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신고에 이어 ‘배우자 비자'라는 두 번째 관문이 열렸다. 약 5년간 취업 비자로 쿠알라룸푸르에서 지내다가 남편을 따라 말라카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장기 체류 목적으로 배우자 비자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말라카에서 재택근무가 가능한 일을 구하려 했지만, 엔데믹 이후 100% 재택근무를 허용하는 회사를 찾기 어려웠다.
비자 없이 90일을 넘기기는 힘들어서 결국 배우자 비자를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까지 회사에서 비자를 지원해서 고충이 없었다. 그러나 라이언과 함께 배우자 비자를 준비하며 마음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화(火)를 다스리고 인내를 미덕으로 삼는 법을 배웠다. 오죽했으면 혼인신고는 배우자 비자보다 껌이었다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내뱉었는지!
말레이시아는 13개의 연방 주로 이루어져 있어 연방 주에 따라 배우자 비자를 신청하는 방법이 다르다. 주마다 일관된 체계가 없어서 직접 발품을 팔아 배우자 비자를 준비했다. 말라카 이민국의 공무원에게서 배우자 비자에 필요한 서류 목록을 받았고, 약 한 달의 시간이 걸려 모든 서류를 준비했다. 드디어 책 한 권 분량의 서류들을 비자 관할 부서에 제출했다. 전쟁에 나가기 전에 갑옷과 검을 빼놓지 않는 마음가짐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때부터 철썩거리는 파도처럼 예상치 못한 역경이 이어졌다. 번호표를 뽑아서 만나는 공무원마다 말이 달랐다. 어떤 이는 외국인 배우자의 여권이 있으므로 한국의 주민등록증이 필요 없다고 했지만, 다른 이는 한국의 주민등록증을 복사하고 번역해야 한단다. 그렇게 주민등록증에 적힌 내용을 번역한 서류를 전달했는데, 이에 대한 공증을 대사관에서 받아오라며 또 다른 공무원이 손사래를 쳤다. 다음날 어스름한 새벽에 눈을 비비며 운전대를 잡은 남편과 함께 아침 일찍이 대사관에서 공증을 받았다. 쿠알라룸푸르를 즐길 새도 없이 서둘러 말라카로 돌아가서 공증된 서류를 제출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말레이시아가 말레이시아 한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유도리가 없이 꽉 막힌 행정 시스템이다. 그렇다고 명확한 체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중에서 ‘관계 경위서(Chronology letter)’라는 서류가 발목을 여러 번 잡았다. 관계 경위서는 두 사람이 서로를 언제, 어떻게 알게 되었고 관계가 어떤 식으로 발전했는지를 연대순으로 기록하는 서류로, 관계의 진정성과 신뢰성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다. 관계 경위서에 대한 샘플이 없는 상태에서 말레이어로 해당 서류를 작성했다. 서류를 들고 배우자 비자를 담당하는 판사를 찾아갔다. 판사 앞에서 경위서에 작성된 모든 내용이 사실이라며 손을 들고 선서했다. 판사의 도장이 찍힌 경위서를 들고 공무원에게 서류를 제출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한마디는 “다시 작성해.”였다. 판사가 승인한 서류 내 구성이 잘못되었다는 게 공무원의 냉소적인 답변이었다.
돈은 돈대로 쓰고 스트레스는 배가 쌓였다. 그러나 두 사람이 찰떡같이 붙어 있으려면 배우자 비자가 필요했다. 남편의 간절한 호소에 공유된 샘플로 다시 한번 관계 경위서를 작성했다. 이번에는 단어가 문제였다. 어감이 다르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한국어로 예를 들면 “경험하다”라는 단어를 “체험하다”로 대신 사용해서 뉘앙스가 어색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해당 단어를 고쳐야 했다. 그렇게 서류를 작성하고, 판사 앞에서 선서하며, 공무원에게 서류를 제출하는 악순환을 다섯 번 거듭하던 끝에 관계 경위서가 받아들여졌다.
웃기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신혼집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증빙 자료들을 제시해야 했다. 콘도로 가는 길목과 로비, 우편함 그리고 유닛 번호를 사진으로 담는 것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신혼집으로 향하는 방향을 직접 그려오라는 공무원의 요구가 있었다. 말 그대로 지도를 그려야 했다. 인터넷에다 콘도명을 검색하면 집 주소와 함께 경로가 나오는 21세기에 살고 있는데 말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남편 덕분에 지도를 만드는 것은 수월했다. 그러나 공무원이 지도를 확인하자마자 내뱉은 다음의 말이 황당했다.
“신호등은 어딨어?”
다행히 그 자리에서 남편이 여러 개의 신호등을 손으로 그려 지도가 반려되는 일은 없었다. 무비자로 불법 체류자가 되기 바로 직전이 되어서야 마침내 배우자 비자에 관한 서류들이 모두 승인되었다. 그리고 약 한 달 뒤에 여권에다 1년짜리 배우자 비자 스티커를 붙일 수 있었다. 그 사이에 공무원들과 얼굴을 익혀서인지 배우자 비자를 받은 마지막 날엔 그들과 하하 호호 스몰 토크를 하며 미소를 띠는 관계에 이르렀다. 그렇게 다사다난했던 배우자 비자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혼인신고에 이은 배우자 비자는 비 온 뒤 땅이 굳듯 우리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인내심이 바닥난 나를 어르고 달래는 라이언이 고마웠고, 짜증이 날 만한 상황에도 차분히 대처하는 그가 새삼 존경스러웠다. 무엇보다 그에게서 ‘트루 러브(True love)’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배우자 비자에 대한 웃픈(웃기고 슬픈) 경험은 이만하면 족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