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함을 위한 용기, 배려를 위한 존중과 이해
우리는 수 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다.
그리고, 좋건 싫건 계속해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것이다.
계속해서 만나고 지속하고 싶은 관계가 있고, 그러고 싶지 않은 관계가 있다.
재미와 권태로움, 이익과 손해, 통찰과 무지, 존중과 무시, 기쁨과 슬픔, 친절과 불친절 등 어떤 것을 얻느냐 혹은 어떤 것이 기대되느냐에 따라 정해지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 더해 특수한 조건이 더해지기도 한다.
직장 동료, 가족, 연인 등 강제적인 관계, 혈연 관계, 오래된 관계 등이 특수성을 더한다.
그리고 이 특수성은 최대한 관계를 좋게 유지하는 쪽으로 우리를 이끈다.
물론, 연인의 경우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하여 재미와 친절, 따스함 등 다양한 것들을 느끼다가도 권태로움, 불친절, 냉혹함 등을 경험하며 관계의 끝을 맞이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관계란 무엇일까? 그리고, 좋은 관계를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관계는 나다움과 배려의 과학이라고 생각한다.
나다움과 배려가 충분한 균형을 이뤄야 하는 것이다.
나의 욕망과 상대방의 욕망을 모두 충족시켜야만 한다.
차이가 있을 지언정 한쪽으로만 쏠리는 순간 곧 끝이나고 만다.
그렇기에 좋은 관계를 위해서는 배려도 배려지만 나다워져야만 하고, 솔직하고 진솔해야만 한다.
연인의 권태기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렇다.
사귀는 동안 상대방에게만 너무 많은 것들을 맞춘 나머지,
자신의 욕망을 잃어버렸고 그것이 충족이 안되는 상태까지 온 것이다.
혹은 상대가 충족시켜주고자 하는 의지가 보이지 않거나.
사랑에 빠진 그 순간에는, 호르몬이 만들어낸 마법으로 많은 것들을 맞춰도 다 괜찮고 모든 것이 그냥 좋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차 마법은 풀리고, 충족되지 않은 욕망들이 서서히 드러난다.
그리고 이내 곧 권태로움, 무언가의 실망과 불만들이 점차 커져간다.
우리는 나다움을 잃지 않으며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야 한다.
하지만 욕망에 솔직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어렵다.
솔직함에는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잘 보이고 싶은 욕심과 상대가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지 못하도록 미소짓는 가면을 쓰도록 만든다.
물론 당연히 나만을 위한 관계가 아니기에 나다움만 넘친다면,
그래서 나다움과 배려가 충분한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면 문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배려와 이해는 정말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배려와 이해가 넘친 나머지 자신의 욕망을 등 뒤로 숨긴 채, 타인의 욕망만을 원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고 표출하는데 어색하고 잘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안하다보니 어떻게 할 지 몰라 엇나가기도 하고, 쌓아두기도 하고, 마음속에서 거리를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뾰루퉁함, 불친절, 퉁명스러움, 화, 짜증 등으로 자신만 해독 가능한 불만을 표출한다.
나 외에는, 혹은 나 조차도 절대 완벽하게 풀지 못할 퀴즈를 상대방에게 주면서 말이다.
진솔함과 솔직함은 배려에 비해 훨씬 과소평가가 되어있는 것 같다.
거기에 넘어 스스로를 잃을 정도의 배려와 이해가 미덕이 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 스스로의 기쁨으로 하는 배려와 스스로를 없애는 배려는 분명 다르다.
그리고 우리는 분명히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고도, 강요하지 않고도 자신의 욕망을 표현할 수 있다.
단지, 조금의 용기가 필요할 뿐. 그리고 아직 조금은 어색할 뿐.
관계는 나다움과 배려의 과학이다.
좋은 관계를 위해서는 두려움을 이겨낼 조금의 용기와 존중이 필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