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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아이 Feb 18. 2021

식재료 이야기 - 홍당무

콤플렉스를 극복하라


무도 사랑해 주지 않아


  가족조차도 그 소년의 진짜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도 그랬다. 그를 부르는 단어는 늘 홍당무였다. 붉은 머리카락과 주근깨 투성이 얼굴을 가진 볼품없는 소년은 차별과 무관심을 일상처럼 살았다. 외모 콤플렉스는 소년의 마음을 한없이 위축시켰고 동물을 잔인하게 학대할 만큼 심성도 비뚤어지게 만들었다. 엄마조차도 아이라면 응당 가져야 할 최후의 쉼터가 되지 못했다. 계모가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다른 형제자매들과 소년을 극단적으로 차별했다. 소년이 조그만 실수라도(선의로 발생한 일이었을지라도) 벌이면 곧 큰 사고처럼 포장되고 부풀려졌다.


  쥘 르나르의 소설 '홍당무' 주인공의 어린 시절은 열등했다. 열등했다기보다 주변에서 열등하게 만들었다는 게 더 정확하다. 엄마가 홍당무를 차별하지 않았더라면 아빠가 책 초반부터 소외된 막내아들에게 관심을 주었더라면 홍당무의 콤플렉스는 작아지거나 없어졌을 것이다. 보통 자전적 성장 이야기를 담은 소설은 주인공의 상황이 이야기의 끝무렵에는 개선되거나 발전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홍당무는 주변 사람들 혹은 내적 자아와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한 채 찜찜하게 끝난다. 책장을 넘길수록 마음이 무거워 독후감을 써야 하는 게 방학숙제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덮었을 책. '나 같은 건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을 거야!'라는 홍당무의 외침은 현재 진행형이다.


홍당무, 달큼한 을 주는


  엄마는 채소를 큼지막하게 썰어 생으로 고추장이나 된장에 찍어먹는 것을 좋아하셨다. 생채소는 늘 밥상 일부의 지분을 차지하며 식전 식후 입맛을 다스렸다.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 식사 때마다 좋아하지도 않는 곡식을 오물오물 씹던 소설 속 홍당무처럼 나도 엄마를 따라 풋내 나는 채소들을 씹어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이에게 양파는 눈이 따갑고 마늘종은 혀가 아리고 오이는 싱거웠다. 그나마 먹을 만한 것은 홍당무였다. 삼 남매의 막내였던 나에게 한없이 너그러웠던 엄마에게 소설에서 읽은 감정을 실어 공연히 미워하는 마음을 심어주었던 홍당무. 그러나 현실 밥상 위에 길게 썰어 놓은 홍당무는 소설과 달리 달 달았다. 엄마는 내 몫의 홍당무는 어린아이 입 크기에 맞도록 작게 썰어주며 다른 채소들과 차별했다. 식후 입가심으로 홍당무를 무심 씹어 드시던 엄마 옆에서 같이 홍당무를 깨물어 먹으면 달큼한 향이 입속에 퍼졌다. 나는 그때부터 홍당무를 좋아다.


   흙에서 갓 뽑아낸 홍당무는 아름답다. 작고 조밀한 초록색 잎에 단단한 주황색 뿌리, 거기에 붓으로 뿌려 채색한 듯 묻어있는 검 갈색 흙을 한눈에 보자면 노지에서 캐는 채소 중에 이렇게 아름다운 보색 대비와 몸체 비율을 가진 것이 또 있을까 싶다. 흙을 허벅지에 툭툭 턴 후 손으로 겉에 남은 잔여물을 쓸어내고 더 필요하다면 침으로 살짝 씻어 바로 먹는 홍당무는 구수하고 양지바른 흙향이 섞여 더 달고 맛있다.


특별한 단맛, 콤플렉스 뛰어넘기

 

  소설 홍당무의 외모는 좋은 방향으로 특별하다. 홍당무를 좋아하는 내 기준으로는 그것이 콤플렉스가 되는 게 이상 따름이다. 등장인물들이 홍당무 색의 아름다움과 달큼한 맛을 알고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소년이 홍당무라고 불리는  일도 없을뿐더러 외모를 비하하는 줄었을 텐데 말이다. 소설 속 차별의 핵심 요소인 소년의 머리카락에 비유된 홍당무의 붉은색은 사실 홍당무가 갖는 풍부한 영양소와 맛의 근간이고 소년의 주근깨를 닮은 울퉁불퉁한 외모는 겉에 뭍은 흙에 가린 당근의 속살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의 비유다. 내 기준으로 홍당무의 단맛은 Brix15 이상의 과일과 같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화된 나의 기준일 뿐 보편적 기준과는 다르다. 사회적 통념으로 홍당무는 대표적 편식 채소로 꼽힌다. 사람들은 생으로 먹어도 익혀서 먹어도 낯선 홍당무의 식감과 향에 하지 못한다. 익혔을 때 시큼하고 무르게 변하는 단맛도 편식의 중요한 이유가 된다. 또 뿌리채소는 과일보다 달수 없다는 보편적 인식 속에서 당무는 그렇지 않기에 생기는 사회적 인지부조화도 한몫한다. 홍당무가 이토록 달 수 있다는 사실이 편식하는 사람들에겐 낯설다. 


  홍당무의 단맛은 생으로 먹었을 때 정점이다. 익을수록 단맛은 향과 함께 공기와 합쳐지고 물이 되어 빠져나간다. 대육수를 내거나 다른 재료와 함께 익히는 찜 요리에서 빛을 발한다. 홍당무는 익히면 덜해지는 만큼의 단맛을 육수나 다른 재료에 내어준다. 맹물이 온도를 높여 맹렬하게 홍당무의 겉과 속을 훑어내기 시작하면 달큼한 맛은 물에 스미고 향은 수증기와 어우러져 끓 감칠맛 나는 육수가 된다. 서양요리에서 홍당무는 수프의 밑재료로 빠지면 안 되는 재료다. 서양 국물요리의 기본은 단맛이기 때문이다. 


  짠맛이 밑바탕이 되는 한식의 국이나 찌개에서 홍당무가 사용될 일은 많지 않다. 된장찌개에 들어간 홍당무의 강한 단맛은 오히려 된장의 감칠맛을 해칠 수 있다. 하지만 한식에서 홍당무는 찜의 부재료로 쓰일 때 비로소 본의 자리 찾는다. 찜에 넣어 육수에 녹은 홍당무의 적절한 단맛은 설탕의 인위적 단맛과는 차원이 다른 '단짠단짠'을 완성시켜준다. 또 홍당무가 내놓은 단맛의 자리에는 주재료의 맛이 빨려 들어 채워지는데 이 또한 일품이다. 소찜 속의 홍당무를 먹어보았는가. 간장 양념과 고기와 뼈의 진액이 진득하게 스민 홍당무를 갓 지은 흰쌀밥에 얹어 그대로 숟가락으로 눌러 비비면 찜의 원재료를 잊게 만드는 완전체의 밥 한 숟갈이 된다.

 

  소설 속 홍당무의 콤플렉스는 외모로 유추한 사람들의 비뚤어진 시선에서 비롯된다. 시시때때로 엄마와 가정부 할머니를 돕고 싶어 하는 홍당무의 마음은 외모로 비롯된 편견에 가려있다. 사실 홍당무의 속마음은 측은지심이 가득한 심성 고운 소년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편견의 장막은 동물을 학대하는 비뚤어진 행동과 자기 비하를 만들어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소설 끝무렵 시종일관 자신을 차별하고 괴롭히던 엄마와 오랜 기다림 끝에 충돌하 플렉스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는 점이다. 갈등은 갈등을 해소시키는 가장 좋은 출발점이다. 소설 이후의 이야기에서 홍당무는 콤플렉스와 편견에서 탈출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미운 오리 새끼의 진가는 미약할 때의 외양이 아닌 때의 기다림으로 완성된다.

한파가 차갑에 마음을 휘집던 날 저녁, 홍당무가 듬뿍 들어간 채소 수프를 만들어 먹었다. 생 파슬리가 홍당무의 잎을 대신 해 보색 대비를 완성해 주었다. 싱그런 향은 덤이다.

요리하기, 행하여 알게 되는 맛

 

  홍당무는 식감과 향에 대한 편견을 버리면 맛있는 식재료다. 하지만 완성된 인격 무언가를 버리거나 다시 넣는 건 쉽지 않다. 친구들과 순댓국집을 가면 밑반찬으로 나오는 길게 썬 홍당무 아무도 손대지 않는 것처럼. 서너 명 중 장도 찍지 않고 입에 넣는 사람은  밖에 없다. 40살이 넘은 불혹(不惑)의 편식쟁이들은 홍당무의 달콤한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다. 홍당무의 편견을 극복하는 방법은 하여 알게 되는 방법뿐 인 것을.


  우리 가족은 익힌 채소를 한입 크기로 썰어 넣은 수프를 자주 해 먹는다. 건강을 챙기기 시작하면서 조미료보다는 본 재료의 풍미를 살리고 육식 보다는 채식 위주의 식단을 꾸리기 시작했는데 채소 수프는 그 중심을 담당한다. 맛을 비유해 보자면 맘마미아의 배경 지중해 어느 바닷가에 세워진 사찰에서 먹는 맑은 채소탕 느낌이고 할까. 이 수프에는 홍당무가 꼭 필요하다.


  가장 먼저 귀리, 현미, 찰보리 등 통곡물을 물에 불린다. 한 줌(70cc)이면 2인분으로 충분하다. 씨앗은 강한 생명력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자기를 보호하려는 독성도 함께 지니고 있어 이것을 다스려야 한다. 가장 쉬운 방법이 물에 충분히 불린 다음 익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씨앗의 독성도 뺄 수 있고 끓이면 잘 불어나 몸에 들어가서 소화도 잘 된다.


  불린 통곡물을 옆에 두고 스테인리스 팬에 채 썰은 양파 반개를 넣고 올리브유에 약불로 볶는다. 팬에 향을 입히고 양파의 풍미를 올려주는 올리브유는 반 숟갈이면 충분하다. 양파가 진득하게 익어 갈변하기 시작할 즈음 물을 붓는다. 양파가 갈변할수록 육수의 색탁해지므로 기호에 맞에 타협점을 찾는게 포인트다. 물의 양은 2인분 기준으로 호가든 맥주컵 두 잔(900ml)이다. 이때 다시마를 손바닥 반만큼 넣어 감칠맛과 바다향을 첨가해 준다. 찬물이 끓는 동안 나머지 재료를 모두 깍두기 크기로 썰어놓고 물이 끓면 바로 넣을 준비를 한다. 채소 수프의 가장 큰 원칙은 재철 채소를 넣는 것이다. 재철 채소는 그 계절의 해와 바람과 땅의 기운을 충분히 받고 자라나 영양이 풍부한 데다가 마트에서 제일 신선하고 저렴한 채소들이기도 하다. 겨울엔 재철 채소가 드물다. 대신 상대적으로 따뜻한 남부지방에서 배추, 양배추, 무, 홍당무, 단호박 등을 재배하고 저장해 판다. 이번 겨울 채소 수프에는 양배추와 무, 홍당무와 브로콜리, 러리를 선택해 깍둑 썰었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다시마를 건지고 무를 넣는다. 무는 깍두기 크기보다 작게 썰어도 좋다. 작을수록 잘 익고 잘 우러난다. 무를 넣은 냄비가 한번 더 끓으면 나머지 재료들과 불린 통곡물을 함께 넣고 중불에 익히다가 냄비가 끓으면 불을 끄고 뚜껑을 열지 않은 채로 한번 식힌다. 모든 육수 요리는 한번 끓고 식는 과정에서 맛이 완성다. 끓을 때 서로 섞이지 않던 맛은 식을 때 차분해지며 어우러진다.



  한두 시간 후 잘 식어 어우러진 냄비의 뚜껑을 열어보면 곡물과 채소들이 육수를 흡수해 자작해졌을 것이다. 먹기 직전에 다시 데워 간을 하고 식탁에 내어 놓는다. 간은 소금으로만 한다. 정제소금 보다는 천일염이나 땅소금을 넣는 것이 감칠맛이 좋다. 파슬리를 잘게 썰어 고명으로 얹어 먹으면 금상첨화. 자연요리에 푹 빠져 채소에 대한 편견이 없는 안주인님은 이 수프를 좋아한다. 하지만 엄마를 따라 하던 아이의 숟가락질은 두 번에서 멈췄다.  견을 버리는 가장 빠른 길은 부딪혀 알아가는 것이다.


  알쏭아, 행하여 극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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