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내 인생 첫 대회날이었다.
우리 팀 디저트 케이크가 무너졌다. 한 달 반의 고생이 날아가 버리는 순간이었다. 무너진 케이크처럼 내 마음도 무너져내렸다. 그날은 내 인생 첫 대회날이었다.
드디어 대회날이 되었다. 버스에 짐들을 실어 넣고 대회장으로 향했다. 긴장한 탓인지 1시간이 넘는 이동 시간 동안 밥도 안 들어가고 잠도 안 왔다. 사진이라도 찍어서 기분전환을 하려 했지만 긴장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멍만 때리다가 드디어 대회장에 도착했는데 내리자마자 충격을 먹었다.
대회장은 생각보다 별로였다. 엄청 기대했는데, 대기시간 때문에 길에서 자리를 깔고 자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대회장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이게 무슨 대회장이야. 충격이 다 가시지도 않은 채 바로 전시 준비를 했다. 책상도 없이 바닥에서 무릎을 꿇고 음식을 만들었다. 소스는 떨리는 대로 망가지고, 설거지는 할 수가 없어서 물티슈로 닦아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상상했던 대회와 더 멀어져가는 대회에 더 별로였다. 내 한 달 반의 결과가 이렇게 허무하다니. 그래도 전시는 해야 하니 열심히 접시를 완성하는데, 내 집중을 깨는 웅성거림이 들렸다.
뒤를 돌아봤을 때 보이는 건 무너진 우리 팀 디저트 케이크였다. 한 달 반의 고생이 날아가 버리는 순간이었다. 무너진 케이크처럼 내 마음도 무너져내렸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항상 칭찬만 받아왔던 우리 팀인데, 왜 하필 오늘 무너진 걸까. 상은 못 받겠구나 절망감이 드는 동시에 가장 속상한 건 디저트 담당 친구 본인이겠지 하며 진정을 해보려고 했지만, 위로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어찌저찌 모양을 최대한 살려서 전시를 내고, 슬퍼할 틈도 없이 바로 라이브가 시작되었다.
중간중간 심사위원이 내 음식을 빤히 쳐다볼 때마다 뭔가 잘못한 것 같았다. 조리모 사이로 땀이 삐질거렸다. 그렇게 대회는 끝났다. 대회는 엉망이었다. 모두의 얼굴빛이 좋지 않았다. 여기서 끝났다면 내 첫 대회는 최악의 대회가 되었을테지만, 내 첫 대회는 최고의 대회가 되었다. 뒷이야기는 이렇다.
시상을 기다리면서 대회장을 구경했다. 다른 사람들의 전시작품을 보니 내 작품과 차원이 달랐다. 지금까지 내 작품 진짜 잘 만들었다고 생각해왔었는데. 엄청난 작품들 앞에서 내 작품이 잊혀졌고, 나는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긴장이 풀리고 대기시간이 길어지면서 너무 피곤해졌다. 아까 길에서 자리를 깔고 자고 있던 사람들이 조금 이해가 갔다. 구경이 끝나고, 우리는 자리에 앉아서 아까 있었던 전쟁같던 대회를 떠올리며 하나 둘 자기들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지난 한달 반의 고생이 너무 소중해졌다. 애틋한 기분이 들었다. 상을 못 받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사실 우리들의 상황은 비슷했을 것이다. 요리를 하고 싶어서 이 학교에 왔지만, 매일 똑같은 기능사 품목을 반복하고, 수행평가와 자격증 취득으로 사라지지 않는 부담감과 압박감이 가득했을 것이다. 좋아하는 걸 배우는 것이 이렇게 불안한 일일지 몰랐으니까, 우리는 아마 지쳐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요리에 점점 흥미가 떨어질 때 쯤, 이 대회는 나에게 내가 요리를 하려고 했던 이유를 기억나게 해주었다. 처음으로 가장 큰 소속감을 느꼈다. 그래, 나 이런 거 하고 싶어서 요리 시작했지 하면서.
나는 그날 이후로 내가 진짜 요리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 이후 나에게 작은 변화가 생겼다. 한 분야를 향해 가는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성과를 내야 했던 압박감으로 가득했던 예전의 나와 달리, 도전하고 실패하는 걸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되었다. 하고 싶은 것에 최선을 다하는 이 마음이 너무 소중해졌다. 우리는 점수와 성과에 너무 집착해 하고싶은 이 소중한 마음을 쉽게 망가뜨리는 것 같다. 그치만, 사실이렇게 어린 나이에 하는 도전과 실패는 너무 값진 것 아닐까? 최선을 다하되 후회하지 말자. 그날 무너진 케이크는 나에게 가장 최고의 케이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