막 드라이브는 그 어떤 풍경보다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아쉬움은 곧 ‘의미의 그림자’다. 무언가가 끝나야만,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드러난다. 떠남의 순간, 인간은 처음으로 자신이 얼마나 살아 있었는지를 실감한다.


무사히 공항에 도착해 렌터카를 반납하고 나니 긴장이 풀리며 컨디션이 급격히 떨어졌다. 힘든 여정의 끝에 도달한 기분이었다. 공항 체크인을 위해 줄을 섰을 때, 우리는 가장 앞자리를 차지했다. 시간이 남아 캐리어만 줄에 세워 두고, 일행과 함께 10여 미터 떨어진 공항 의자에 앉아 지켜보며 번갈아 식사를 하기로 했다. 여행의 끝에는 언제나 ‘공항’이 있다. 그것은 세계의 문이자, 동시에 문턱이다. 떠남과 도착, 끝과 시작이 한 공간 안에서 교차한다. 인간은 그 문턱 위에서 비로소 ‘경계의 존재’임을 자각한다.


내 차례가 되어 식사를 마치고 돌아와 의자에 앉아 있던 그 순간, 눈에 띄는 움직임이 있었다. 경찰관 네 명이 조심스럽게 우리가 쌓아둔 캐리어 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며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스쳤다. 캐리어를 무심히 대기줄에 덩거러니 놓아두고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게 문제였다.

아차! 나는 용수철처럼 튀어나가 캐리어 앞으로 달려갔다. 경찰관들은 이미 긴장한 표정으로 캐리어를 둘러싸고 있었다. 나는 급히 손을 들어 보이며, 당황스러운 얼굴로 설명을 시작했다. "이 캐리어는 제 것입니다! 제가 잠시 멀리 있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다급한 목소리에도 경찰관들의 표정은 긴장 상태였다. 위험은 언제나 일상의 틈새에 숨어 있다. 평온은 부서지기 쉬운 유리처럼, 작은 실수 하나로 깨진다. 그러나 인간은 그 깨진 틈에서 배운다. 삶은 결코 통제의 대상이 아니며, 오히려 예측 불가능성 속에서 진짜 리얼리티를 드러낸다.


몇 분간의 설명과 확인 끝에 상황은 겨우 무마되었다. 하지만 경찰관들은 엄중하게 경고했다. "만약 조금만 늦었다면, 폭발물로 의심되어 폴리스라인이 설치되고, 공항이 폐쇄되었을 겁니다. 폭발물처리반이 출동하면 그 모든 비용은 당신이 부담해야 했을 겁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다리가 떨렸다. 내가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단순한 여행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질 뻔했다.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이 여행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고, 어쩌면 내 인생에서도 가장 아찔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우연의 경계’ 위를 걷는다. 우리의 삶을 무너뜨리는 것은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아주 작은 무심함이다. 그러나 그 무심함조차도, 어떤 깨달음의 입구가 된다. 공포는 삶의 가장 날카로운 거울이다.


돌아보면, 그 순간 내 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위험은 사소한 실수로 찾아오지만, 그 실수를 막을 기회는 단 한 번일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빠른 것은 ‘이성’이 아니라 ‘본능’이다. 인간은 때때로 이성의 속도를 초월해 자신을 구한다. 그것은 생명 그 자체의 기억. 존재가 살아남기 위해 진화시켜온 가장 원초적 사유의 형태다.


그렇게 여행은 설레는 긴장감으로 시작해서, 아찔한 긴장감으로 마무리되었다. 삶이란 결국 ‘시작과 끝의 대칭’이다. 설렘과 두려움, 출발과 귀환은 서로의 그림자다. 모든 여행은 결국 ‘자신에게로의 귀환’이며, 그 길 위에서 인간은 조금 더 깊은 자신을 만난다.



끝을 향한 속도


눈 속에 갇힌 차 위,

차갑게 얼어붙은 공기 속,

차가운, 손끝은 얼어가고,

풀 액셀.


아우토반의 자유,

스피드 리미트 없는 해방감,

200km의 기세로 바퀴는 땅을 가르고,

이 모든 풍경이, 하나의 긴 선이 되어 흘러간다.


끝을 향한 여정이 아니라,

경험한 모든 순간을 밀어내는 자유의 맛.

길 끝에 다가가며,

내 안의 새로운 시작을 꿈꾼다.


프랑크푸르트 공항 전면 통제


긴장 속 한 순간,

버려진 가방이 경찰을 부른다.

폭발물 의심,

순간, 세상이 멈추고 심장은 뛴다.


“이것은 내 가방,”

사라질 뻔한 숨을 쉬며

설명을 이어가고, 위험은 멀어지고,

세상은 돌아온다.


조금만 늦었다면,

내 인생은

단 한순간에

변화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날,

내 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던 것처럼,

모든 순간은 기회였고,

그 기회는 단 한 번일지도 모른다.


여행은 끝이 아닌,

다시 시작될 자유의 속도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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