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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캐처 Oct 14. 2024

척하는 공감과 진짜 통하는 마음

격이 다른 관계

어떤 관계에서는

어떻게든 리액션하며

공감해 주고,


불편한 분위기를 원천 차단해서 이성을 안전한 보호막으로 덮고 솔직함을 절대 끌어오지 않는 반면, 어떤 편한 사이는 공감을 하든 솔직한 의견을 꺼내든 상관없이 그래도 우리 관계가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 본능에 가까운 날 것의 말들이 오고간다. 어떤 위기가 닥칠지 몰라 폭풍 앞 마구 흔들리며 떨리는 소리를 내는 깨지기 쉬운 찻잔처럼, 곧 쓰러질 것 같은 가벼운 컵을 바라보는 것 마냥 보기 불편한 흐름이 이어진다.


사실 내 생각과 의견에 공감을 못 받으면 마음이 열리지 않지만, 대화에 참여한 사람들이 진짜 허심탄회하게 다 꺼내고 이야기하고, 문제를 해결할라치면 충돌이나 다름을 언제고 몇 번이고 겪으면서 상처도 나고, 시간이 가면서 흉터를 남길지언정 아물기도 하고, 겉보기에는 괜찮아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쪽 속이 까맣다거나 남김없이 타버렸다고 표현하기도 할 만큼  심각해져서 응급 처치 대수술을 해야할 때도 있다.


두루 겪어본 대화 중 어떤 대화는 공감을 받지 못한 내 감정에 대해 시간이 지나도 계속 떠오르곤 하는데, 당시 내 안에서 혼자 풀기 어려운 마음이었고, 꺼내고 나서 보니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사이여서, 공감으로 받아주는 대신 다시 나에게 더 빠르고 쎈 공으로 돌려주었던 분들이 있다.


당연하게(?) 사회 생활에서 겪은 일 중 십중 팔구는 '공감으로 서로 위로하고 더 친해지자'는 '의리의 대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그치? 우리 같은 편이지'를 확인하는 게 대부분이라서 이 쪽, '솔직함이 나에게 놀라운 사건으로 돌아온 것'은 비교적 극소수의 대화였는데, 잠시 상대가 급 이성적이라 갑자기 냉동실에 들어간 듯 나 혼자 서늘한 기운을 감지했지만, 서운하지는 않은 것이 참 신기한 느낌으로 오랫동안 문득 떠오르기도 하는 '독특한 경험'이자 곱씹을 생각거리가 되었다.


내가 먼저 건넨 공감과 '어떤 사건과 내 무모한 기대와 속이 작은 인간이라서 자연스레 따라오는 서운한 속 마음'에 대해 상대의 공감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 하지만 상대는 비난하는 말투없이도, 공감해주지 않았음에도 나 스스로 오래 생각해보면서 내가 내 감정 안에 둘러싸여 보지 못했던 '저 너머의 시선들'을 생각해 볼 시간의 공간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요즘 구독해서 보고 있는 뉴스레터에서 '공감을 바라지 않는다면', '공감은 못 해주니까' 커피챗을 하고 싶다면 그런 줄 알고 신청해도 된다는 내용을 보고, 지난 날들 속 '솔직함이라는 으른의 카드를 써서 현명한 성인의 태도를 그리 크게 서운하지도 않게 잘 알려준 기억으로 남은 그 분들'(사실은 서로 존중하고, 각자의 일과 삶속에서 잘 살고 앞으로도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이 느껴지는)이 떠올랐다.


공감은 어떤 경우는 아끼지 말아야 하지만, 어떨 때는 거짓으로 마구 꺼낼 수도 있어 생각할 거리가 많은 키워드다.


우리는 나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지만 스스로 안아줄 수는 없어서 내 앞과 옆 상대가 나에 대해 무조건 공감과 경청을 바라는 심리가 있고, 나도 같은 처지라서 그 마음을 안다. 잠시 서운함이 느껴지더라도 불어오는 바람에 저 멀리 날아가고 나면 그 바닥에는 넓은 애정이 느껴지는 말들이 있다.


공감은 아니었지만, 진짜 아껴주는 마음이 느껴질 때 서운함이 옅어지고 시간이 지나서 앙금으로 남지도 않고 날아가 버린다.


어떤 '거짓 공감'은 뒤 늦게 기분이 찜찜하고, 심연 깊은 곳에서 대대손손 저주의 말이 튀어 나온다. '그저 등쳐먹고 이용해 먹으려고, 순수한 단 하나의 '목적'이 있어서 남의 귀한 집 자손이 감언이설을 했었군.'


공감 카드는 정말 소중한 것이어서 굉장히 아껴서, 상대를 보아가며, 순수하게, '척하지 말고' 사용해야 나 자신을 속이지 않고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다.


일할 때는 비공감의 시선으로 냉철하게 사안을 정확히 보고 문제없이 해결하고, 상대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아낌없는 공감으로 서로 마음 열고 든든하게 먼 길을 같이 걷고 뛰어 가는데 불편하지 않게 하고, 나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인 나 자신은 그 두 가지 시선으로 바라보고, '애 쓰며 살고 있는 오늘을 인정하며 스스로 위로하기'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다.


'나는 나 스스로를 책임있게 잘 움직일 유일한 사람'이고,  그러니 세상에 덜컥 나가 세찬 비바람에 휘둘리기 전에 가장 먼저 중심잡고 주의깊게 해야 할 일이다.


'세상 사람들, 저 좀 알아주세요.'하고 바라는데 기대만큼 반응이 없으면 갑자기 불만족이 밀려온다.


넘어질 지언정 그대로 주저 앉지는 말고, 그저 우리는 다만, 각자 살기 바쁘니 막연한 공감을  바라는 대신, 우연히 목적없이 순수하게 진짜 공감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천운이라고 생각하자. 세상엔 그런 사람이 거의 없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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