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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수 Jun 15. 2020

야구 소녀의 직구가 통하는 시대가 오기를

[영화 프리뷰] ‘야구소녀’

그는 국가대표 야구 선수다. 중학교 3학년이던 2015년 장충리틀야구장에서 홈런을 때렸다. ‘최초’라고 했다. 그러니까 ‘여자’ 선수로는 처음. 웬만한 남자도 던지기 힘든 시속 113km의 빠른 공을 던지는 그의 이름은 김라경(20)이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2016년 시속 100km가 넘는 공을 던진 선수도 있다. 그해 장충리틀야구장에서 남학생의 공을 때려 홈런을 쳤다. ‘여자’ 초등학생이 날린 최초의 홈런. 그의 이름은 박민서(15)이다.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 이름을 알린 여자 야구 선수들. 남자들만 뛰고 있는 프로야구에 빠진 팬들에겐 어쩌면 생소할 이름들. 야구는 남자들만의 공놀이가 아니다. 프로가 나오지 않았을 뿐, 야구를 하는 여자들은 많다. 그리고 선발만 된다면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뛸 수 있다. 다만 아직 한 번도 없었을 뿐. 18일 개봉하는 영화 <야구소녀>(감독 최윤태)를 보면서 든 생각. 언젠가는 여자 프로야구 선수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천재 야구소녀’라고 불린 주인공 주수인(이주영)은 남자만 있는 고등학교 야구부에 들어갔지만, 프로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한 채 졸업을 앞두게 된다. 시속 130km를 던져 전 세계에서 거의 가장 빠른 공을 가진 선수지만 현실은 차갑기만 하다. 하지만 그의 목표는 여전히 프로 입단. 그의 또렷한 목표와는 달리 주변에서는 포기하라고만 한다. 손에 피가 날 정도로 훈련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트라이아웃(선수 선발 테스트) 기회조차 얻기 힘들다.


영화 '야구 소녀'의 주수인(이주영) ⓒ싸이더스 


야구부에 새로 부임한 코치 최진태(이준혁)마저 주수인에게 "네가 여자라서 안 된다고 하는 것 같아? 그게 아니라 넌 실력이 없는 거야. 다른 선수들에 비해 힘이 너무 약해“라고 한다. 하지만 주수인의 뜨거운 집념을 본 최진태는 장점을 살리자고 제안한다. 공 회전력이 좋으니까 너클볼을 던지자고. 포수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예측하기 힘든 변화구다. 주수인은 희망을 품는다.


남성들 틈 속에서 실력으로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기 위해 분투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 1999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여자 야구선수 최초로 출전했던 안향미(40) 씨의 이야기가 주수인 캐릭터의 모티브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주변의 만류를 응원으로 바꾸는 여느 스포츠 영화와 닮았지만 최초를 써 내려가는 주수인의 뚝심에 이 영화는 105분 내내 뜨겁다. 그래서 주수인의 꿈은 단지 한 명의 꿈이 아니라 또 다른 주수인을 꿈꾸는 수많은 미래의 야구 소녀들의 버팀목일 것이다. 다부진 그의 표정만큼 그는 너클볼을 연마하지만 꿈을 향한 열정은 ‘직구’로 정면 승부한다. “사람들이 내 미래를 어떻게 알아요? 나도 모르는데… 전 해보지도 않고 포기 안 해요.”


그렇다면 안향미 씨는 어떻게 됐을까. 그는 프로지명을 받지 못했지만 일본 사회인야구에서 뛰다 2004년 한국 최초의 야구팀 ‘비밀리에’를 만들었다. 어디에선가 최초의 이름으로 낯선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바꾸려는 사람들이 있다. 안향미처럼, 주수인처럼, 혹은 이전에 많은 야구 소녀들이 뿜어낸 에너지들이 또 다른 야구 소녀에게 전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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