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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예원 Nov 16. 2019

나는 헬조선 대한민국 서울에 여전히 살고 싶습니다.

익숙함에 관하여


나는 헬조선이라는 말을 알고 있다. 또한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의도 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우리나라 이외에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이것은 지나친 애국심이니 뭐니 하는 그런 것과는 좀 별개이다.


내가 한국을 떠나고 싶지 않은 이유는 꽤 다양한 편인데 가장 표면적인 이유는 '편함과 편리함을 잃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일단 우선적으로 내가 현재 다른 나라로 가서 산다고 과연 몸과 마음이 '편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고, 언어나 그 나라와 지역 사람들, 그에 따라오는 편견이나 어쩔 수 없이 붙는 차별 같은 여러 가지 상황에 치여 나는 또 새로운 곳에 적응해야 하는 불편함을 지속적으로 겪게 되겠지.


그리고 초가삼간이라도 우리 집이 최고라고, 나는 익숙함이 주는 평안함과 편안함을 잃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내가 익숙한 언어, 익숙한 문화, 익숙한 생활 방식과 생활 반경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난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장기 여행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리 일상에 치여 답답함에 살려고 아등바등 떠난 여행이라도, 또 그 속에서 아무리 좋은 경험을 한다 해도 그 즐거움은 길어야 3일 정도면 끝이 난다. 그 이후엔 그저 빨리 내가 익숙해서 마음 편히 돌아다닐 수 있고, 길을 알아 지도 없이도 걸을 수 있는, 내 사람들이 있고 온전히 쉴 수 있는 우리 동네와 집이 그리워 견디기가 힘들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여행을 마치고 우리 동네로 들어온 그 순간, 눈에 익은 풍경과 눈 감고도 돌아다닐 수 있는 길들이 마치 나를 두 팔 벌려 환영해주고 여행이 재미있었는지, 힘들진 않았는지, 고생했고 얼른 푹 쉬라며 받아주는 듯한 느낌이 든다.






두 번째로 내가 한국을 떠나기 싫은 이유는 서울에서 살고 싶기 때문이다. 하고 많은 도시 중에 하필 장소가 '서울'이라는 것에도 이유가 있다. 그건 생각보다 꽤나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이유인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한강이라는 장소가 대한민국, 서울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 한강 사랑은 나를 조금 아는 사람들이면 다 알고 있는 것인데, 나는 한강이라는 곳에서 꽤 많은 위로와 치유, 힐링을 받아서 더욱 그 장소에 애착이 있고 그로 인해 매번 한강을 찬양하며 다닌다. 해외에 그다지 많이 나가보지 않았지만, 지금껏 갔던 해외 유명한 어느 곳을 가도 한강만큼 좋은 곳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것은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게 바다는 좋긴 하지만 너무 넓고, 너무 깊고, 파도 소리가 꽤나 시끄러워 생각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또 저 너머로 보이는 수평선이 너무 아득하고 단조로워 조금은 지루하고 부담스러웠다. 그와 반대로 우리 동네에 있는 호수는 너무 얕고 한정적이며 인위적이고 좁았다. 계곡 또한 마찬가지이고. 그러나 한강은 달랐다. 하늘이 탁 트이고 넓으나 반대편 풍경이 눈에 보이니 과하지도 않았다. 파도가 없어 잔잔하고 생각에 집중할 수 있을 정도로 조용하지만 대신 그저 잔잔한 물결의 찰박거리는 소리가 내 곁에서 살랑거렸다. 내게 파도 소리가 없다는 건, 그만큼 내 얘기를 좀 더 잘 들어주겠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적당한 사람들 소리, 자동차 소리, 건너편으로 보이는 수많은 불빛들, 적당한 사람 냄새, 적당한 도시 냄새. 그것이 한데 어우러져 넌 혼자가 아니라고, 동떨어져 있지 않다고 위로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 매력에 나는 여전히 힘이 들면 한강부터 찾는다. 그래서 내겐 이루기가 아주 어려운 꿈이 하나 생겼다. 솔직히 꿈이라고 하기도 뭐할 정도여서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 정도로 삼고 있는 목표인데, 그건 한강이 바로 앞에 보이는 집에 사는 것이다. 멀리 조그맣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앞에 한강의 폭이 다 들여다 보이는 곳에서. TV에 나온 한 연예인의 집을 보고 생긴 철없는 꿈이긴 하지만, 그 집에선 한 벽이 모두 통 유리로 되어 있고 그 밑으로 한강 전체가 바로 내려다 보였다. 바로 눈 앞에. 그러나 그 집의 가격을 보고 조용히 접어둔,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렵고 희미한, 꿈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아득하고 순수한 일종의 소원이나 소망 정도인 그런.





이러한 이유로 나는 여전히 헬조선이라고 불리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살고 싶다. 물론 지금도 비록 서울은 아니지만 꽤 가깝고 좋은 곳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언젠가는 서울에서 가까운 곳이 아니라 그냥 서울이라는 주소 속에 내가 꿈꾸는 이와 함께 살며 한강 위로 내리는 첫눈을 보는 게 내 최종적인 꿈과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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