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가난세 보고서 13

2부: 시간의 가난세 - 누가 하루 3시간을 도둑질하는가 3

by 일선

2장 '시간 빈곤층'의 탄생


'시간이 없다.' 이 말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흔하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불평등하고 폭력적인 문장이다. 1장에서 한국 사회의 극심한 공간 불평등이 어떻게 저소득층을 도시 외곽으로 밀어내고, 그 대가로 매일 2~3시간의 '시간세'를 징수하는지 확인했다. 이 막대한 세금은 단순한 이동 시간의 증가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다운 삶의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사회 시스템의 폭력이다. 정교하게 구조화된 착취다.


사회 시스템에 의해 강제로 시간을 박탈당한 이들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계층으로 분화한다. 바로 '시간 빈곤층'이다. 이런 시간 빈곤 현상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그 양상 또한 복합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시간세가 금전적 가난세보다 더 잔인한 이유는 시간의 절대적인 '비가역성' 때문이다. 사회 시스템에 의해 도둑맞은 시간은 결코 되돌릴 수 없다. 이는 빈곤을 고착화하고 대물림하는 가장 강력하고 은밀한 기제로 작동한다.


'시간 빈곤'에 따른 불평등의 민낯

시간 빈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루 24시간을 구성하는 활동의 성격을 구분해야 한다. 국제적인 관련 연구와 통계청의 생활시간조사는 인간의 활동을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나눈다.


1. 필수 시간 (Necessary Time): 수면, 식사, 개인위생 등 생물학적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활동에 드는 시간.


2. 의무 시간 (Committed Time): 유급 노동(일), 가사 노동, 학습, 이동(통근, 통학) 등 사회적 의무나 계약에 의해 수행해야 하는 활동에 드는 시간.


3. 자유 시간 (Discretionary Time): 필수 시간과 의무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 여가, 취미 활동, 사회적 교류, 휴식 등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시간.


'시간 빈곤'은 단순히 바쁘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의무 시간이 과도하게 팽창해 자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를 의미한다. 핵심은 장시간의 노동이나 통근을 줄이면 즉시 금전적 빈곤선 아래로 추락할 수밖에 없는 상태, 즉 시간 사용에 대한 주체적인 선택권이다. '시간 주권'이 박탈된 상태라는 것이다.


저소득층은 생존을 위해 시간을 팔아야만 하고(장시간 노동), 동시에 공간 불평등으로 시간을 빼앗긴다(장시간 통근). 이런 이중의 착취 구조 속에서 '시간 빈곤층'이 탄생한다. 그 규모는 절대 작지 않다. 과거 한국고용정보원의 연구에 따르면 전체 노동 인구의 42%에 해당하는 약 930만명이 '시간 빈곤' 상태로 추산됐다. 특히 맞벌이 가구의 88%가 시간 부족을 겪는다는 사실은 이 문제가 얼마나 보편적이고 구조적인지를 보여준다.


OECD 최장의 통근과 노동 국가

모두에게 24시간(1440분)이 공평하다는 신화에 가깝다. 한국 사회의 시간 사용은 철저하게 계급적이다. 그 현실은 국제 비교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첫째, 한국인의 통근 시간은 살인적이다. 통계청이 2023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서울·경기·인천) 거주자의 평균 통근 시간은 83분에 달한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인 최장 수준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글로벌 평균과의 비교다. 관련 이동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세계 인류의 평균 이동 시간은 하루 54분이다. 반면 한국인은 97분으로 세계 평균보다 무려 43분이나 길다. 이는 미국(58분), 독일(58분), 프랑스(56분)는 물론, '통근 지옥'으로 알려진 일본(64분)조차 뛰어넘는 수치다. 한국 사회는 시스템적으로 시민들의 시간을 길 위에서 낭비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둘째, 노동 시간 역시 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KIHASA)의 OECD 31개국 비교 연구(2021년)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은 연평균 1601시간을 일해 31개국 중 가장 오래 일했다. 주 48시간 상한을 넘는 노동자 비율도 18.9%로 OECD 평균(7.4%)의 두 배를 상회했다.


장시간 통근과 장시간 노동이 결합하면서 시간 빈곤의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통근 시간의 증가가 필연적으로 다른 시간의 감소를 의미하는 잔인한 제로섬 게임이 된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두 근로자의 하루를 재구성하여 비교해보자.


A씨 (시간 빈곤층): 경기도 외곽 거주, 저소득층. 왕복 3시간(180분) 통근.

B씨 (비교군): 서울 도심 거주, 중산층 이상. 왕복 40분 통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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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는 시간세의 작동 방식을 보여준다. 두 사람의 노동 시간은 같지만, A씨는 공간 불평등으로 매일 140분의 '시간세'를 추가로 납부해야 한다. 이 140분은 고스란히 A씨의 삶에서 공제된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첫째, 필수 시간의 침식. 특히 수면 부족이다. A씨는 B씨보다 매일 1시간 덜 잔다. 대한수면연구학회의 '2024 한국인 수면 실태' 조사 결과와 일치한다. 한국인의 평균 수면시간은 6시간 58분이다. OECD 평균(8시간 27분)보다 약 1시간 30분이나 부족하다. 생존의 기본 조건마저 위협받는 것이다.


둘째, 자유 시간의 박탈이다. A씨의 하루 자유 시간은 단 2시간에 불과하다. 이는 KIHASA 연구에서 나타난 한국인의 평균 자유 시간(258분, 4시간 18분)보다도 훨씬 적다. OECD 최하위권 수준이다. 가장 긴 자유 시간을 누리는 노르웨이(368분)와 비교하면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A씨의 2시간은 여가가 아니라, 다음 날 노동을 위한 최소한의 회복 시간에 가깝다. 사회 시스템은 가난한 이의 시간을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징수한다.


박탈 1 미래의 봉쇄

시간 빈곤이 초래하는 가장 치명적인 결과는 미래에 대한 투자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파괴한다는 것이다. 인적 자본 축적을 위한 학습과 자기 계발은 절대적인 시간 투입과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하지만 시간 빈곤층에게 이는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다. 사회 시스템은 그들의 현재 시간을 착취하면서 그들의 미래마저 막고 있다.


A씨가 B씨보다 연간 더 많이 지불하는 시간세는 무려 616시간에 달한다(140분/일 × 264일/년). 이 616시간은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잠재적 투자 시간이다. 보통 직무 전문자격 하나를 취득하는 데 통상 500~600시간 내외의 학습이 요구된다. A씨는 매년 잠재적으로 전문 자격증 1개를 취득할 수 있는 시간이 통째로 길 위에서 소멸하고 있다.


이를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더욱 명확해진다. A씨의 시급을 1만 원으로 가정할 경우, 연간 616만 원에 해당하는 시간을 잃는 것이다. 616시간은 하루 8시간 근무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77일 치 근무 시간에 해당한다. A씨는 B씨보다 매년 두 달 반을 더 일하는 것과 다름없는 시간을 무급으로, 그것도 가장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헌납하고 있다.


이 막대한 시간 손실은 저소득층이 자기 계발을 통해 더 나은 임금의 직업으로 이동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성인의 교육훈련 시간이 소득과 정비례한다는 관련 연구 결과는, 시간이 없는 저소득층이 낮은 임금 상태에 고착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현실을 보여준다. 사회 시스템은 저소득층의 시간을 '통근'이라는 명목으로 무의미하게 소각하도록 강제한다. 이를 통해 현재의 빈곤이 미래에도 지속되도록 설계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에너지의 고갈이다. 왕복 3시간의 통근은 그 자체가 고강도 노동이다. 수도권 외곽에서 서울로 향하는 '지옥철'이나 만원 버스에 시달리는 경험은 극심한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한다. 파주나 동탄에서 '출근만 2시간' 걸리는 생활에 지쳐가는 시민들의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온 저녁,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사회 시스템은 저소득층에게 끊임없이 '노력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노력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자원인 시간과 에너지를 체계적으로 박탈한다. 명백한 구조적 모순이며 기만이다. 학습의 포기는 개인의 나태함 때문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이 강요한 과도한 피로의 결과다.


혹자는 통근 시간을 활용해 학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현실을 모르는 공허한 이야기다. 도쿄의 통근 열차 혼잡률이 180%를 넘는 것처럼, 한국 수도권의 출퇴근길 역시 혼잡도 200%를 넘나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공간에서는 신체를 가누는 것조차 힘들다. 어떤 생산적인 활동도 불가능하다. 끊임없는 소음과 진동, 예측 불가능한 정체 그리고 환승과 대기로 인해 파편화된 시간 속에서는 깊이 있는 학습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이 시간은 오롯이 고통을 감내하며 흘려보내야 하는 '죽은 시간'이다. 사회 시스템이 부과한 형벌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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