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햇볕 이야기

찬란함 뒤의 날카로움

by 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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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반한 파란 하늘


뉴질랜드에 도착해 가장 처음 저를 매료시킨 건 단연 하늘이었습니다. 끝없이 투명한 파란색, 코끝을 스치는 맑은 공기, 그리고 온몸을 감싸는 따뜻한 햇살. 한국에서 미세먼지에 익숙해졌던 눈과 폐가 비로소 정화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저 바라만 봐도 좋은, 축복 같은 날씨라고 생각했죠.


물론 지금도 그 하늘을 사랑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이 찬란한 햇볕은 마냥 즐기기만 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요. 이곳의 햇볕은 우리가 알던 그것과는 '체급' 자체가 다릅니다.


20분의 방심, 그리고 멍해진 가족들


뉴질랜드 상공은 오존층이 얇고 대기가 워낙 깨끗해 햇빛을 걸러낼 필터가 거의 없습니다. 자외선이 아무런 제약 없이 지표면으로 곧장 꽂히는 셈입니다.


이 강도를 과소평가했다가 아찔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번은 온 가족이 모자도 없이 집 근처에서 딱 20분 정도 햇볕을 쐬며 놀았습니다. 한국에서의 감각으로는 기분 좋은 산책 시간이었죠. 그런데 곧장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을 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주문한 음식을 앞에 두고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저까지 네 식구가 약속이라도 한 듯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누구 하나 말을 섞지도 못하고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게 밥알을 씹었죠. 그제야 이게 햇볕 때문임을 알아차렸습니다. 고작 20분 만에 온 가족이 일사병 증세로 '로그아웃' 된 겁니다.


결국 우리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근처 스타벅스로 급히 피신했습니다. 차가운 에어컨 바람 아래서 한참을 쉬고 나서야 겨우 정신이 돌아오더군요.


도시 곳곳의 햇볕 대책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곳의 일상은 온통 햇볕에 맞서기 위한 대책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시티 건물의 독특한 구조입니다. 건물마다 인도 위로 길게 뻗어 나온 덮개 시설, '어닝(Awnings)'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설치되어 있습니다. 겨울철엔 비를 피하는 용도로도 쓰이지만, 사실은 뜨거운 햇볕을 피하기 위한 필사적인 가림막에 가깝습니다. 덕분에 보행자는 쾌적하게 걷지만, 정작 바로 눈앞에 있는 멋진 건물들의 외관은 좀처럼 의식되지 않습니다.


학교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이곳 학교와 데이케어의 'No Hat, No Play' 규칙은 결코 엄격한 훈육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그저 철저한 교육 방침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이건 교육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습니다.


이런 생존 전략은 도로 위에서도 이어집니다. 뉴질랜드는 틴팅(선팅) 규정이 꽤 까다로운데, 이는 자율적인 운전 문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수시로 상대방 운전자와 눈을 맞추고 수신호를 주고받으며 통행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기에 전면유리와 1열유리는 틴팅을 할 수 없습니다. 그 대가로 운전자는 자외선의 직격탄을 맞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선글라스는 패션 아이템이 아니라 반드시 구비해야 할 '장비'가 됩니다.


밤 9시의 태양


햇볕의 강도만큼 놀라운 건 그 끈질긴 생명력입니다. 오클랜드의 여름은 해가 정말 깁니다. 보통 밤 9시쯤 되어야 슬슬 해가 저무는데, 서머타임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확실히 물리적으로 해가 길다는 체감이 듭니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한참을 뛰어놀아도 밖은 여전히 대낮처럼 환합니다. 하루가 길어지는 건 즐거운 일이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밖이 훤한데 이제 자야 한다고 아이들을 설득하는 게 매일 밤의 고역입니다. 이 길고 강렬한 햇볕 덕분에 정원의 식물들은 무서울 정도로 쑥쑥 자라지만, 그 성장을 지켜보는 인간의 체력은 가끔 바닥을 보입니다.


그럼에도 이 햇볕이 좋은 이유


이렇게 투덜거려도, 사실 저는 이 햇볕이 너무나 좋습니다.


이 압도적인 일조량 덕분에 이곳의 나무와 풀들은 믿기지 않을 만큼 싱그럽고 풍성한 초록을 뿜어냅니다. 그 찬란한 풍경을 매일 보고 자라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숨길 수 없는 여유가 배어 있습니다. 날카로운 자외선에 얼굴을 찌푸리다가도, 다시 고개를 들어 파란 하늘을 마주하면 왜 사람들이 이 불편한 햇볕 아래 머무르길 자처하는지 금방 알게 됩니다.


조금 짙어진 피부와 언제든 꺼낼 수 있게 챙겨둔 선글라스. 이 햇볕이 주는 여유를 누리기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로 저는 언제든 기꺼이 지불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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