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환기가 필요한 이들을 위하여
나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건 혼자 보내는 시간을 두 배 정도 더 보유할 수 있을 때 성립되는 명제이다. 뼛속까지 내향인, 어릴 때부터 그래왔다. 꾸미는 건지 쓰는 건지 모를 다이어리를 밤새 붙잡고 있거나 아무 생각 없이 공원 벤치에 앉아 몇 십 분간 멍을 때리는 일, 나에겐 모두 익숙하고 즐거운 일들이다. 사실 내향인이 아니더라도 혼자 보내는 시간은 누구든 조금씩 필요하다.
당장 멀리 떠나는 건 부담스럽지만, 오가는 말없이 잠잠히 나를 들여다보고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할 때. 생각의 환기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 인천 송도의 나들이 코스를 제안한다.
'송도 공원' 하면 열에 아홉은 센트럴파크를 떠올리지만, 이 작고 소박한 동네 공원을 나는 조금 더 사랑한다. 잉어에게 먹이를 주는 아이, 따끈한 곳에 자리를 잡고 누워 게으름을 피우는 고양이, 어린아이처럼 비눗방울을 불며 사진을 찍는 커플 등. 해돋이공원은 별것 아닌 풍경이 주는 안도감 같은 게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녹음이 짙어지는 이 계절엔 산책을 하는 행위만으로도 에너지를 얻게 된다. 공원에는 중앙의 위치한 잔디밭과 연못을 중심으로 둥글게 산책로가 나있다. 30~40분이면 돌아볼 수 있는 규모이기에 키가 큰 나무 아래서 차분히 걷거나 자전거 도로에서 가벼운 라이딩을 하기에도 좋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작은 동산을 발견할 수 있다. 올라가면 대충 무엇이 보일지 다 알면서도 꼭 이런 풍경은 지나치질 못한다.
동산에 올라서니 울창한 나무들과 높다란 건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멀리 보이는 빌딩 숲과 파란 숲이 한눈에 담기는 풍경. 그게 참 묘하면서도 이상적인 도시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슬슬 단조로운 풀냄새가 따분해지기 시작했다면 장미공원으로 발걸음을 재촉해보자. 말 그대로 세상의 모든 장미.. 까지는 아니겠지만 그게 과장이 아닐 정도로 다채로운 장미를 구경할 수 있다.
꽃이라면 가리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여름에 보는 꽃은 더욱 마음이 간다. 식물은 습도, 온도 등 조건이 완벽히 갖춰졌을 때 온 힘을 다해 꽃을 피운다고 한다. 그러니 찌는 더위에도 무지갯빛으로 생명력을 뿜어내는 장미가 조금 더 특별하다 느껴지는 일은 어쩌면 당연하다.
성인 여성의 주먹보다 커다란 크리스토프 콜롬브를 보고선 영화 속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정원사들이 하얀 장미를 물감으로 빨갛게 물들이던 장면이다. 하트의 여왕이 탐하던 빨간 장미가 이런 것이었을까. 탐스럽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모양새였다.
주말의 해돋이공원에는 피크닉을 나온 주민들로 가득하다.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까먹는 사람들부터 텐트 안에서 느긋하게 한나절을 보내는 사람들까지. 한참 동안이나 벤치에 앉아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쉬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바쁘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도, 다급하게 목적지로 향하는 발소리도 없는 오후. 평화로운 풍경의 연속이었다.
행복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말은 정말 틀리지 않았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공원에 머물며 나는 분명 행복했다. 걱정 없이 뛰노는 아이들을 구경하던 순간이, 찬란한 물비늘을 눈에 담던 순간이, 다음엔 좋아하는 사람들과 도시락을 챙겨 놀러 와야지 같은 다짐을 하던 순간이 모두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다.
할 일은 많은데 집에 박혀있긴 싫고 더 이상 미래의 나에게 일을 미뤄서도 안될 때, 콤마로 향한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콤마에 있다.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운영하는 콤마는 서점과 카페를 겸한 북 카페 타입의 공간이다. 카페는 1층과 2층으로 이뤄져 있다. 보통 대화를 하는 손님들은 1층에, 책을 읽거나 작업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손님들은 2층에 머무른다.
이곳을 이루는 것들은 뭐가 됐던 크고, 넓고, 다양하다. 그래서 정말 시간을 보내기 나름이다. 말이 북카페일 뿐, 콤마에서 보유하고 있는 책의 종류는 웬만한 도서관을 방불케하는 수준이다. 에세이, 소설뿐 아니라 동네 서점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매거진까지 구비돼있다. 콤마의 모든 책은 판매용과 별개로 열람용이 마련돼있어 음료 주문 시, 자유롭게 자리를 잡고 읽어볼 수 있다.
다양한 형태로 즐길 수 있는 좌석 또한 이곳의 메리트이다. 창가에 앉아 작업을 할 수 있는 노트북존부터 책을 읽다 잠깐 단잠에 빠져도 좋을 소파존까지. 지인과 함께 방문해도 각자 편한 곳을 찾아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다. 특히 노트북존의 경우 작업이 편하도록 콘센트가 충분히 마련돼있는 점이 좋았다.
콤마가 도서 코너를 구성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기본적으로 에세이, 소설처럼 책의 장르에 따라 분류하기도 하고 선정한 주제에 걸맞은 책들을 모아 두기도 한다. 또한 매장 곳곳에는 꼼마 직원의 추천도서가 추천사와 함께 비치돼있기도 하다. 이용자들이 다양한 시선으로 책을 골라볼 수 있도록 노력한 흔적이 엿보여 둘러보는 내내 즐거웠다. 하지만 편하게 원하는 도서를 찾고 싶다면 1층의 검색기를 이용할 수 있으니 참고할 것.
콤마는 아이와 함께 방문해도 좋다. 1층 정문을 기준으로 왼편의 공간에는 아이들이 읽기 좋은 책들이 가득하다. 바닥은 아이들이 주저앉아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카펫 소재로 마감했고, 근처에는 동행한 어른들도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널찍한 소파가 비치돼있다. 아이를 데려올 일은 없지만, 이렇게 모든 연령대의 손님을 배려한 공간에 방문하면 절로 마음이 좋아진다. 이름의 뜻처럼 '모두가 쉬어갈 수 있는' 공간임을 느낄 수 있었다.
- 운영시간 :
매일 08:00 - 21:00
'교토' 이야기만 꺼내면 한숨을 쉬며 후회하는 여성이 있다? 물론 나의 이야기이다. 스물하나의 여름, 오사카 여행을 준비하며 '교토는 반나절이면 충분한 곳'이라는 어느 블로거의 말에 자아를 의탁하고 계획을 짰더랬다. 하지만 교토에 도착하자마자 직감적으로 여긴 네 시간 만에 돌아볼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기자기한 골목과 여유로운 사람들의 발걸음. 머릿속으로 그리던 가장 일본다운 도시였다. 그 후로 여행지를 소개하며 '하루 만에 돌아볼 수 있는' 따위의 표현은 믿지 않게 됐다. 마음 같아선 남은 2박을 모두 교토에서 보내고 싶을 정도였으니.
구송도에 위치한 아키라커피는 그런 교토를 닮았다. 교토에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도 교토를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그곳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카페는 1층과 2층으로 이뤄져 있다. 특별했던 점은 테이블과 의자 외에 신발을 벗고 들어갈 수 있는 좌석과 평상 형태의 야외 좌석이 존재했다는 것. 특히 1층 출입문 옆에 위치한 야외 평상은 비공식 포토존의 역할을 해내며 방문객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시도 때도 없이 목이 마른 날씨였기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기본 원두를 선택했고 기분 좋은 쌉쌀함에 약간의 산미가 더해져 조화로웠다. 커피만으로 입이 심심하다면 케이크와 크루아상 등 간단한 디저트류도 판매하고 있으니 참고할 것.
2층은 신발을 벗고 올라갈 수 있는 야외 좌석과 다다미방으로 구성돼있다. 1층에 비해 비교적 한적한 분위기라 광합성을 하며 느긋한 티타임을 보내고 싶다면 2층을 추천한다. 다만 야외 좌석에는 따로 그늘 막이 설치돼있지 않기 때문에 해가 강한 시간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
아키라는 간결한 매력이 돋보이는 공간이다. 특별히 화려한 패턴이나 색감도 사용하지 않았다. 단정하고 일관된 선의 배치가 만들어내는 따스함. 아키라에서 시간을 보내며 관찰한 것이다. 물론 커피도 좋았지만 공간을 누리는 것만으로도 발걸음이 아쉽지 않은 곳이었다. 과하지 않아서 오히려 눈길이 가는 타입. 할 수 있는 것들을 차분하게 해내면서 공간의 색깔을 지키는 타입. 그런 공간의 특성이 문득 5년 전의 교토를 떠올리게 했다.
- 운영시간 :
평일 11:30 - 22:00
주말 11:00 - 22:00
혼자 하는 나들이는 어쩌면 정말 혼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추억여행에서 만난 과거의 내가 불현듯 등장하기도 하고, 좋아하던 영화 속 주인공이 말을 걸어오기도 하니 말이다. 이토록 귀여운 게스트들과 떠나는 나들이, 주저할 이유가 더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