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자식

작아져버린 그녀는 이제 언제나 상냥하다

by 나나

하루 종일 집안에서 맴맴거리며 세끼 밥에 간식까지 찾아먹던 우리가 1년에 두번 오는 손님이 되었을때

엄마의 머릿속에서는 수없이 많은 음식의 리스트들이 서로 제 순서를 앞당기려 다투는 것 같았다.

"이거 한번 먹어봐" "이거 엄마가 사놨어" "아유 저거 먹고 가야 하는데.."

'아무것도 한거 없다'며 무심한 척 이것저것 음식을 권하다가 기어이 자식에게 한소리 듣는다.

"엄마! 그걸 누가 다 먹는다고 샀어~ 배불러 안먹어."


삶의 원천이었던 엄마의 품을 떠나고 난 후, 마치 제 스스로 자란듯 우리는 건방졌다.

오래된 삶의 방식에 집착하는 모습과, 자식들과의 짧은 이별 앞에서도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

우리에게 익숙한 모든 것에 서툴고, 그렇기에 점점 우리에게 의지해야 하는 엄마 앞에서 우리는

자주 짜증 붙은 목소리를 내뱉었고, 엄마는 그럴때마다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이제 매 순간

엄마는 우리의 기분을 살핀다.

가족이 주는 상처란 얼마나 소심하고 거대한 것이던가.

아무리 거친말을 쏟아내도 나를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것을 알기에.


큰소리를 내고난 후의 적막, 그리고 미안한 마음에 다시 툴툴거리며 말을 걸어도

엄마는 또 상냥하다.

언젠가부터 엄마는 우리에게 소리를 내지 않았다.

엄마의 약해짐에 화가나서, 또 그런 엄마에게 화를 내서, 또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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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출근한 사이, 방구석 창고를 뒤졌다.

지금의 나보다도 어렸던, 엄마의 어릴적 사진이 갑자기 보고싶어진건 왜일까.

가녀리고 누구보다 어여뻤던 20대부터 그녀에게는 삶을 이어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자식들을 먹여야 했으며, 자신도 모르게 소복눈 쌓이듯 불어버린 빚을 갚아야 했다.

우리가 세상을 알아갈 나이가 되어서도 엄마는 여전히 정보지의 구인란을 뒤져 할일을 찾아야 했다.


삶을 공유할 시간은 너무나 적었고, 그래서 우리는 모여도 함께할 이야기가 없었다.

반백년을 살고서야 삶에 끌려다니지 않고 삶을 '살아'나가게 된 그녀는

이제서야 우리의 가족의 이야기를 만들고자 했지만

이미 뻗어나간 가지끝에 매달린 열매가 뿌리를 그리워 하기엔 그 거리가 너무 멀었다.


"엄마는 너희들 결혼하기 전에 가족사진도 찍고 싶고.. 같이 해외여행도 가고싶다.

엄마 이제 늙어서 못움직이면 우리끼리만 이렇게 다닐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겠니..."

"아 정말 엄마! 그런말좀 하지마!"


안다. 엄마는 진심이란걸.

다 커버린 자식이 한발짝식 어미에게서 멀어져가는 모습에 엄마는 불안할 것이고

멈춰주지 않는 세월에 또 불안할 것이다.

엄마는 이제, 엄마를 돌보아줄 누군가가 필요해 지기 시작한 것이다.

잠에 지쳐 쓰러진 엄마의 발끝이, 외롭다.

내일 엄마를 두고 기차에 올라탈 일이 벌써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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