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을 하고 계시는 지인들을 만나서 인공지능이나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면 저마다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대체로 기계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것이라는 이야기들을 합니다. 사업을 하고 계시는 분들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면 직원들로 골치 아픈 사업가는 환영한다는 의견이 있기도 하고, 자신이 하는 사업조차도 기계에게 빼앗겨 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두려움도 있으셨습니다. 저 역시도 100세 시대에 살아가면서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많으니 일자리가 없어서 생계를 유지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게다가 저의 어린 아들은 미래에 어떠한 일을 하며 살 수 있을지도 궁금하고 무엇을 배우며 성장해야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정말 빼앗을 것인지, 만약 빼앗는다면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평소 인공지능이라는 표현은 많이 사용해왔지만 저는 인공지능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백과사전을 찾아봤습니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인간의 학습능력과 추론 능력, 지각 능력, 자연언어의 이해능력 등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실현한 기술
흔히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차별화되는 이유로 지능을 많이 언급합니다. 이로 인해 언어, 문자, 학습, 추론 등의 대부분의 다른 동물들이 할 수 없는 다양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또한 기계가 인간의 신체보다 월등히 강하고 빠르며 튼튼한 물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의 지능만큼은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쉽게 말해 인간의 고유한 능력인 지능을 기계에서 실현하는 기술이라는 것입니다.
인공지능의 엄청난 발전은 점차 빠르게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결국에는 모든 인류의 지성을 합친 것보다 뛰어난 초인공지능이 출현할 시점이 올 것으로 예상하는데, 이 시점을 특이점(singularity)라고 합니다. 1950년대에 헝가리 출신 수학자 폰 노이만이 기술 발전의 속도가 점점 빨라져 기술이 인류의 삶을 통째로 바꾸는 특이점이 온다고 한 말에서 처음 등장했습니다. 이후, 미국 사이언스 픽션 작가 버너 빈지가 1993년에 기술 발전이 점점 빨라져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기계 지능이 2005년쯤 탄생할 것이라고 전망했었으나, 20세기에 비해 21세기의 기술적 진보가 크게 약화되면서 특이점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에디슨 이후 최고의 발명가라고 불리는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2005년에 인공지능이 빠른 속도로 발전해 2029년이 되면 사람처럼 감정을 느끼고 2045년에는 인공지능이 전체 인류 지능의 총합을 넘어서는 시점인 특이점이 오면서 인간은 인공지능과 결합해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구글에서 인공두뇌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커즈와일은 지난 30년간 미래가 어떻게 바뀔지를 예측해왔는데, 거의 대부분 맞았기 때문에 그의 주장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특이점이 오는 시점과 실제로 특이점이 왔을 때 인간은 어찌 될 것인가에 대한 의견들은 분분합니다. 인공지능에 의해 인류가 멸종할 것이라는 의견과 반대로 인공지능이나 나노로봇 등의 도움을 받아서 인간이 영생을 누릴 것이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어찌 되었던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설 것이고 인류가 멸망하거나 영생할 것이라는 자극적인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실제로 우리는 당장의 일자리가 더 걱정입니다. 왜냐하면 특이점이 오기 전에도 인공지능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면서 우리의 일자리를 빠르게 대신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생긴 시점은 저마다 다르시겠지만, 제가 만나본 분들이 인공지능에 두려움을 가지게 된 계기는 대체로 2016년 3월에 서울의 포 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세계 최고의 바둑기사인 이세돌 9단과 구글이 개발한 알파고의 바둑 대결에서 이세돌 9단이 1승 4패로 완패한 사건이었습니다. 사실 인공지능이 인간 바둑 기사와 대결한 것은 이세돌 9단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2008년 바둑 인공지능 모고가 김영완 9단을 상대로 승리했고, 2011년에는 인공지능 젠이 마사키 9단을 상대로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을 두렵게 한 알파고가 2016년 초에 유럽의 바둑 챔피언 판 후이를 상대로 완승한 후, 이세돌 9단과 대결하여 승리한 것이었습니다.
인공지능이 바둑을 정복한 사건이 우리에게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바둑만큼은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절대 정복될 수 없는 영역으로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1997년 IBM의 인공지능 딥 블루가 세계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에게 승리하였을 때만 해도 체스보다 훨씬 복잡한 바둑은 인공지능이 정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1994년에 열린 세계 컴퓨터 바둑 챔피언 대회에서 우승한 바둑 프로그램인 고 인털렉트가 어린이 바둑기사들에게 15점이나 핸디캡을 두고도 3판을 모두 졌기 때문입니다.
더 놀랍게도 2019년에는 바둑을 넘어서 불확실성이 훨씬 큰 온라인 게임인 스타크래프트2에서도 인공지능인 알파스타가 프로게이머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독일의 프로게이머 게다리오 뷘시와 폴란드의 프로게이머 그레고리 코민츠를 상대로 총 11차례 대결을 펼쳐서 10승 1패의 일방적인 승리를 거뒀다고 합니다. 아직까지는 전술보다는 유닛 조작을 인간보다 효율적으로 잘해서 승리했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스타크래프트2를 완전히 정복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인간에게 1패를 한 경기의 경우, 분당 행동수(APM)를 프로게이머들의 평균 수준으로 제한했을 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8년 11월에 스타크래프트2 인공지능의 학습현황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기본적인 전술을 겨우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나, 이후 2개월 만의 학습으로 프로게이머를 압도하는 수준까지 실력이 올라왔다는 점이 놀라운 것입니다.
인공지능의 인간을 압도하는 사례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우리는 일자리를 잃게 될까 두렵습니다. 이러한 두려움 때문인지 인공지능으로 인해 사라질 직업들을 다루는 기사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롬 글렌 미국 밀레니엄프로젝트 대표는 한 기고에서 바둑이나 번역 등 특정 분야에서만 능력을 발휘하는 인공지능을 '좁은 의미의 인공지능'이라고 하며, 이것 만으로도 농업과 제조업, 텔레마케터 같은 업종에서 실업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게다가 2030년쯤 범용 인공지능(AGI)이 출현하면 일자리에 미치는 충격은 엄청날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영국 리서치 업체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에는 2,000만 대의 로봇이 제조업에 투입되고 중국에서는 120만 명, 미국에서는 170만 명, 유럽에서는 200만 명이 각각 일자리 잃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기관과 전문가들이 세부적인 내용은 달라도 인공지능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전망하였습니다.
과거에도 기술의 발전에 의해서 일자리가 대량으로 사라졌던 사례들이 많습니다. 특히, 이러한 일자리 감소는 서서히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증발해버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 가지 과거 사례로 미국에서는 1880년대에 엘리베이터 도우미가 등장하고 1950년대에 12만 명으로 정점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1960년대에 6만 명으로 감소하고, 얼마 후에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단순 기능직뿐만 아니라, 의사나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에서도 일자리 자체가 사라지진 않겠지만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2016년에 가천대 길병원이 수십만의 환자 데이터와 1,500만 페이지에 달하는 의학 자료를 가지고 있는 IBM 왓슨을 도입하였습니다. 인간인 의사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지식의 양입니다. 이러한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환자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단 8초 만에 내립니다.
인공지능으로 인한 대량실업 사태를 대비하기 위한 여러 국가의 정부 차원의 노력도 시작되었습니다. 영국 교육부는 2019년에 무인화로 사라질 위험이 큰 직업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재취업과 기술 교육 등을 지원하는 '국가 재교육 계획' 사업을 발표했습니다. 먼저 공업도시인 리버풀에서 시범운영을 한 뒤 제도를 보완해 2020년에는 이를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영국 정부는 이 사업을 국가 산업 전략의 핵심 정책으로 분류하고 1억 파운드(약 1,460억 원) 규모의 예산을 배정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2019년 초에 행정명령을 통해 인공지능에 대한 투자 확대, 기술 표준 마련 등 5개 영역에 중점을 둔 '미국 인공지능 이니셔티브'를 시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중 '노동자를 위한 인공지능' 사업에는 인공지능과 자동화에 대비해 연방정부 및 주정부가 각종 재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싱가포르도 무인화 고위험군 산업 23곳을 규정하고, 해당 산업에 속한 기업들에게 직원 재교육에 드는 비용을 대신 제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스웨덴도 정부·기업·노조가 손을 잡고 직원들에게 재교육 수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일자리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2018년 국내에 발표된 흥미로운 논문이 하나 있습니다. 오호영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원은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일자리 충격 분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실증연구로 2017년에 발표된 프레이와 오스본이 추정한 직업별 컴퓨터 대체 확률을 대한민국의 데이터에 적용하여 분석하였습니다. 이 연구방법은 직업별로 컴퓨터 대체 확률의 크기에 따라 저위험군, 중위험군, 고위험군으로 구분했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전체 일자리의 52.0%에 달하는 1,200만 개의 직업이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산업 측면에서는 운수업, 도매 및 소매업, 금융 및 보험업, 사업시설관리 및 사업지원서비스업에 고위험군의 종사자들의 비율이 높았고, 반대로 자가소비생산활동, 교육서비스업,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에 고위험군의 종사자들의 비율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직업 측면에서는 판매종사자, 장치기계조작 및 조립종사자, 기능원 및 관련기능종사자, 단순노무종사자가 매우 위험하고, 반대로 전문가 및 관련종사자, 관리자, 서비스종사자, 농림어업숙련종사자가 덜 위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컴퓨터 대체 확률이 높은 직업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 메칼라 크리쉬난 맥킨지글로벌연구소 부소장의 이야기를 통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작업의 유형을 5가지로 구분하였는데, 간단한 읽기나 쓰기, 데이터 입력 등과 같은 기본적인 인지 능력을 요하는 작업, 물건을 옮기는 등 몸을 쓰는 작업, 비판적 사고력이나 문제 해결 능력을 요구하는 고급 인지 작업,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작업, 코딩처럼 기계와 소통하는 작업이 있습니다. 이들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작업인 기본적인 인지 능력을 요하는 작업과 물건을 옮기는 등 몸을 쓰는 작업의 비중이 높은 직업은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게 될 확률이 높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일각에는 인공지능의 발전에도 일자리를 잃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직까지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와 같은 이들의 예상과 달리 기술 발전 속도가 이들의 주장만큼이나 빠르지 않다는 것인데, 이를테면 이들이 목표로 삼은 기술발전의 완성 단계가 여전히 계속 늦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기술을 적용하는데 필요한 비용이 인건비보다 훨씬 높아서 사업성이 여전히 없으며, 인간의 능력 없이 위험한 상황을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도 그 이유라고 합니다. 게르하르트 알트만 SAS 글로벌 제조업 프랙티스 부문 수석 디렉터(전무급)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뺏는 게 아닌, 인간의 강점을 돕는 기술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창작 등 ‘창의력’을 쓰는 분야를 잘하고, 인공지능은 계산, 분석 등에 강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께서 과거 영국에서 일어난 러다이트 운동을 알고 계실 겁니다. 영국은 원래 양털로 만든 옷감인 모직물을 만드는 산업이 발달했었는데, 인도에서 값도 싸고 쓰기도 편한 목화솜으로 만든 면직물이 들어오자 면직물을 만드는 산업이 발전하게 됩니다. 이때 면직물을 좀 더 빠르고 많이 생산할 수 있는 방적기와 방직기가 차례로 발명되고, 증기의 힘으로 동력을 공급하는 증기기관이 발명되면서 이들과 결합하여 면직물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됩니다. 기존에 모직물을 만들던 수공업자들은 대량생산되는 값싼 면직물에 밀려 실업자가 되거나 공장에 취업해 방직기를 돌리는 공장 노동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1806년 유럽을 지배하던 나폴레옹이 영국과의 해상교역을 금지하는 대륙 봉쇄령을 발표하자 영국은 극심한 경기불황이 닥치게 되었습니다. 결국 면직물을 수출하지 못하는 공장들이 도산하면 수많은 실업자들이 생겨나고, 이를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았다고 분노한 사람들이 공장에 습격해 기계를 부수는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기술의 발전은 인류 전체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일자리를 잃게 만드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러다이트 운동 당시의 노동자들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과거부터 현재까지 실제로 인간의 신체 능력은 크게 향상되지 않았으나, 기계가 인간의 신체 능력을 대신하면서 인류의 전체적인 생산성은 기술 발전으로 인해 기하급수적으로 향상되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공지능의 출현은 특이점이 오는 시점에서 인류가 멸망을 할지, 영생을 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산업혁명 시기에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었던 것처럼 인공지능의 등장은 많은 일자리를 빼앗을 것으로 많은 분들이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산업혁명 시기에도 그랬듯 사라지는 일자리와 함께 새롭게 생겨나는 일자리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사라지는 일자리가 생겨나는 일자리보다 많을 것이라는 우려도 많습니다. 그래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어떠한 능력을 대신할 수 있고, 대신할 수 없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장기적으로 대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새로운 직업을 하나 갖기 위해 배우는 등 준비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