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 <<농담>>
농담은 인생을 바꾸지만, 알고보면 인생이 농담이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농담'에서 농담은 다층적 의미를 띄면서 여러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우선 농담은 권위주의 사회의 부조리를 들춰낸다. 체코가 공산화된 1948년, 유물론적 사고가 지배하는 사회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용납하지 않는다. 감정은 두뇌 활동의 부산물일 뿐이다. 계급 투쟁이 우선인 시대, 희노애락은 불필요한 배설 행위에 불과하다. 쿤데라는 이 시기를 가리켜 기쁨이 용인되지 않은 시기라고 말한다.
"당시의 기쁨은 해학이나 아이러니를 용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기쁨은 다시 말하지만 승리에 찬 계급의 역사적 낙관주의라고 자랑스럽게 지칭되는 기쁨..."
억압적인 사회에서 웃음을 자아내는 농담은 허용되지 않는다. 모든 웃음은 본질적으로 체제 전복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 조회 시간에 누군가의 웃음이 근엄한 분위기를 망쳐놓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쿤데라는 '농담'에서 루드비크라는 대학생을 내세워 이런 농담을 던진다.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종교는 인류의 아편'이라는 카를 마르크스의 언설을 풍자한 것도 모자라, 스탈린이 지구 끝까지 뒤져서라도 찾아내 죽이려했던 스탈린의 정적 트로츠키에게 충성을 맹세한 것이다. 루드비크가 한 여학생에게 던진 이 농담은 루드비크를 삶의 무저갱으로 밀어넣는다.
군대와 탄광 노역으로 점철된 15년이 지나 루드비크는 복수에 나선다. 자신을 파멸시킨 옛 친구 제마네크를 찾아낸다. 루드비크는 제마네크의 아내를 유혹해 잠자리를 갖는 것으로 제마네크에게 굴욕감을 선사하려 하지만 루드비크의 계획은 철저하게 틀어진다. 제마네크는 이미 아내와 사이가 멀어져 아내에게 더 이상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제마네크의 아내는 루드비크의 계략을 알아채고 자살을 기도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음독자살을 하기 위해 먹은 약은 변비약으로 밝혀진다. 루드비크의 복수극도, 제마네크의 치정극도 끝내 소극(笑劇)으로 끝나고 만 것이다. 비장하지만 끝내 희극으로 마무리되는 시퀀스가 끝난 뒤 루드비크는 인생을 이렇게 관조한다.
"내 인생 전체가 훨씬 더 광대하고 전적으로 철회 불가능한 농담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쿤데라는 인생을 비극적인 농담으로 은유한다. 삶은 무겁고 진지해보이지만, 사실 부박하고 부조리하기 짝이 없다. 희극과 비극이 짝패처럼 나란히 붙어 동시에 상영된다. 어디선가 쿤데라가 말을 거는 듯 한다. "말이 안된다고? 그게 이념이고, 역사고, 인생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