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가주망

by 은파
모든 현실은 행동과 참여 속에 있을 뿐이다.


직장을 서울로 옮긴 첫날, 나는 설렘과 기대감을 가득 안고 활기찬 출근길에 올랐다. 낯선 도시의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가볍고 경쾌했다. 그러다 문득 길가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한 노숙인이 내 시선에 들어왔다. 찬 바람이 부는 추운 날씨에 떨고 있는 그의 초라한 모습에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졌다. 무의식적으로 주머니를 뒤적이니 몇 푼 안 되는 잔돈이 손끝에 차갑게 만져졌다.

'이걸 줄까, 말까?'

순간 여러 생각이 교차하며 망설임이 밀려왔다. 사소해 보이는 이 작은 선택의 순간, 나는 문득 사르트르의 '앙가주망(engagement)' 개념을 떠올렸다. 그가 철학적으로 강조했던 '자유로운 선택'과 그에 따르는 '책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다. 이 작고 사소해 보이는 선택이 세상에 과연 어떤 의미와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결국 나는 주저하던 마음을 추스르고 주머니 속 동전을 꺼내 노숙인에게 조심스럽게 건넸다. 그의 지친 눈빛에서 깊은 감사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 작은 행동이 그에게는 예상보다 큰 의미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 한쪽이 따뜻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묘한 불편함과 의문도 함께 밀려왔다.

'과연 이게 정말 옳은 선택일까? 이런 식의 일회성 기부가 노숙인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 작은 기부 행위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그것이 과연 장기적으로 바람직한지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출근길 내내 이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끊임없이 맴돌았다. 점심시간, 회사 근처 조용한 카페에서 새 동료와 가벼운 대화를 나누다 우연히 벽에 붙은 지역 자선단체의 모금 캠페인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갑자기 아침에 마주했던 노숙인과의 경험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너도 기부 같은 거 좀 하니?" 동료가 무심코 물어보았다. "아주 가끔······." 나는 머뭇거리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난 매달 일정액을 정기적으로 기부해. 세금 공제도 받고, 뭔가 좋은 일 한다는 보람찬 느낌도 들고 해서."

동료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나는 다시 한번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내가 가끔 즉흥적으로 하는 이런 식의 일회성 기부가 과연 사르트르가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앙가주망'일까? 단순히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거나 순간적인 개인의 만족감을 위한 것은 아닐까?

퇴근 후, 집으로 향하는 길에 작은 동네 서점에 들렀다. 사회 문제와 기부 문화, 노숙인 복지에 관한 책들을 진지하게 훑어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다. 진정한 '앙가주망'은 단순히 일시적인 기부나 동정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세계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라고.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지역의 다양한 자원봉사 단체들과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의미 있는 프로젝트들을 진지하게 찾아보았다. 그 과정에서 우리 주변에 결식아동의 수가 생각보다 너무도 많다는 충격적인 현실을 알게 되어 마음이 무척 무거워졌다. 며칠 동안의 고민 끝에, 나는 결식아동 지원 단체를 직접 찾아가 매월 정기적으로 기부하기로 하고 공식적인 후원 계약을 맺었다. 그런 진지한 결정을 내리고 난 후, 나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고 있음을 분명하게 느꼈다. 일회성 기부자가 아닌,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참여자로서 말이다.

이 의미 있는 경험은 평범한 일상에도 작지만, 중요한 변화를 불러왔다. 직장에서도 단순히 주어진 일을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일이 사회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때로는 회사의 일부 정책에 대해 용기 있게 의문을 제기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건설적인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점차 나는 깊이 깨달았다. 사르트르가 강조했던 '앙가주망'은 단순히 개인의 선택과 책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중요한 사실을.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더 넓은 세계와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그 세계를 조금씩 변화시킬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제 나에게 기부라는 행위는 단순한 자선이나 동정의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자, 진정한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의미 있는 여정이다. 매일 작고 큰 선택 속에서 나는 조금씩 성장하고, 동시에 세상도 조금씩 변화해 간다고 믿게 되었다.

어느 쌀쌀한 저녁 퇴근길, 우연히 다시 그 노숙인을 마주치게 되었다. 이번에는 주저함 없이 자연스럽게 다가가 따뜻한 말을 건넸다.

"식사는 하셨어요? 이 돈으로 따뜻한 국밥이라도 한 그릇 사드세요. 날씨가 꽤 추워졌어요."

그의 지친 눈에서 놀라움과 깊은 감사의 빛이 번쩍 빛났다.

캄캄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깊이 생각했다. 우리의 작고 사소해 보이는 선택들이 모여 결국 이 세상을 만들어간다고. 그리고 그 선택의 순간마다, 우리는 조금씩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소중한 기회를 얻는다고. 사르트르의 '앙가주망'은 결코 단순한 추상적인 철학적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서 살아 숨 쉬는 현실이며, 모두가 지닌 강력한 힘이자 피할 수 없는 책임이다. 이제 나는 매일의 크고 작은 선택 속에서 그 깊은 의미를 되새기며, 조금 더 나은 세상을 향해 한 걸음씩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이 아닐까? 사회가 정해놓은 표면적인 기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체적인 선택으로 세상을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것. 그 의미 있는 과정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경험하고, 우리의 존재 가치를 깊이 깨닫게 된다. 오늘도 나는 깨어있는 의식으로 선택한다. 그리고 그 진지한 선택을 통해 세상과 더 깊은 '관계'를 맺어간다. 이것이 바로 사르트르가 평생 강조했던 '앙가주망'의 진정한 의미임을, 나는 이제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매거진의 이전글무신론적 실존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