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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빈 Apr 17. 2016

비어있는 곳의 밀도

침묵, 행간

  철없던 어린 날, 가출했다가 귀가한 나를 보고 아무 말씀 없이

부엌으로 들어가 식사를 준비하시던 엄마의 등을 보고 있을 때.


  베란다에 창틀에 기대어 벌써 몇 개비째 인지도 모를 담배를

연신 태우며 담배 연기에 한숨을 섞어 날리시던 아버지를 볼 때.


  늘 장난기 많던 그 친구, 이별에 슬퍼 눈물짓던 새벽,

왜 그러냐는 말 대신 친구의 빈 잔에 소주 한 잔 채워줄 때.

 

  편지지 위 볼펜을 꾹꾹 눌러 어색한 인사를 겨우 적고 나서

다음 문장을 적지 못해 한참을 행간에 머물러 있어야 했을 때.


  둘이 앉아 수다 떨던 공원의 벤치에 너 없이 혼자 앉아 있을 때.


  그 침묵과 행간, 비어있는 그곳의 밀도가 어찌나 묵직하던지



행간


잘 지내시나요, 한 줄

잘 지내시겠죠, 한 줄

하고 싶던 말은 비워두었네


일 초, 일 초처럼 그어진 줄

무어라 적어두긴 했다마는


비워두었네

비워둔 곳에 

하고 싶던 말들 끼워두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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