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보글 아욱된장국이 끓는다.
온 집안을 구수한 냄새로 가득 채운다. 엊저녁에 뜯어온 여린 아욱을 비벼서 파란 물을 빼고 소쿠리에 받쳐 놓았다. 육수 물에 매운 청양고추를 넣고 마늘을 다져 넣으니 매운맛이 케케 하게 올라온다. 소쿠리의 아욱을 쏟아붓고 된장을 풀어 간을 맞춘다. 봄의 최애最愛 먹거리인 아욱국이다.
마침표를 찍듯 작은 씨앗을 초봄에 뿌렸다. 아욱 씨는 검고 마침표 같이 콕콕 땅에 박혔다. 씨앗은 삼월의 냉기를 이기고 대지의 품에 안겼다. 아지랑이 이불을 걷어내고, 사월의 여린 잎으로 사뿐사뿐 내게 다가왔다. 아욱 싹은 한들한들 청초한 생명으로 대지위에 섰다. 바람의 장난기가 싫지만은 않았을까. 불어주는 바람과 마주하며 리듬을 탄다.
푸른 잎이 바람에 살랑살랑 웃는다. 잎들이 밭고랑을 풍성하게 덮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가슴이 벅차다. 봄의 뿌듯한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살펴보았다. 더위에 지쳐 있는 줄기들이 잎으로 볕을 가리고 있다. 툭툭 건드리며 땅 밑을 바라보았다. 잎사귀 옆 그늘 밑에 붙어 양분을 빨아먹는 못된 놈들이 숨어있다. 일명 잡초들이다. 심지도 않았건만 종류도 가지가지다.
왕성하게 성장한 잎들을 향해 가위질을 한다. 땅을 덮은 아욱 순을 한 잎, 한 잎 잘랐다. 마지막 순을 남긴 채 사각거리며 가위는 멈춘다. 상큼한 풀잎냄새가 콧잔등 위에 앉았다. 아욱의 진액이 눈물처럼 간혹 내 손에 내려앉는다. 잘린 아욱은 한 움큼씩 봉지를 채우며 풍성함으로 감사가 넘치게 한다.
텃밭의 고랑마다 수많은 팻말이 서 있다. 내 팻말 앞에 우뚝 서서 심고 가꾼 채소들을 바라본다. 감자밭에 하얀 꽃이 올망졸망 피었다. 땅속감자와 꽃은 별개라 하는데 꽃을 따 버릴 마음이 일지 않는다. 없어도 무방한 잡초들만 뽑아 고랑에 눕힌다. 햇볕에 마르며 오그라든다. 주인의 발자국소리를 들은 야무진 잎들은 초록의 물결로 대지를 덮었다.
농장주인은 지혜로운 사람인가 보다. 산을 개간하여 혼자서는 그 밭을 일구기가 어려웠을까? 많은 사람들에게 분양을 하다 보니 나도 그 밭의 한 귀퉁이를 얻게 되었다. 텃밭을 얻는 당연한 값을 내고도 감사를 한다. 그 밭을 통해 귀한 것들을 얻어간다. 7평의 작은 텃밭은 내게 많은 것들을 내어준다. 상추, 아욱, 토마토, 가지, 고추, 감자, 당귀, 서양야채 바질…. 지난해는 들깨를 심어 많은 사람들이 깻잎김치를 맛보았다.
키 큰 들깨가 그늘을 만들어준다. 들깻잎은 뜨거운 볕을 피하기가 십상이다. 땀범벅인 얼굴을 그늘에 식힌다. 깻잎 밭에서 뿜어져 나는 향은 후각을 자극하고 행복을 준다. 어린애, 어른들에게 좋은 영양분을 공급하고, 향이 좋다. 씁쓰름한 맛은 입맛을 돋워준다. 아직은 때 이르지만 올해도 텃밭에 깻잎자리를 만들었다. 때가 되면 심고 가꾸어 나누는 기쁨을 누리리라.
저장할 수 없을 만큼 충분한 수확이다. 밭에 갈 때마다. 넘치는 수확량은 부부가 야채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보관이 어렵다. 가득가득 채워진 봉지를 들고 집으로 오며 나누어 줄 사람들을 생각한다. 다행히 이웃에 친구가 살고 있어 아까운 줄 모르고, 때로는 정과 함께 나눈다. 야채 맛을 아는 친구는 유기농이라 좋아한다. 시장에서 사는 야채들은 부들거리지만 유기농채소는 단단하며 고소하다 한다.
기다리는 텃밭의 야채들을 향해 자주 간다. 그들의 기다림에 나의 발걸음은 달려가고, 기대에 넘치도록 풍성한 수확으로 그들은 나를 환영해 준다. 수확한 아욱은 된장국을 되고, 상추는 겉절이가 된다. 때로는 서양요리를 흉내 내기도 한다. 바질을 얹고, 레몬을 섞어 샐러드를 만들면 싱그럽고 상큼한 아침밥상 위의 주인공들이 된다.
“심은 대로 거두고, 공은 닦은 대로 간다” 했던가. 상추씨를 심은 데 상추 싹이 올라오고 아욱 씨 심은 곳에는 아욱 잎이 나풀댄다. 이들을 심고 가꾸며 풍유諷遺의 깊은 뜻이 마음에 일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