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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게 힘과 용기인 일들

모두의 정답(正答)과 이별하기

by 김경빈

‘라떼는 말이야’ 식의 충고와 오지랖은 언제나 듣기 거북하다. 그렇다고 대놓고 핏대 세우며 맞불질을 하진 않는다. 10대, 20대 시절엔 두 눈에 쌍심지를 켜기도 했으나 그런 언쟁에서의 승리는 영광 대신 찝찝함을 남겼다. 분노와 미움은 나를 지치게 만들었고 내 말이 백번 맞대도 어차피 상대방은 변하지 않으니까. 애초에 누군가를 변화시키겠다는 태도 자체가 만용이자 오만이며 무리라는 걸 깨달았다. 네네, 그렇죠, 어르신 말씀이 맞습니다. 서른을 넘기며 적당히 대답하는 요령도 생겼다. 상대방을 인정한다고 해서 내가 부정당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로 살아가면 그만이니까.

어떤 말들은 여전히 동의할 수 없는데 어떤 말들은 뒤늦게 공감되기도 한다. 우리 부부는 일단 자녀 계획이 없다. 지금 마음 같아선 딩크족으로 살아도 좋을 것 같다. 우리 부부가 여전히 동의할 수 없는 말로는 “부부가 애가 있어야지. 나이 들면 둘이서 무슨 재미로 사냐?” 와 “나이 들고 봉양해 줄 자식은 있어야지.” 가 있다. 결과적으로 자식은 삶을 풍요롭게 하고 어쩌면 다 늙어서 잘난 자식 덕을 볼 수도 있겠지만, 어째서 그런 이유로 아이를 낳아야 하는 걸까. 악의 없는 염려의 말이라는 걸 아는데도 네네, 그렇죠, 어르신 말씀이 맞습니다, 하고 돌아서면 귀를 닦게 된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를 때 결혼하고 애 낳아야지. 많이 보고 들을수록 못한다.” 같은 말은 조금씩 공감이 된다. 아내보다 일찍 결혼한 처제 덕에 조카들의 성장 과정을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일주일에 적게는 하루 이틀, 많게는 사나흘씩 조카들을 만났다. 그러면서 나도 조카들의 기저귀를 갈고, 밥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호사를 누렸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 이면의 고된 육아도 자연스레 알게 됐다. 비로소 영유아 관련 사건 사고 뉴스들이 피부에 와닿았고, 갈수록 심해져만 가는 사교육 광풍도 남 일 같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사교육에 종사했던 사람이 아닌가. 터무니없는 사교육비 덕에 생계를 꾸리다가, 자식의 사교육비를 감당해야 할 부모가 된다고 생각하니 벌써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것도 모를 땐 그저 아이를 가질 명분만 필요했는데, 이것저것 알고 나니 꽤 큰 경제력과 담대한 용기까지 필요해졌다. 세상에 완벽한 부모 없다지만 이토록 불완전한 상태로 아이를 가질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아내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 우리는 둘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자고, 자식 사랑은 조카 사랑으로 대신하자고 굳게 다짐했다. 어르신들 말씀처럼 ‘멋모를 때 애를 낳았다면’ 우리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었을까. 어떻게든 부단히 키워내기야 했겠지. 하지만 우린 이미 뭔가를 많이 알아버렸다. 출산과 육아의 고단함, 부모라는 존재에 대한 경외감, 현실적인 막막함까지. “아무리 나이 들어도 자식 없으면 다 어린애”라던 어른들의 말에도 동의하게 됐다. 자식으로 태어나 부모로 죽는 인생에 비하면, 딩크족은 결국 죽을 때까지 자식일 수밖에 없는 자들이니까.




갑자기 싱거운 얘기를 하자면 나는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 성인이 되고 나서 몇 번 탈 기회가 있었는데, 10분쯤 연습하면 직선 구간은 그런대로 달려볼 만했다. 하지만 이내 고꾸라졌다. 광안리 해안 산책로에서 부경대학교 캠퍼스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보려다가 화단에 처박히고 자동차를 들이받을 뻔했다. 조금 더 싱거운 얘기를 하나 더 하자면 나는 수영도 할 줄 모른다. 정확하게는 물에 뜰 줄 모른다고 해야겠다. 잠깐 수영을 배운 적도 있는데 몸에 힘을 뺐더니 찬찬히 가라앉아 두 발이 바닥에 닿았다. 잠든 갈치처럼 물속에 비스듬히 선 나를 보고 수영강사는 “오~ 잠수함!” 이라며 놀려댔다. 그래도 어떻게든 수면을 가르고 나아가려다 보니 남들에 비해 빨리 지쳤다. 할머니도, 초등학생도, 초고도비만 아저씨도 유유히 미끄러지는 수면을, 나만 힘으로 밀어붙여 겨우겨우 나아갔다. 그건 마치 물과 힘겨루기를 하는 기분이었고, 당연히 나는 매번 졌다.

출산과 육아를 이야기하다가 싱겁게도 자전거 타기와 수영 따위가 생각난 건, 결국 모르는 게 힘과 용기라는 점에서 비슷한 일이어서다. ‘아는 게 힘,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도 있지만 내게는 ‘아는 게 두려움, 모르는 게 힘과 용기’인 일들이다. 자전거가 작동하는 원리라든가 속도와 균형의 역학적 관계 따위를 고민하지 않던 어린 시절에 나는 자전거 타기를 익혀야 했다. 몸에 힘 빼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기 전에, 힘 빼는 방법이 뭔지 고민하기 전에 수면을 일렁이는 나뭇잎의 마음이 되어봐야 했다.

이제 남은 날들에 필요한 건, 이미 알게 된 두려움 앞에서도 삶의 기준을 잊지 않는 태도다. 쓸쓸한 노후가 두려워서 아이를 갖거나, 부모 되는 것이 두려워서 딩크족이 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위한 선택에 집중하는 태도. ‘모르는 게 힘과 용기인 일’이 ‘아는 게 두려운 일’이 된 후에도 무작정 회피하지 않는 태도 말이다.

언젠가 우리 부부에게도 아이가 생길까. 어쩌면 입양을 하게 될 수도 있을까. 아무리 상상해 봐도 지금은 아내와 나, 둘이서 평화롭고 다정한 장면만 떠오른다. 우리 삶에는 모두의 정답(正答)이 아니라 각자의 정답(情答)만 있다고 곱씹어본다. 마음이 이끄는 저마다의 삶은 서로에겐 옳지 않더라도 각자에겐 소중하니까. 그렇게 생각해 보면 뭔갈 알거나 모른다는 말도 슬며시 무색해진다. 정답(正答)을 알거나 모르는 게 아니라, 정답(情答)을 품에 안거나 다시 무르면서 삶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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