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마법을 부리는 요술봉
나는 글을 쓰는 것만큼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사진은 스마트폰 하나로 손쉽게 찰칵찰칵 셔터를 누를 수 있어 글쓰기보다 단시간에 멋진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사진을 감성 있게 잘 찍는다"라는 칭찬도 제법 듣는다. 그래서인지 사진을 촬영하는 것은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습관으로 자리하고 있다.
고단했던 일과를 마친 고요한 밤.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며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한 장씩 넘긴다. 친한 친구들과 미소를 머금고 찍은 사진, 사랑스러운 반려견 하루가 산책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을 누군가가 찍어준 사진. 사진은 짧지만 강렬하게 추억을 회상하게 하는 수단이다.
어느 날 부모님 집에서 먼지가 쌓인 앨범을 펼쳐보았다. 어린 시절의 나를 여러 장의 사진으로 만나던 중에 고뇌하는 어린아이가 눈에 띄었다. 고작 3살짜리 아이가 무엇으로 인해 인생의 쓴맛을 맛본 것처럼 인상을 찡그렸는지 알 수 없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홍합탕의 시원한 국물을 맛본 것은 분명하다. 어렴풋이 떠올린 기억으로 이날은 부모님과 어린 시절을 소환하여 하하 호호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꽃은 자연의 섭리를 따른다. 아무리 깨끗한 물을 매일 갈아주더라도 꽃잎은 떨어진다. 결국에는 악취를 풍겨 어쩔 수 없이 버리게 되는 것이 꽃이다. 그러나 사진 속에서 꽃은 여전히 주홍빛 미소를 띠고 있다. 수줍게 꽃봉오리를 피우지 않았던 그때의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다. 꽃을 선물해 준 이도, 선물을 고맙게 받은 이도 사진을 바라보며 미소를 잃지 않는다. 꽃은 그 몸이 사라졌지만, 영원한 존재로 남는다.
사진은 기억의 파편들을 붙인다. 쳇바퀴가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에 치여 잠시 묻어둔 기억 조각들을 하나둘씩 잇는다. 사진은 영속성을 담아내는 도구이기도 하다. '찰나'를 '영원'으로 탈바꿈하여 소중한 존재를 각인시킨다. 그래서 사진이 좋다. 사진 한 장으로 우리는 까까를 즐겨 먹던 햇병아리 유치원생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사진에 고스란히 담긴 감정을 더듬어 지금의 무표정인 나를 웃게 하기도 하는, 시간에 마법을 부리는 요술봉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