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에 관하여
작업실을 떠난 밍을 다시 본 것은 5월의 첫 토요일이었다. 다른 토요일과 다르게 싱을 제외한 네 명의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딸을 결혼시킨 밍이 인사차 모인 모임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보는 밍이 너무 반가워서 두근거렸다. 밍의 모습은 별로 변한 것 같지 않았으나 그녀가 줄곧 길러온 윤기 있고 풍성한 머리카락은 단발로 잘려 있었다. 조금 아까운 생각은 들었지만 단발의 그녀는 오히려 생동감 있어 보였다.
“싱은 수술 잘 된 거지?”
누구에게라고 할 것 없이 던진 밍의 질문에는 아무런 근심도 실려 있지 않았다.
“아마도.”
율의 간단한 대답에 밍은 다소 의문스러운 눈빛을 다른 사람들과 교환했다.
“괜찮대. 잠깐 목을 쓸 수는 없겠지만 별 문제는 없다나 봐. 율이 같이 갔었지.”
수의 설명에 젠과 국일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밍의 표정도 안도하는 빛이었다.
“신부가 다 예쁘다지만 딸이 정말 미인이더라. 엄마보다 백배 낫던데?”
율의 이야기에 모두들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내가 보기에도 밍은 예쁘다기보다는 인디언 여자를 닮은 독특한 외모였기에 딸이 예쁘다는 말은 밍을 활짝 웃게 했다.
“요즘엔 신부가 혼자 입장하는 게 트렌드니? 뭐 혼자 당당하게 입장하니까 그것도 멋지더라.”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혼주석에 남편이 안 보여서 좀 놀랐어. 무슨 일이 있어?”
밍의 딸은 신부입장을 혼자 했고, 남편은 궐석이었단 얘기였다.
질문을 가만히 듣던 밍은 씩 웃더니 뒤쪽에 서 있는 수에게 시선을 주었다.
“수 선배는 알고 계셨는데, 아이 아빠가 떠났어요. 3년 되어가네. 사고였어.”
깜짝 놀란 동시에 곤혹스러운 세 명의 시선이 수를 향해 질문을 퍼붓고 있었다. 어떻게 혼자만 알고 계셨죠? 도대체 왜 그런 거죠? 나도 놀라고 궁금했다.
“3년 전이라면 그대가 작업실을 끊은 때인 것 같은데? 언덕 밑에 있는 작업실 말야. 회비만 내고 있었지 한 번도 오지 않았잖아? 그래서 몰랐을까? 우리가?”
젠이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요. 어떻게 그런 일을 모르게 할 수 있어요? 적어도 우리에게는 알렸어야죠? 어떻게 혼자서 견뎌냈냐고요?”
율은 밍이 잘못한 아이처럼 들이대고 있었고 국일은 돌아서서 휴지로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너무 그러지 말고,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생각해 줘.”
수가 밍의 대변자처럼 나섰다. 분위기는 무거워졌고 뭔가 다른 얘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느낀 젠이 물었다.
“참과 하는 일은 잘 되어 가는 거야?”
“아니, 참과는 헤어졌어. 어차피 참이 입시미술 지도를 할 수는 없어서 대학생 알바 두 명 쓰고 있지. 그게 차라리 편하네.”
젠의 질문에 밍은 참과 차렸던 미술학원 얘길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했다.
참은 학원에서 사무적인 일만 담당했는데 몇 개월 못 견디고 자신의 개인 작업실을 차렸단다. 동네 주부들 모아서 가르치기도 하고 함께 그림도 그리며 나름 만족한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하긴, 그 사람 야망대로라면 그게 더 어울리는 일이네. 그런데 밍, 그래서 혼자인 거야?”
느긋하게 떨어지는 젠의 질문에 밍은 작은 눈을 크게 뜨며 무슨 뜻인지를 물었다.
“혼자 살고 있냐고. 이젠 딸도 떠났으니.”
“그렇지 뭐. 내가 시간이 바쁘니까 자세한 얘긴 수 선배한테 들어. 축하해 줘서 고맙다고 식사 대접하고 싶었는데 그 시간조차 나질 않으니 금일봉으로 대신할게.”
밍은 흰 봉투를 율에게 넘겨주곤 미안하다며 신속하게 자리를 떴다. 아무도 밍에게 더 머무를 것을 권하지 않았다. 밍에게서 분주함과 함께 고달픔이 묻어 나왔다.
“어떻게 된 거예요? 수 오빠는 다 안다며. 혹시 우리가 도울 일이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
젠의 걱정은 진정이었다. 그녀는 밍과 가장 가까운 사이였고 밍이 떠날 때도 많이 아쉬워했다.
“밍이 가감 없이 얘기해 주라곤 했지만 글쎄, 아는 게 좋을까 싶은 생각이 드네.”
수는 망설였다. 그러나 사람의 호기심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나도 궁금한데.
“뭐, 헤비하고 다크 한가?”
젠의 갑작스러운 영어 단어에 율이 피식 웃었다.
“헐, 영어로 얘기하니까 무슨 서스펜스 스릴러 같네. 젠이 영어를 가르쳤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질문!”
율이 젠의 얼굴을 힐끗 돌아보다 수와 눈이 마주쳤다. 수는 깊은 고민이 있는 사람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런 수의 얼굴은 평소보다 많이 어두웠다.
“자살이었어. 남편이.”
“오 마이 갓. 무슨 일? 왜?”
소리 지른 것은 율이었고 놀란 것은 젠과 국일이었다.
“아까 밍이 사고라고 한 것이 그런 뜻일 거야. 의도적이라기보다는 남편이 아픈 상태에서 생긴 일이니까. 밍도 어떻게 할 줄을 모르더라고. 그래도 대학 선배라고 나를 불렀던 거지. 사실 나라고 해서 어떤 도움이 된 것도 아니지만 그냥 얘길 들어줘야 할 것 같아서.”
수는 차분하게 말했으나 모두들 충격에 들떠 있는 상황이었다.
“아니, 밍의 남편이 잘 나가는 변호사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건 발병하기 전이었지. 밍은 어떤 식으로든 고인에 대해서 가십거리가 되는 걸 다 차단시켰어.”
“그게 가능한 일이에요? 어쨌든 사람이 죽었는데?”
“그게 외국이라 가능했다고 하더군. 밍의 시댁은 다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고 남편이 죽은 곳도 퀘벡인가 그렇고.”
순간 작업실은 음소거가 된 듯 잠깐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을 깬 것은 눈물로 범벅이 된 국일의 흐느끼는 소리였다. 율이 다가가 흔들리는 국일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젠의 나지막한 한숨 소리가 들릴 듯 말 듯 했다. 나는 숨 죽일듯한 낯선 공기에 덩달아 숨을 죽이고 조용히 있었다.
“세상에. 어떻게 그렇게 감쪽같이......혼자서 그 고통을 고스란히 견뎠다는 거잖아요? 그래도 우리가 삼십 년 지기인데 밍에게 우린 뭐였죠?”
율도 눈물을 훔치며 자책하듯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고통을 나눈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가 봐. 우리는 밍이 그런 줄 아무도 몰랐잖아. 잘 나가는 남편에 똑똑한 딸내미, 자신감 있는 캐릭터에 그런 속사정이 있는 줄은.”
국일이 다 울었는지 벌게진 눈을 훔치며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웅얼거렸다.
“딸도 밍이 낳은 것은 아냐. 남편이 재혼이었어. 두 살 배기였다지. 이번 신부가 걔야. 밍이 키운 그 딸.”
젠이었다. 다시 정적이 흐르고 사람들은 의심의 눈초리로 젠을 바라봤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도대체 밍은 얼마나 힘들게 산 거야? 왜 재혼남과 결혼을 했대?”
율이 분노에 찬 표정과 큰 소리로 정적을 깼다.
“가만. 우리가 흥분할 건 아니고. 적어도 밍은 굉장히 딸을 정성으로 키웠어. 누가 봐도 친엄마와 딸이었을 거야. 그런 밍을 보면서 나도 아이를 입양할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까. 밍이 자기 아이를 일부러 안 낳았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점에서 난 밍이 대단하다고 생각해.”
젠이 밍과 가까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내밀한 사연을 공유했다는 것에 사람들은 놀랐다. 밍은 누구와도 속 얘기를 안 하는 사람이라고 소문이 났었으니까. 그런데 적어도 밍에게는 젠과 수가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분위기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얼마나 밍은 더 힘들었을까.
“아마 그런 것들이 밍을 갑옷 입게 만들었는지도 몰라. 아이를 키운다는 것, 더욱이 자신의 아이가 아닌 아이를 키운다는 것에는 엄청난 내공이 필요했을 테니까. 누가 그 사정을 알겠어?”
국일의 이야기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밍이 그 대단한 일을 해냈구나. 아이를 키워서 그 아이가 자신의 가정을 꾸리기까지 온 맘으로 키운 거구나 하는 얘기를 사람들은 주고받았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들은 나는 밍이 작고 여린 풀잎처럼 가련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사나울 정도로 까칠하게 대했던 밍을 살짝 미워했던 지난날을 후회했다.
“십자가 없는 인생은 없어. 그게 사람을 강하게도, 겸손하게도 만드는 것 같아.”
자못 심각한 수의 말은 봉투를 흔들며 떠든 율의 소리에 묻혔다.
“와, 백만 원이나 넣었네. 밍은 끝까지 나를 부끄럽게 하는데요? 축의금 십만 원 했거든요.”
그러자 젠이 웃으며 율을 도닥였다. 국일이나 수나 모두 좀 전의 고난에서 벗어난 표정이었다.
“끝까지 밍이기를 포기하지 않은 거지. 괜찮아. 그대는 십만 원 했어도 더 한 사람도 있을 테니 부끄러움은 강아지에게, 오늘 저녁은 한우로, 오케이?”
젠 답지 않게 호기를 부리며 하는 말이었지만 내게는 쓸쓸하게 들렸다.
“싱의 상태가 좋아지면 그때 함께 가죠?”
율이 회계장부에 뭔가를 쓰며 무심한 듯 말했다.
“그렇구나. 싱이 없지. 충격적인 얘기 속에 있다 보니 그 생각을 잠깐 잊었네. 그런데 어떤 상태인 거야? 얘기 좀 해 봐, 율.”
“수술이야 잘 되었다고 하는데 생각보다 힘든 것 같아요. 노래하는 사람이 노래를 못한다는 것은 일종의 상실이잖아요? 일반적인 외과수술과는 다른 거겠죠. 우리가 어금니 하나가 빠져도 얼마나 허망해요?”
율은 회계장부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영영 노래를 못하는 것도 아니잖아? 왜, 또 우리가 모르는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거야? 밍 얘기 듣고 나니까 이젠 겁난다.”
국일이 율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물었다. 수도 젠도 긴장한 표정이었다.
그때서야 율은 장부에서 얼굴을 떼고 멀쩡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둘러봤다. 웬 소란이냐는 얼굴이었다.
“아니, 제가 영영이라고는 안 했는데요? 언제부터 노래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원래의 목소리가 회복되리라는 보장도 없대요. 물론 저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지만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그러니까 모든 게 불분명한데 수술은 잘됐다?”
역시 젠이었다.
“오케이. 두고 봐야 한다는 거죠. 인생에 확실한 게 뭐가 있겠어요?”
율이 다시 장부에 얼굴을 박았다.
“막내인 율이 할 얘긴 아닌 것 같은데?”
수의 말에 사람들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들은 오늘 내내 맘껏 웃지 못했다.
한 시간여를 더 머물던 그들은 노을이 막 타오르기 시작할 무렵 밍이 나간 그 문을 통해 차례차례 나갔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어 붉은 저녁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작업실에서 밍을 천천히 추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