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행간
철없던 어린 날, 가출했다가 귀가한 나를 보고 아무 말씀 없이
부엌으로 들어가 식사를 준비하시던 엄마의 등을 보고 있을 때.
베란다에 창틀에 기대어 벌써 몇 개비째 인지도 모를 담배를
연신 태우며 담배 연기에 한숨을 섞어 날리시던 아버지를 볼 때.
늘 장난기 많던 그 친구, 이별에 슬퍼 눈물짓던 새벽,
왜 그러냐는 말 대신 친구의 빈 잔에 소주 한 잔 채워줄 때.
편지지 위 볼펜을 꾹꾹 눌러 어색한 인사를 겨우 적고 나서
다음 문장을 적지 못해 한참을 행간에 머물러 있어야 했을 때.
둘이 앉아 수다 떨던 공원의 벤치에 너 없이 혼자 앉아 있을 때.
그 침묵과 행간, 비어있는 그곳의 밀도가 어찌나 묵직하던지
행간
잘 지내시나요, 한 줄
잘 지내시겠죠, 한 줄
하고 싶던 말은 비워두었네
일 초, 일 초처럼 그어진 줄
무어라 적어두긴 했다마는
비워두었네
비워둔 곳에
하고 싶던 말들 끼워두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