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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깐 KKan Mar 30. 2019

우린 이렇게까지 만들 수 있어

<러브, 데스 + 로봇> (2019)



데이빗 핀처가 제작하고 팀 밀러가 참여했다기에 '파이트 클럽'과 '데드풀'의 감성을 기대하며 보기 시작한 '러브, 데스 + 로봇'. 실사가 가미된 건 딱 한 편 뿐이며, 모든 장면이 다양한 기법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이야기들이다. 한 편이 짧게는 5분에서 길어도 20분을 넘지 않는 분량인 데다 짧은 시간에 각자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호흡이 굉장히 빠르다. 대체로 잔잔한 분위기보다는 긴박하고 역동감 넘치는 편.



인간의 감정과 그에 따른 상황을 극한까지 몰아 넣을 수 있는 사랑과 죽음의 주제에, 시각적 새로움과 다양한 상상력을 보여줄 수 있는 로봇을 가미한 작품들이기 때문에, 모든 작품이 강렬하다. 한 작품을 제외하곤 등장인물이 사망하며, 그 예외인 한 편 역시 죽음의 고비에서 끔찍한 고통을 겪는다. 사랑을 주제로 한다는 점에서 노출이 과감하고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 걸맞는 자극적인 장면도 여과없이 담겨있는데, 작품의 분위기와 흐름에 잘 어우러져서 거북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없다. 조금 과한 거 아닌가 싶은 장면들조차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할 수 있는 신체의 질감과 모양을 드러내기 위한 최적의 선택처럼 느껴질 만큼, 훌륭한 표현력 때문에 감탄하며 보곤 했다. '우린 이렇게까지 만들 수 있어' 라며 장인들이 빚어놓은 작품들 같다.



카툰 렌더링으로 제작된 2D 느낌의 작품들은 저마다의 스토리와 메시지로 재미를 선사한다. '굿 헌팅' 같이 색 고운 동양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따뜻한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해저의 밤'이나 '지마 블루'처럼 양키 냄새 진하게 풍기는 선 굵은 화풍의 힘 있는 이야기도 있다. '독수리자리 너머', '늑대인간', '숨겨진 전쟁' 등의 실사 느낌 3D의 경우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게임을 플레이 할 때에도 흔하게 느끼는 감정이지만, 영상과 게임의 차이에서 예상할 수 있듯 영상에서 느껴지는 밀도 있는 퀄리티에 감동할 수밖에 없다. 스토리 원작이 있는 작품들도 있지만, 대부분 영상의 퀄리티만이 아니라 이야기에 담긴 메시지의 울림이 엄청난 작품들이 많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끝까지 달리게 만드는 힘이 꽤 크다.





특히 '목격자' 편은 시리즈 중 압도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스트리퍼 댄서인 여주인공의 직업 설정 상 자극적인 장면이 꽤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스크린샷만으로도 느껴지는 독특한 질감 표현과 감각적인 색, 그리고 스크린샷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실사와 회화 중간의 어느 지점에 있는 미묘함 때문이다. 사물의 충돌 장면은 만화의 요소를 차용해 연출했고, 신체와 옷감은 정말 사람 같으면서도 화장이나 장식 같은 연출적인 부분은 절대적으로 비현실적인 것들을 썼다. 숨 쉴 틈 없는 추격과 화려한 조명의 무대를 주 요소로 써서 굉장히 빠른 템포로 흐르기 때문에 디테일한 표현들을 감상하려면 다회 감상이 필수적이다. 어차피 한 번만 볼 수는 없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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