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저랑 바이트....가실래요?
쿠바 여행의 시작은 이 한마디로 시작했다.
전 회사를 다닐 때, 회사에서 제공하는 끝판왕 복지가 바로 전 세계 어디든 여행 보내주는 것!이었기 때문.
심지어 그 워크숍의 이름은 “Bite The World(직원들은 바이트라고 불렀다)”.
전 회사의 공동 대표가 이 업계를 씹어먹고 싶어 하는 마음에 이렇게 지은 건진 모르지만, 복지 제도 이름이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물론 기업은 자선사업을 하는 곳이 아닌 영리 단체다 보니 팀원을 꾸리고, 그들과 어딜 갈지 토론한 후에 두 대표와 각 팀원들이 속해있는 본부장들 앞에서 우리가 이 곳을 가야 하는 이유, 거기서 얻어올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리뷰하고 설득하여, 소위 말하여 프레젠테이션을 하여 기회를 얻어내야 했다.
까다로운 복지 프로세스와 팀원들과 일정을 맞춰보기도 어려울 만큼 바쁜 업계 특성상 이 복지를 누리는 사람들은 드물었으나 그러니까 더 떠나고 싶었다. 원래 남의 돈은 뜯어내기 어려운 법인 데다가,
역마살이 사람이 된다면 너일까 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떠나는 걸 좋아하는데 심지어 남. 의. 돈.
이건 반드시 가야 하는 여행임에 틀림없었다.
그래서 모두가 퇴근하고 야근하는 이들만 남아있을 때, 평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오며 가며 스타일이 내 취향이라 눈여겨보았던 바로 맞은편 파티션의 동갑내기 직원에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저랑 바이트... 가실래요?”
한 번도 말을 섞어보지 않은 맞은편 파티션의 사람을 뭘 믿고 좋다고 한건진 모르지만 그 직원은 저랑요? 하더니 네 좋아요!라고 흔쾌히 답해 주어 쿵쾅거리던 내 심장을 터뜨려버렸다.
물론 처음 가자고 한 곳은 쿠바가 아니었지만,
우리는 소위 말하는 찌랭이 (주니어급 연차를 내가 늘 부르는 말) 들이기 때문에, 결정권자인 임원진과 본부장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주변의 카더라에 의해 우리는 공동 대표 중 한 명에게 같이 바이트 가실래요?라고 당당히 물어보았다.
그 회사를 차린 지 약 20년이 다되어가고, 이 “바이트 더 월드” 복지 제도를 만든지도 5년이 넘어가는데 본인에게 같이 가자고 한 사람, 특히나 찌랭이는 없었겠지.
이런 당돌함이 마음에 들었는지 사장님은 바로 좋다고 말하셨고, 나에게 바이트 가자는 말 한 사람이 있다고 여기저기 미팅 자리마다 자랑하셔서 우리는 전사가 유의 깊게 보는 바이트 더 월드 구성원이 되었다.
일을 일단 크게 벌린 후, 같이 갈 사람을 더 모집하였고, 그 과정에서 평소 친하게 지내던 디자이너가 자기 주변에 이 바이트 더 월드를 가고 싶어 한다는 사람들을 소개해 주었고, 공동대표와 본부장들 앞에서 우리가 가야 하는 이유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완벽하게도 사장님은 사정이 생기셔서 프레젠테이션 자리에서 응원만 해주시기로 하곤 빠지게 되셨다.
여행지에서 사장님이 우리에게 쏘실 돈 (?) 이 조금은 아쉬웠지만, 그러면 어떠한가.
우여곡절 끝에 쿠바로 떠나게 되었는데!
우리가 당시 쿠바로 떠남을 다짐하며 내세운 것은 “쿠바의 색감을 기록하다”였다.
그냥 보고 올 것을 “색감을 기록하다”라고 거창하게 내세운 것이 아닌, 실제로 팬톤컬러칩과 유사한 컬러칩을 제작하여 우리만의 색감을 기록한 “콘텐츠”를 만들어 오겠다고 약속하였다.
실제로 이 콘텐츠에 대한 약속은 상당히 반응이 좋았고, 다른 경영진들의 반응을 보며 사장님이 꽤나 뿌듯해 하셨던 것 같다. 이런 사장님의 응원에 힘입어, 기획자 두명과 세명의 디자이너는 지구 반대편, 카리브해가 반짝이며 생생한 색감이 살아숨쉬는 쿠바로 떠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