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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녜 Nov 29. 2024

말라카댁의 일주일

삶의 틈새를 채우며 사는 일상

창문 너머로 햇살이 포근하게 스며드는 침실. 따사로운 분위기가 감도는 아침을 맞이한다. 라이언의 모닝 키스로 퉁퉁 부은 두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깬다. 출근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라카댁의 하루를 시작한다. 밤새 꼬르륵거리던 배를 잠재우기 위해 달걀 두 알과 감자 하나를 삶는다. 그사이 청소기로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한 더미 쌓인 빨랫감을 세탁기에 돌린다. 포슬포슬한 감자에 탱글탱글 잘 삶아진 달걀을 히말라야 핑크 소금에 톡톡 찍어 먹는다. 향초를 피우며 은은한 라벤더 향이 퍼질 때쯤 새하얀 커튼 뒤로 보이는 푸른빛 바다를 배경으로 잠시 머릿속을 비운다. 한 시간이 지나 볕이 잘 드는 거실에다 빨래를 널고 경건한 마음으로 책상을 정돈한다.


  점심은 그래놀라로 가득한 그릭 요거트를 먹거나 때에 따라 거르기도 한다. 글쓰기가 준비된 테이블 앞에 앉아서 태블릿 화면을 바라보며 하늘색 키보드를 두드린다. 텅 빈 화면 앞에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차례대로 풀어낸다.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에세이를 작성한다. 글쓰기에 몰입하며 시간을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르게 흘려보낸다. 문장마다 하나의 강줄기처럼 흐르더니 마침내 하나의 에세이가 완성된다.


  어느새 남편이 퇴근할 시간이 다가온다. 태블릿을 닫아두고 주방으로 향한다. 일주일 치 식단을 확인하며 냉장고에서 재료를 주섬주섬 꺼낸다. 우리 부부의 주요 메뉴는 한식, 일식 그리고 샐러드다. 가스레인지가 하나뿐인 신혼집이라 요리할 순서를 신중히 정한다. 재료를 손질하고 조리 도구를 사용하고 나서 설거지로 주방을 깨끗하게 유지한다. 남편이 집에 도착할 때쯤 요리를 완성한다.


  라이언과 TV를 시청하며 저녁을 먹는다. 식사하며 오늘 있었던 일을 공유한다. 참새처럼 재잘거리는 그가 귀엽다. 그의 말을 경청하며 밥 한 끼를 뚝딱한다. 어느 정도 소화가 되면 피클볼을 하러 모임에 참여하거나 콘도 내 농구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패들로 공을 콩콩 주고받다 보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노곤한 몸을 따뜻한 물로 녹이며 피로를 씻는다. 피클볼을 하지 않는 날에는 각자의 ‘me time’을 가진다. 남편은 게임을 하거나 프리미어 축구 리그를 시청하고, 아내는 책을 읽거나 여행 유튜버들의 영상을 정주행한다. 때로는 넷플릭스의 스릴러 드라마를 함께 감상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카페 호핑으로 주말의 시작을 알린다. 느지막하게 아침을 맞이하며 구글맵에 저장한 카페를 호핑 하거나 맛집을 탐방한다. 주말마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관광지는 피하고 현지인 동네에서 데이트하는 동선이 주를 이룬다. 말라카에서 커피가 맛있는 집이나 입맛에 맞는 식당이 가물에 콩 나듯 있어서 가끔은 단골집에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컨디션이 엉망인 날에는 남편과 소파에 누워서 코미디 영화를 보거나 불닭 소스로 매콤한 떡볶이를 먹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주말의 끝에는 일찍이 남편을 따라서 교회를 가거나 혼자서 커피를 내려 마시고 집안일을 돌본다. 남편과 밖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나서 그로서리로 향한다. 일주일 식단을 미리 정해서 장을 하나둘씩 보기 시작한다. 이때 의도치 않게 주전부리가 추가되지만 괜찮다. 장보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같이 저녁을 해 먹고 또다시 서로의 me time을 존중하며 일주일을 마무리한다.

  이렇게 반복되는 일상은 남들이 보기에 단조롭고 때로는 스스로 지루할 때가 있다. 그럼에도 마음이 차분히 머무는 나날이 이어지며 무탈하게 흘러가는 평화로운 일주일에 감사하게 된다. 진부한 하루마다 새로운 빛깔이 살며시 칠해지는 일주일을 보내며 말라카에서 살아가는 의미를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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