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

by 성기노
스크린샷 2021-09-29 21.21.11.png (사진=MBN뉴스 캡처)



딸아이가 3~4살 때 기회가 되면 고궁이나 공원 등지를 자주 다녔다. 갑자기 잠들기라고 하면 팔에 안고 재우는 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경험해 보신 분들은 너무도 잘 아실 것이다^^), 어린 아이와 외출할 때 유모차는 필수다. 그런데 이 유모차를 가지고 다니게 되면서 내게는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유모차의 길이 곧 장애인들의 휠체어 길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딸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외출을 할 때마다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지하철의 엘리베이터 유무 여부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을 갑자기 만나면 난감해지기 마련이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평소에 발견하지 못했던 장애인들의 휠체어 길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나는 우리나라의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다닐 때 얼마나 불편을 겪는지 간접적으로 체험을 해보게 됐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아예 지하철 역을 이용하지 못하는 곳도 있다. 어떤 역은 계단 몇 개밖에 없는 곳에 휠체어 리프트를 설치하지 않아 중간에 휠체어 길이 끊기는 곳도 있다. 그런 곳은 무늬만 장애인 휠체어 이동시설이 있는 곳이다. 실제로는 그 역을 온전히 이용할 수 없다. 인도에 도사리고 있는 높은 턱 때문에 유모차를 힘겹게 눌러서 앞바퀴를 번쩍 들어 이동해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장애인 정책을 입안하는 공무원들이 딱 하루만 유모차를 끌고 서울시내 지하철이나 거리를 한번 다녀보라고 하고 싶다. 정말 이것이 장애인들을 위해 진정으로 만든 것인지, 눈 가리고 아웅하듯 대충 만들었는지 반나절만 지나면 저절로 알게 된다.


작년에 집권여당의 대표라는 분이 근엄한 표정으로 총선대비로 영입한 인사에게 선천적 장애인은 어려서부터 장애를 갖고 나오다보니 의지가 좀 약하다. 그런데 사고가 나서 장애인이 된 분들은 원래 자기가 정상적으로 살던 거에 대한 꿈이 있으니 의지가 더 강하다는 말을 심리학자한테 들었다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했던 적이 있었다. 그 대표는 예전에도 삐뚤어진 마음과 그릇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장애인이라는 말을 거침없이 한 적도 있다. 두 번 모두 사과를 했다. 정작 자신은 무엇 때문에 사과를 했는지 모를 것이다.


우리 사회에 부족한 게 성적 감수성이나 젠더 감수성만이 아니다. 이런 장애인에 대한 감수성 부족은 무섭게도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주류 중심의, 남성 중심의, 힘센 자 중심의, 자본 중심의, 권력 중심의 왜곡된 힘의 편중과 그에 따른 폭력이 자리잡고 있다.


한 번이라도 장애인의 입장에서 진정으로 그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생각했다면 정상인과 장애인을 가를 때 그 기준을 의지의 박약이라고 삼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편견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을 수많은 인도의 턱들을 보면서, 장애인들이나 사회적 약자, 소수집단들은 얼마나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장애를 굳센 의지로 극복해나가야 할 대상으로만 보는 것은 정상인의 시각일 뿐이다. ‘너희들은 몸에 핸디캡이 있으니 더 많이 노력하고 독한 마음(의지)을 먹어야 그나마 정상인들과 경쟁을 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래서 정상인을 경험해보지 못한 선천적 장애인들은 정상인들이 볼 때 더 의지박약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 잣대가 정상인의 눈에만 맞춰져 있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더 노력하지 않는 것이라고 치부하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딸아이가 커서 이제는 유모차가 필요 없게 됐다. 자연히 나만의 장애인 휠체어 지도도 필요 없게 됐다. 그러다 작년 집권여당 대표의 선천적 장애인 발언을 들었을 때 힘겹게 유모차 길을 찾아 헤맸던 옛날 일이 떠올랐다. 내가 바라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듯, 정상인들이 바라보는 것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다. 장애인들도 정상인들과 똑같이, 이토록 아름다운 인생을 누릴 자격이 있는 인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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