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월이 되기 전에-

베를린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록다운(Lockdown)

by KIRIMI
오랜만에 보는 친한 동생과 맛있는 브런치를 먹기로 했다.

남편은 회사로 아이는 유치원으로 출근하시고, 남는 시간에 멍 때리며 유튜브에 떠있는 영상들을 보다가 하마터면 약속시간에 늦을 뻔했다. 항상 조금 더 서두르면 될 일인데, 그 5분을 혹은 10분을 서두르지 못해 안달이다. 비가 온 다음 날이라 공기는 깨끗했지만 내 코와 입을 지나치게 잘 가려준 마스크 덕분에 한껏 들이마시진 못했다. 베를린의 가을은 한국과 다른 매력을 지닌다. 한국의 가을은 높고 푸른 하늘에 내리쬐는 햇살, 그 아래로 울긋불긋한 단풍이 어우러져 쾌청하기 그지없다면 베를린의 가을은 짙은 회색의 하늘에 금방이라도 비가 떨어질 것 같은 무거움 속에 조금은 채도 낮은 단풍들이 조화를 이루며 근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누군가는 이 곳의 가을을 일컬어 우울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긴 베를린에서 7년 정도 지내고서야 회색 빛의 묵직한 가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으니 말이다.


원래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 내가 먼저 도착했다.

하필 그 날은 레스토랑의 생일이었고 특별 메뉴를 제공하는 행사를 하는 바람에 내부는 이미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날따라 키가 크고 화장이 짙은 트랜스젠더 웨이트리스가 웨이팅 리스트를 받고 있었는데 그분의 키가 유난히 커서 그랬는지, 알 수 없는 위화감에 사로잡혀버렸다. 긴장되는 마음을 부여잡고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지만 30분 정도의 예상 대기 시간을 듣고는 단번에 포기했다. 다행히 오는 길에 우연히 보았던 한 카페가 떠올랐고 우리는 그곳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카페의 이름도 조금 어려웠다. Kerszberg's Cafe라니. 아직도 어떻게 읽어야 제대로 읽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호기심이 많은 그 동생과 나는 메뉴판을 뒤적이다, 엄마가 만들어주는 독일식 아침메뉴 (wie bei Mama)와 예루살렘식 가지 요리, 카푸치노, 카페 크레메(Cafe creme), 어린이 카푸치노(정말 100% 궁금해서 시켜보았음)를 골고루 주문했다. 군더더기 없는 다양한 크기의 원목식탁들과 각양각색의 의자들의 조합, 구석마다 적절히 놓여있는 빈티지한 가구와 소품들, 빈 공간마다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꽃병과 화분 그리고 벽에 걸려있는 모던한 액자들이 함께 만나 빈티지 클래식과 모던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여기다 진짜 맛까지 있으면 대박이라며 호들갑을 떨던 나는, 결국 이 장소를 사랑하게 되었다. 오랜만의 외출 그리고 예상치 못한 사랑스러운 장소에서의 오랜만의 브런치는 요 근래 꽉 막혀있던 나의 마음속 숨구멍을 틔워주기에 충분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가끔 독일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한국말로 신나게 수다를 떨고 나면 괜스레 통쾌한 마음이 생긴다. 아무도 우리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없다는 묘한 쾌감이 스치는 것 일는지도 모르겠다.


우연히 들어간 따스한 분위기의 카페


사실 우리가 11월이 되기 전, 이렇듯 급하게 약속을 잡고 만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2020년 11월 2일부터 한 달간 베를린을 포함한 독일 전역이 록다운(Lockdown)에 들어간다는 발표가 났다. 이미 약 두 달 정도 베를린은 록다운을 경험하였고 그 당시 나는 유치원에 보낼 수 없는 만 4세의 딸과 함께 약 삼 개월을 집에 갇혀 살았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우울감과 무기력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그 시간들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그 이후의 삶에도 지독한 우울감은 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고 하루하루를 끌려가듯 살았던 것 같다. 코로나가 잠시 잠잠해지고 나서, 아이가 유치원으로, 남편이 회사로 집을 나 서고 나면 혼자라는 공허함 속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침대에 누워있거나 심할 때는 밤새 울면서 눈이 퉁퉁 부어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6개월 만에 다시 록다운이 시작된다. 다행히 이번엔 부분적인 록다운이라 유치원도 학교도 정상 운영을 한다고 하지만, 다른 활동들은 철저히 금지가 될 예정이다. 그러면 오늘처럼 우연히 발견한 카페에 앉아 시시덕거리는 이 작은 행복과도 당분간은 이별이라는 말이 된다.


처음 겪어보는 괴로움은 아니기에 그때와 같은 당혹감이나 갑갑한 마음이 나를 덮치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쓴 약은 언제 먹어도 쓰다. 쉽지 않은 시간은 언제 겪어도 쉽지 않다.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막아줄 수 없다고 믿었던 독일 사람들이 이제는 너도 나도 마스크를 쓴다. 법적인 효력이 생겨 미착용 시 50유로의 벌금도 지불해야 한다. 2020년 2월, 코로나 바이러스가 독일 땅에 처음으로 발을 들였던 그 당시, 지하철을 타고 출근해야만 했던 우리 남편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독일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서로를 비판하고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각자의 건강을 지키기 바쁜 모습이다. 불과 8개월 만에 일어난 변화이다. 독일은 연초에 보통 일 년 계획을 세운다. 독일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계획이라 함은 당연히 휴가 계획이다. 여름휴가와 크리스마스 휴가. 이 둘을 위해 매일을 열심히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지금도 매년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일단 11월 록다운으로 인해 빠르면 11월 중순부터 열려야 하는 크리스마스 마켓은 12월 1일로 오픈 일이 연기되었다. 곧 죽어도 크리스마스 마켓을 열겠다는 그들의 의지다. 결의이다. 완벽한 크리스마스를 위해 한 달 전 철저히 록다운을 시행한다는 말도 항간에 들린다.


아무리 어려운 시기에도 중요시 여기는 가치를 결코 포기하지 않고 지켜나가려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된다. 꼭 저렇게 까지 해서 코로나 시기임에도 크리스마스와 겨울 휴가를 즐겨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다가도 온 국민이 철저히 한 마음으로 원칙을 지켜나가는 동시에 삶의 원동력이 되는 가치를 놓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 모습이 참 대단해 보인다. 한국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뭣이 중한디' 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정작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좋은 핑곗거리에 기대어 이도 저도 아니게 살아가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다.



11월이 되면 예전처럼 게으르게 살지 않겠다.

예전처럼 우울하게 살지도 않겠다. 12월에 더 나아질 상황을 기대하며, 그리고 2020년의 한번뿐일 아름다운 크리스마스를 기다려보겠다. 당장 며칠 뒤인, 11월이 되면 매일을 끌려가는 삶은 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한국이 아닌 다른 땅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와 마주하고 있는 이 쉽지 않은 시기에 할 수 있는, 아주 작지만 큰 도전이 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