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
1. 재택근무의 장점중 하나는 아이폰, 지갑, 열쇠, 에어팟등이 안보여서 찾기 시작해도 전혀 불안하지 않다는 점이다. 내가 계속 집에만 있었기 때문에 비록 찾는데 시간은 걸릴 수 있을지언정 집안 어딘가에서 반드시 나오고야 만다는 안정감이 충만하다.
2. 집에서 일하면서 알렉사에게 음악을 틀어달라는 주문을 자주 한다. 알렉사가 내 영어를 한번에 못알아들으면 누가 옆에서 나한테 뭐라고 하는것도 아닌데 기분이 좀 상한다. 그래서 한방에 성공하기 위해 상당히 정성을 들여서 알렉사에게 접선을 시도한다. 입으로 먼저 한번 중얼거려보는 UAT(*)를 할 때도 많다.
이렇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알렉사에게 영어회화를 시도하는 바로 그 순간에 아내나 아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 그 회화를 망쳐놓으면 정말 말로 표현 못할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니 그 몇초를 못기다려 준단 말인가. 어쩔때는 내가 '알렉사...' 라고 말을 시작하면 일부러 방해를 하는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그래서 정말 진지하게 한마디 했다. 앞으로 내가 알렉사랑 얘기중일때는 절대 방해하지 말아 달라고...
3. 내가 살고 있는 뉴욕/뉴저지는 이발소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같은동네에 사는 후배에게서 바리깡을 빌려서 머리를 깎아보려고 했다. 그런데 머리깎기를 시작하자마자 실수로 앞머리쪽을 확 밀어버렸다. 앞머리가 무슨 일본예능의 벌칙게임수준이 되어 버렸다. 처음에는 대참사라고 생각했으나 어짜피 집에만 있고 사람들을 만나지도 않는데 뭐가 걱정인가 싶어졌다.
게다가 더 생각해보니 반백살되기전에 한번쯤은 삭발을 경험해 보는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졌고 심지어 지금이 삭발을 해볼 절호의 찬스라는 결론에까지 도달했다. 그래서 정말 머리를 바리깡으로 다 밀어버렸다. 게다가 평생에 한번만 해본다고 다짐하며 면도까지 했고 내 머리는 번쩍번쩍 빛나는 상태가 됐다. 면도삭발은 아내가 장보러 간사이에 했다. 집에와서 내 상태를 본 아내는 나보고 저리가라고 했다.
4. 이렇게 면도삭발을 한 후에 카톡에 프사를 한번 올려놔봤다. 몇시간 후에 칠순가까이 되신 삼촌께서 어디 몸이 아픈거 아니냐고 카톡이 왔다. 무슨 독한 항생제 치료라도 시작한 느낌이였나보다. 이어 다른 카톡지인들도 프사에 대해서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12만원짜리 오마카세코스를 정성스럽게 만들어 주시는 스시장인같다, 의료수가를 올리기 위해 투쟁하고 계시는 의사쌤같다, 무관으로 은퇴하고 체육관 운영하시는 원로 복서같다는 의견들이 나왔다.
머리 사진은 아내가 페북에 올리면 이혼이라고 해서 브런치에 올린다. 이렇게 철없는 40대 후반의 5월이 흘러가고 있다.
(*) UAT: User Acceptance Tes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