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가난세 보고서 8

1부: 돈의 가난세 - 가난할수록 비싸지는 것들 4

by 일선

'지옥고(地屋考)': 돈을 더 내고도 박탈당하는 것들


주거 가난세의 비극은 단순히 금전적 비용에 그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시장 평균보다 몇 배나 높은 단가(평당 최대 50만 원)를 지불하면서도,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주거 환경조차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더 많이 내고(Pay More), 더 적게 누린다(Get Less).


한국 사회는 이러한 현실을 '지옥고(地屋考)'—반지하(地), 옥탑방(屋), 고시원(考)—라는 신조어로 압축해 표현한다. 이들이 거주하는 공간은 대부분 '최저주거기준'(1인 가구 최소 14㎡ 및 필수 설비)에 미달한다. 때로 교도소 독방 면적보다도 좁다.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도 박탈당하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1. 생명의 박탈: 안전의 사각지대와 반복되는 참사


비적정 주거 공간은 생명을 위협하는 공간이다. 특히 화재 위험은 치명적이다. 2018년 국일고시원 화재 참사 이후 정부는 화재안전성능 보강을 의무화했다 하지만 현실은 참담하다. 2023년 기준, 보강이 완료된 고시원은 전체 대상의 13%에 불과했다. 87%의 고시원이 여전히 스프링클러 미설치 등 화재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런 방치의 결과는 비극으로 이어진다. 2024년 3월, 서울 중구 후암동 쪽방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로 거주자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런 참사는 수년째 반복되고 있지만 개선은 더디다.


기후 위기는 또 다른 위협이 됐다. 2022년 서울 폭우 사태 당시 반지하 거주민의 비극적인 사망 사고는 주거 불평등이 어떻게 재난 불평등으로 이어지는지 명확히 보여줬다. 이들은 가장 비싼 평당 임대료를 내면서도, 화재와 침수의 공포 속에서 생명의 위협을 감수해야 한다.


2. 건강의 박탈: 빛과 공기에도 세금이 붙다


가난한 이의 주거 공간은 건강을 좀먹는다. 창문이 없거나 복도 쪽으로만 난 고시원(내창방)은 채광과 환기가 불가능하다. 반지하 주택은 습기와 곰팡이, 해충 문제에 상시로 노출돼 있다. 이는 호흡기 질환이나 피부 질환의 위험을 높일 뿐만 아니라, 우울증 등 정신 건강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


2023년 관련 조사에서 서울 쪽방 주민의 84.7%가 '질병을 앓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공동 화장실 사용으로 감염병 위험도 높다. 이런 시스템은 가난한 이에게 '질병을 유발하는 공간'을 비싸게 판매하고, 그로 발생하는 의료 비용(몸의 가난세)을 개인이 감당하게 만든다.


3. 숨겨진 비용의 폭탄: 주거의 비효율성이 강제하는 추가 지출


열악한 주거 환경은 끊임없이 추가적인 비용 지출을 강제한다. 이는 저소득층의 가처분 소득을 잠식하는 또 다른 형태의 가난세다. 역설적으로, 열악한 주거에 살수록 생활비가 더 많이 드는 구조다.


부엌 없는 삶의 비용. 고시원이나 쪽방에는 제대로 된 조리 시설이 없어 외식이나 간편식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이는 높은 식비 지출을 유발한다. 영양 불균형으로 건강을 악화시킨다. 냉장고가 없어 식자재를 보관하지 못해 매번 소량을 비싸게 구매해야 하는 유통 가난세까지 이중으로 부담하게 된다.


에너지 빈곤의 심화. 에너지 효율이 극도로 낮은 노후 주택은 심각한 '에너지 빈곤' 문제도 야기한다. 비슷한 수준의 냉난방을 위해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비용 부담으로 냉난방을 포기하고 기후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기도 한다.


4. 시간의 박탈: 공간이 속박하는 시간 가난세


주거 가난세는 필연적으로 '시간 가난세(Time Tax)'로 이어진다. 고시원 거주자들은 공용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매일 불필요한 대기 시간을 감수해야 한다. 막대한 주거비를 감당하기 위해 저소득층은 노동 시간을 늘릴 수밖에 없다. 이런 시스템은 비싼 공간 비용을 통해 가난한 이의 시간을 저당 잡고 있다.


공간의 불평등이 봉쇄하는 미래: RIR 40%의 덫과 정책의 실패


과도한 주거비 부담은 저소득층을 빈곤의 덫에 가두는 강력한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한다. 이는 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RIR, Rent to Income Ratio) 통계를 통해 드러난다.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전체 가구 평균 RIR은 15~20% 정도다. 하지만 임차 가구의 RIR은 30~40%에 달한다. (서울연구원의 ‘2024년 서울복지실태조사’ 보고서) 특히 쪽방 거주자의 상황은 심각하다. 상당수 쪽방 거주민은 기초생활수급비(1인 가구 약 62만 원)로 생활한다. 평균 월세 약 26만 원을 지불한다. 이를 계산하면 RIR이 40%를 상회한다. 소득의 절반 가까이 1평 남짓한 공간에 지불하는 것이다.


RIR이 40%를 넘는 상황에서 저축은 불가능하다. 이는 자산 형성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주거 상향 이동도 막고 빈곤을 고착화한다.


높은 주거비 부담은 생존의 위협으로 직결된다. 서울 쪽방 주민 대상 설문에서 주거비 부담 때문에 91.5%가 식료품비를 줄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31.4%는 돈이 없어서 질병 치료를 포기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한국도시연구소의 ‘비주택 거주자 주거지원 희망 수요조사’) 집세를 내기 위해 밥을 굶고 아파도 참아야 하는 현실. 이것이 주거 가난세가 만들어내는 가장 비극적인 결과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은 이런 착취 구조를 깨뜨리지 못한다. 정부는 저소득층의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주거급여를 지급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정부 지원금을 집주인이 모두 가져간다"는 얘기가 나온다. 실제로 주거 급여가 인상되면 쪽방촌 월세도 정확히 그만큼 따라 오르는 현상이 반복적으로 확인됐다. 이는 정책 효과가 임대인의 소득으로 흡수돼 버리는 구조적 문제를 보여준다. 세입자의 실질적인 RIR은 개선되지 않았다.


결국 주거 가난세는 저소득층에게 잔인한 선택을 강요한다. 비싼 도심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 장시간의 통근이라는 막대한 '시간세'를 지불하거나, 통근 시간을 줄이기 위해 도심의 열악하고 비싼 고시원을 선택해야 한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들은 돈과 시간이라는 이중의 가난세를 피할 수 없다.


글로벌 주거 빈곤 보고서: 보편적인 공간 착취와 각국의 대응 (2025년 기준)


가난할수록 단위 면적당 더 비싼 임대료를 지불해야 하는 현상은 비단 서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전 세계 대도시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내재한 구조적 문제다.


1. 홍콩의 '관짝집(Coffin Homes)'과 극단적 착취


주거 불평등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홍콩이다. 약 20만 명이 '케이지 홈'이나 '관차이(관짝집)'라 불리는 1~2㎡ 남짓의 비인간적인 공간에 거주한다. 2024년 말 기준, 이 공간들의 월세는 한화 약 37~72만 원 수준이다.


홍콩 정부는 8㎡ 미만의 쪼개기 방을 단계적으로 퇴출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기존의 '관짝집'은 이번 조치에서 제외됐다. 2049년까지 비인간적 주거를 퇴출하겠다는 목표는 공공주택 공급 부족으로 요원해 보인다.


2. 미국의 SRO(Single Room Occupancy): 정책 실패와 재조명


미국의 SRO는 한국의 고시원이나 여인숙과 유사한 형태다. 뉴욕시는 과거 SRO를 제거하는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저가 주거 재고 급감과 노숙인 폭증이라는 사회 문제를 겪었다. 이는 최저 주거 망을 시장 논리로 제거했을 때 발생하는 부작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힌다.


반면 샌프란시스코는 SRO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5년 4월부터는 SRO의 7일 미만 단기 임대를 금지하는 조치를 발효했다. 이는 SRO가 관광객 대상 숙박업소(에어비앤비 등)로 전환되는 것을 막고 장기 거주자의 주거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정책적 개입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3. 영국의 '빈곤 프리미엄'과 에너지 선불제의 함정


영국에서는 주거와 관련된 '에너지 빈곤 프리미엄'이 심각한 문제다. 특히 주목할 것은 '선불식 계량기(Prepayment Meters)'의 함정이다. 신용이 낮은 저소득층이 주로 사용하는 이 방식은, 과거 일반 요금보다 단가가 훨씬 비쌌다. 가난한 사람이 동일한 양의 에너지를 더 비싸게 사용하는 전형적인 가난세였다.


2022년 에너지 가격 폭등에 돈이 없어 충전하지 못한 약 350만 가구가 한겨울에 난방과 전기를 끊는 '자가 단전' 사태가 발생했다. 이후 영국 정부는 2024년부터 선불 고객에게 추가 요금을 부과하지 못하도록 하고, 강제 설치를 금지하는 등 제도 개선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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