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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깐 KKan Mar 08. 2019

세상은 고양이가 이끈다

<캡틴 마블>, 2019



퓨리도 외계 세력을 믿지 않고 콜슨 요원이 신입이던 90년대. 쉴드의 초창기 모습과 어벤저스의 기원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캡틴 마블>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재밌게 봐 온 팬들에게 의미 있는 영화일 수밖에 없다. 내 경우에는 캡틴 아메리카처럼 역경을 극복하고 힘을 얻는 영웅담에 재미를 덜 느끼기도 하고, 브리 라슨의 외모를 쿨하게 느끼지 못한다는 지극히 개인의 취향으로 관람을 주저했는데, 항간에 논란이 되고 있는 페미니즘 이슈로도 말이 많은 것 같다. 편 가르기에 흥미를 둔 사람들이 '캡틴 마블을 볼 거냐? 페미 영화를 왜 보냐' 라는 식으로 어그로를 끄는 것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너무도 당연히 본인의 선택은 남이 들볶을 일이 아니다.



다만 마음이 불편해지는 걸 혹시라도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영화의 내용에서는 무관하니 안심해도 좋다. 여자는 전투기 조종사가 될 수 없다는 편견 속에서 극복하고 원하는 일을 해낸 주인공의 이야기가 나올 뿐이다. 남녀를 진영 나누듯 나뉘었는가 하면 그 또한 아니다. 주인공 캐럴의 아버지가 폭력적인 사람으로 그려지고 남성 동료들이 비열하게 보이긴 하지만, 그녀의 오빠로 추정되는 소년은 캐럴이 희망을 갖고 성장할 수 있게 해주는 핵심 역할을 한다. 캐럴 주변에 유난히 멋진 여자들이 많긴 하나, 시대와 장소의 환경상 납득할 수 있는 부분.





아쉬운 부분은 엄청난 밸런스 붕괴를 일으킬 만큼 강력한 캐릭터가 등장했는데도,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평이하다는 데 있다. 팬들을 절망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지나치게 강한 빌런 타노스에 대적하려면 캡틴 마블이 등장하는 것이 맞지만, 브리 라슨은 그만한 인물로 그려지지 못한다. 그녀를 강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자신하는 스승 욘-로그도 주드 로가 본래 지닌 배우로서의 주목도 말고는 눈에 띄는 면을 찾아볼 수가 없다. 각성한 캡틴 마블에 다들 꽁무니를 빼고 달아난다는 점에서 영화는 갑자기 맥이 쭉 빠진다. 조금은 저항하는 적들을 보여주는 편이 긴장감이 있었을 테고, 캡틴 마블의 힘을 더 드라마틱하게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이렇게 주제파악이 빠른 빌런들이라니.



평면적으로 그려진 캐릭터의 아쉬움은 닥터 스트레인지와 비교를 해보면 적절할 것 같다. 스티븐의 경우 힘을 얻게 되는 심리적, 상황적 동기가 분명했고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각성해나가는 과정도 자연스럽고 섬세해서 입체적인 캐릭터의 훌륭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캡틴 마블이 되는 캐럴은 스티븐보다 훨씬 비현실적인 일을 겪는데도 무덤덤하다. 캡틴 마블이 유쾌한 이모 같은 느낌이기 때문이라기엔, 닥터 스트레인지도 평소에는 무게감 따위 없는 캐릭터. 이런 캐릭터들이 진중해질 때 더 멋진 매력을 보여주는데, 캐럴은 자기 인생을 뒤집어 엎는 충격들 속에서도 고뇌에 빠지는 모습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보여줄 것이 많은 사연을 지닌 캐릭터가 이렇게 심심하게 그려져 무척 안타깝다.





말도 많고 소문에 비해 잔잔한 이 영화를 그래도 엄지를 치켜 세우며 칭찬할 수밖에 없는 건 치즈냥이 한 마리 때문.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캡틴 마블보다 구스가 나오는 장면들을 더 두근거리며 봤을 게 분명하다. 세상은 역시 고양이가 이끌어 간다. 고먐미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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