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기 있는 한 걸음에 대한 클레어 키건의 시선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독자들을 1980년대의 아일랜드로 데려간다. 당시 아일랜드는 심각한 경제 불황과 높은 실업률로 국민들이 극심한 어려움을 겪던 시기다. 우리나라가 IMF를 겪었던 1990년대 후반의 잿빛 사회가 떠오른다. 국민의 90%가 가톨릭 신자이던 아일랜드 사회는 가톨릭교회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있었다. 교회는 사회 전반에 권위를 행사했으며, 고아와 미혼모들은 사회적으로 철저히 배척당했다. 미혼모와 그 자녀들은 가톨릭교회가 운영하는 세탁소 등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학대받았다. 국가의 묵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난 빌 펄롱은 석탄을 팔며 아내와 딸 다섯을 부양해야 하는 평범한 가장이다. 수녀원에 배달을 갔다가 우연히 소녀들의 착취 현장을 본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비록 아버지는 없었어도 엄마가 일하던 집의 주인인 미시즈 윌슨의 배려로 그 집에서 자랐다. 크리스마스 때면 원하던 선물은 아니어도 미시즈 윌슨에게 선물도 받았다. 그 집 일꾼 네드는 펄롱의 구두를 닦아주고 면도하는 법도 알려주며 그를 챙겼다. 또한 자식이 없었던 미시즈 윌슨은 펄롱의 엄마가 집안일을 하는 사이 펄롱을 돌보고 글도 가르쳐주었다. 그의 곁엔 좋은 어른들이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펄롱은 다시 수녀원에 배달을 갔다가 석탄 창고에 갇힌 소녀를 보게 된다.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소녀를 다시 수녀원장에게 데려다주고 돌아온 펄롱은 온종일 검댕을 뒤집어쓰고 일했는데도 잠들지 못한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내의 선물을 사들고는 수없이 망설이면서도 집이 아닌 소녀가 갇혀 있을 석탄 창고로 간다. 굶주림과 추위에 떠는 소녀에게 자신의 외투를 입혀 밖으로 나온다. 자기 보호본능과 용기가 서로 싸우는 걸 느끼면서도 그의 발길은 수녀원이 아니라 집이 있는 시내로 향한다. 마을 사람들의 차가운 눈초리를 받으며 두려움 속에 시내를 지나며 펄롱은 생각한다.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칼바람이 더 매섭게 느껴지는 올겨울 우리의 광장을 떠올렸다. 속보가 뜨기 무섭게 맨몸으로 광장으로 달려 나간 시민들. 무장한 군인들을 껴안으며 막아서던 그들은 무섭지 않았을까. 이 나라를 40여 년 전 그 끔찍했던 시절로 되돌릴 수는 없다는 절박함이 그들을 늦은 밤 광장으로 달려 나가게 했을 것이다. 아주 보통의 시민들이 보여준 그 용기는 내내 나를 부끄럽게 한다. 한 걸음 내디딜 용기를 갖지 못한 나는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에 대한 부채감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소녀와 함께 집을 향해 가는 펄롱은 벌써 저 너머의 고생길이 느껴진다. 가슴속에선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몇 날 며칠 밤잠을 설치며, 창고에 갇힌 소녀와 가정의 안위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의 모습은 오늘날의 우리와 다르지 않다. 2025년의 대한민국은 1980년대의 아일랜드와 얼마나 다른가? 두려움에 떨면서도 용기 내 한 걸음을 내디딘 펄롱과 칼바람을 뚫고 광장으로 달려 나간 수많은 펄롱들. 그들이 용기 있는 한 걸음을 내디딘 덕에 이 글을 쓰는 나의 밤은 무탈하게 깊어간다.
#클레어키건#막달레나세탁소#아일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