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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적대는 끼서 Jan 16. 2023

포르투 와인의 마법과
Life Changing 문어

네덜란드 교환학생 D+46, 포르투갈 여행 다섯째날(포르투)

2017년 3월 5일 일요일



내일은 오전 비행기로 떠날 예정이기 때문에, 오늘이 사실상 이번 포르투갈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날씨는 좋아질 기미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제 벼르고 별렀던 쇼핑을 하려고 신나게 시내로 나왔건만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았었다. 처음에는 우리가 너무 일찍 나왔나 싶어서  '이 게으른 유럽 인간들!' 이라며 분개했는데, 알고 보니 오늘이 일요일이어서 다들 닫은 거였다ㅋㅋㅋㅋㅋㅋ

어제 갔던 카페 산티아고나 마제스틱 카페도 당연히 휴일. 어제 가길 정말 잘했다고 위안삼으면서 그냥 털레털레 걸어다니며 그나마 열려있는 가게를 구경했다.


누군지 모를 동상. 벨기에 브뤼셀의 거리랑 굉장히 비슷했다.


터벅터벅 걸어다니다 보니 클레리구스 타워에 도착했다. 나름 전망대같아서 올라갔는데, 우리나라 고층건물들에 비하면 엄청 쪼꼬미였다. 다행히 우리가 타워에 갔을 때는 비가 잠깐 그쳐서, 우산을 쓰지 않은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탑이 오래돼서 그런가 돌에는 구멍이 많이 나 있었는데, 여기에 비까지 쏟아졌으면 난리났을듯.

아니!! 브런치에 자체적으로 모자이크 기능이 생겼다니!!! 엄청 편리하다

어떤 성당도 구경했는데, 보면 볼수록 유럽 성당은 정말 거기서 거기같다. 다만 아래 사진 속 성당 말고 다른 어떤 성당은 겉은 소박했는데 안에 들어가니까 온통 금빛으로 번쩍번쩍해서 소름돋았다. 숨이 턱 막힐정도로 신성한 느낌이랄까... 위압감이란게 이런거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은이랑 나는 역시 그렇게 화려한 내부 장식을 하는 데 들어간 많은 돈이 백성들 주머니에서 나왔을거라며 혀를 찼다.


아래 사진은 이 동네 맥도날드인데, 여기가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맥도날드라나? 저 위에 보면 임페리얼 맥도날드라고 써 있다. 사실 그냥 오래된 건물 안에 맥도날드를 입주시킨 느낌. 하지만 의자는 푹신푹신하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니 슬슬 점심때가 돼서, 또다른 에그타르트 맛집인 NATA에 갔다. 여기 에그타르트도 진짜 맛있었다!!! 거의 제로니무스 수도원 앞에서 먹은 에그타르트에 버금가는 맛이었다. 옆에 시킨건 무슨 스페셜 음료랑 고기파이인데, 그저 그랬다.


이름은 기억 안 나는데, 볼량 역에서 내려오는 거리에 있었던 젤라또 맛집에도 들렀다. 여기는 특이한 게 장미꽃 모양으로 젤라또를 만들어준다. 맛은 몇 가지든 고를 수 있다고 해서 '아니 그렇게 퍼주고도 장사가 돼?!' 싶었는데, 알고 보니 전체적인 용량은 똑같고 그냥 선택한 맛 수에 따라서 종업원이 꽃잎을 다르게 구성해주는 거였다. 우리는 네가지 맛으로 선택했다. 색깔 조합은 별로 안 예뻤지만, 내가 고른 맛 중에서는 피스타치오랑 초콜렛이 제일 맛있었다. 




배를 채운 뒤, 우리는 도우루 강변을 구경하러 내려갔다. 

도시가 강변에 위치해서 그런가, 여기는 갈매기들이 비둘기마냥 여기저기에 있다. 

강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에펠의 제자가 설계했다는 동 루이 1세 다리가 보인다.

스승님의 건축 방법에 감명을 받은 것인지, 이 다리도 에펠탑처럼 가까이 가서 보면 다소 흉물스럽다.


우리는 칼렘 와이너리 투어를 하기 위해 아래 사진에 보이는 다리 1층을 통해 건너갔다.


포르투에 방문하게 된다면 와이너리 투어를 꼭 해보기를 추천한다.

와이너리 투어 티켓은 도시의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살 수 있고, 칼렘 와이너리 같은 경우는 와이너리에 와서 직접 살 수도 있다. 다만 시간대가 다양한 편이 아니고, 인원이 다 찰 수도 있으니 미리 사고 가는 게 좋다.

와이너리로는 샌드맨과 칼렘이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우리가 들어간 인포메이션 센터에서는 칼렘만 판매했다. 샌드맨은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들었는데 잘 모르겠다. 칼렘은 인당 7유로였는데, 이 돈이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 재미있었다! 우리가 간 일요일에는 시간대가 2시 45분과 5시, 이렇게 두 가지만 있어서 우리는 5시꺼를 듣고 저녁을 먹는 계획을 세웠다.


칼렘 와이너리 투어에는 약 한 시간정도가 소요된다. 한 그룹당 가이드 한 명이 붙어서 와이너리를 구경하고, 마지막에는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 한 종류씩을 시음해 볼 수 있다. 시음 후 와인을 구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나는 사실 이전까지는 와인에 대해 잘 모르기도 했고 관심도 그다지 없었는데, 이번에 투어를 하면서 몰랐던 사실들을 많이 알게 돼서 재미있었다. 와인 공부를 해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달까! (그리고 4년 후 나는 진짜로 조주기능사 시험을 보게 된다ㅋㅋㅋㅋㅋ)

 

와이너리에 처음 입장에서 마주하게 된 것은 아래와 같은 거대한 오크 통이었다. 무려 4천 리터가 들어간다고. 큰 통에서 얼마나 숙성시키는지, 또 큰 통에서 얼마쯤 후에 작은 통으로 옮기는지 등에 따라서도 와인 종류가 달라진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이렇게 포르투갈에서 와인 숙성에 사용된 오크통은 여러 나라에서 다른 종류의 술을 만드는 데 사용되기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캐리비안 해역 근처에서 럼주를 만드는데 쓰이고 끝난다고.


가이드 아저씨는 포르투 와인의 특징을 'strong & sweet'이라고 한 마디로 정리하셨다.


이전까지는 달면서 도수가 높은 와인이 왜 특별한지 잘 몰랐는데, 설명에 의하면 와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당분이 발효되어 알코올이 되기 때문에, 와인에서 알코올 함유량과 단맛은 반비례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높은 도수(strong)와 강한 단맛(sweet)은 원래는 와인에 있어서 다소 모순적인 표현이라는 것!


하지만 포르투 와인은 발효 과정에서 높은 도수의 브랜디를 첨가한다. 이는 발효를 진행시키는 박테리아를 멸균해서 당분이 알코올로 변하는 것을 막는다. 이를 통해 높은 도수와 강한 단맛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법은 포르투갈에서 만든 와인을 상하지 않게 다른 곳으로 운반할 방법을 찾다가 개발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가이드 아저씨가 귀에 쏙쏙 들어오게 쉬운 영어로 설명해줘서 재미있게 들을 수 있었다.


이렇듯 포르투 와인은 도수가 세면서도 무척 단 게 특징이라, 보통 하우스 와인으로는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즉, 식사를 할 때 음식과 같이 먹는 와인이 아니라는 뜻. 


그리고 하필 도우루 강가에 여러 와이너리들이 위치한 이유도 알 수 있었다. 도우루 강 너머에는 도우루 밸리가 있는데, 그곳의 토양은 열을 잘 흡수하고 잘 유지하는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곳의 기온은 낮에는 무척 덥고, 밤에는 무척 춥기 때문에, 그러한 토양의 성질이 토양의 기온을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그게 포도 농사에 제격인 모양이다.


다만 도우루 밸리의 문제점은 굉장히 가파르다는 점. 그래서 계단식으로 포도를 재배해야 하며 수확 역시 기계로 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이 뒤에 커다란 바구니를 지고 직접 허리를 숙여가며 하루 종~일 포도를 따야 한다고... 우리는 또 '분명 노예나 저소득층 사람들을 착취해서 재배했겠군'이라며 수군거렸다. 하여간 염세적인 인간들이다.


하나 더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빈티지 와인에 관한 거였다.

빈티지 와인은 여러 품종의 포도를 섞어 만드는 대부분의 와인과 달리, 아주 포도 재배가 잘 된 해에 한 품종의 포도만을 사용해서 만든다. 그리고 위에 올린 사진처럼 엄청 큰 통에 숙성시키는 과정을 아주 짧게! 거치고 바로 병에 넣어서 그 안에서 나머지 숙성 과정을 거치도록 한다. 기본 20년은 숙성시킨다고 하는데, 그래서 아버지가 빈티지 와인을 만들면 아들이 딱 성인이 될 때 같이 맛볼 수 있다나. 세상에나, 나라면 한 5년만 지나도 따고 싶어서 근질근질할 것 같은데 정말 대단한 인내심이다! 아무튼, 이런 빈티지 와인들은 아주 오랜 시간동안 병 안에 갇혀서 바깥 공기와 차단되어 있기 때문에 병을 딴 순간부터 변질이 시작된다. 따라서 병을 따면 최대한 빨리 마셔야 한다고 한다. 근데 왠지 20년 묵은 포도주스...라고 생각하니 뭔가 마실 때 좀 꺼림칙할 것 같기도 하고ㅋㅋㅋㅋㅋㅋ


투어 마지막에는 설명으로만 듣던 포르투 와인을 드디어 시음해볼 수 있었다. 사진을 보면 레드와인이 더 뒤편에 놓여 있는데, 레드와인이 더 뒷맛이 강해서 나중에 먹으라고 저렇게 뒀다고 한다. 우리 둘다 화이트 와인쪽이 더 맛있다고 결론내렸다.


솔직히 와인을 먹어봤자 얼마나 취하겠어? 싶지만 포르투 와인이 도수가 높다는 게 정말이었다.

보통 18~20도 정도 된다고 하는데, 우리는 진짜 고작 저만큼을 먹고 취해버렸다ㅋㅋㅋㅋㅋㅋ

막 만취했다!는 아니었지만 몸이 살짝 따뜻해지고 기분이 은근하게 좋아진 상태로, 우리는 와이너리를 나왔다. 취해서 그런가 우중충한 하늘조차 아름다워보였다.


다리 위에 서서 찍은 파노라마

돌아갈 때에는 동 루이 1세 다리의 위편으로 건너갔는데, 밤이 돼서 다리에 불이 켜지기 시작하니까 참 예뻤다. 우리는 들뜬 기분으로 헛소리를 하며 별거 아닌 얘기에 깔깔댔다. 이때 찍은 동영상이 진짜 웃긴데 차마 여기에는 올릴 수 없는게 안타까울 따름.

포르투갈 날씨가 따뜻할 줄 알고 예비용으로 챙겨온 과 바람막이는 계속되는 악천후 덕에 그냥 계속 입고다니는 외투가 되어버렸다. 다시 보니 정말 칙칙하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니 빨간 지붕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게 귀여웠다. 아래 사진은 실제 지붕 색을 최대한 살려서 보정해보았다. 날씨는 이 사진에 보이는 것보다 더 우중충했고, 하늘은 더 어두웠다. 그럼에도 포르투 와인은 이 모든걸 낭만적으로 보이게 만들어주는 마법을 부렸다.




이때 딱 기분 좋은 채로 도우루 강가의 레스토랑으로 향했으면 좋았을 것을.

'포르투에 왔으면 문어를 먹어야지!'라며 문어밥 맛집으로 알려진 제보타에 가겠다고 15분가량을 오르막길을 걸어 시내로 올라갔는데. 젠장! 오늘이 일요일인 걸 까먹었다. 제보타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네이버에서 찾은 한국인 픽 맛집들 역시 다 문을 닫은 상태였다. 이대로 다시 도우루 강가로 내려가기엔 너무 피곤했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찰나, 길가를 걷다 우연히 분위기가 괜찮아 보이는 레스토랑 하나를 발견했다. 이름은 Cantinho Do Avillez. 메뉴를 보니 우리가 목표로 하던 문어요리도 팔고 있었다. 피곤과 배고픔에 쩔어 있던 우리는 빠른 결정을 내리고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밖에서 보던 것보다 고급스러워 보였다. 사람들이 많지 않길래 당연히 그냥 앉을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웨이터가 예약을 확인해본다며 컴퓨터를 보고 온 후에야 자리를 내 주었다. 그래서 나름 이 지역에서 유명한 식당인가 싶었는데, 요리를 맛보게 되자 왜 여기가 예약이 꽉 찬 식당인지 알 수 있었다.

그렇다. 이번 포스팅은 바로 이 식당을 영업하는 글이다!!!


우리가 시킨 건 송아지 고기 필라프(좌)와 문어 요리 with 매쉬드 포테이토(우)였다.

포르투 요리는 꽤 짠 편인데 여기는 딱 우리 입맛에 맞는 짠맛이어서 일단 좋았다. 무엇보다 문어 요리가...미쳤다... 진심 인생 문어!!!!!! 나는 질긴 음식을 싫어해서 문어는 물론 쭈꾸미도 좋아하지 않고, 질긴 고기는 물론이거니와 곱창도 먹지 않는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이 문어는 달랐다. 칼을 대는 순간 사르르 잘려서 일차로 당황했고, 입에 넣는 순간 이차로 당황했다. 너무 맛있어서...


이렇게 써놓고 나니까 무슨 촌스러운 삼류 홍보글 같은데;; 그냥 이 문어 생각을 하면 떠오르는 말들을 두서없이 나열해 보았다ㅋㅋㅋㅋㅋ 함께 나온 감자도 잘 어울렸고 맛있었다. 송아지 필라프도 인기 메뉴라고 적혀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격대는 포르투갈 물가를 생각하면 싼 편은 아니지만, 음식의 퀄리티를 생각하면 충분히 지불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웨이터분들 역시 손님들에게 뭐가 필요한지를 말하지 않아도 바로바로 눈치 채고 갖다주는 모습에서 고급 식당답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건 디저트 메뉴 중에서 'life changing hazelnut' 이라고 씌여 있길래 시켜봤다.

바닐라 맛으로 추정되는 아이스크림 한 스쿱 위에 '헤이즐넛 거품+생크림' 같은 것을 얹은 디저트였다. 위에 뿌려진 알갱이는 단맛을 증폭시키기 위한 것으로 생각되는 굵은 소금. 거품만 떠먹으면 좀 느끼하고, 밑에 있는 아이스크림과 함께 먹으면 꽤 맛있다. 지은이 말로는 직접 해 먹을만 한 것 같다고ㅋㅋㅋㅋㅋ 사실 우리가 느끼기에 진정한 life changing 메뉴는 문어였다. 이제 한국 가서 문어 어떻게 먹지...


이건 그냥 혹시나 해서 가져온 메뉴 캡쳐본! 저중에 우리가 먹은 건 가운데의 Risotto de vitela와 Polvo assado였다. 식당 가면 영어 메뉴판도 준다!




지치고 힘들었지만 마지막 저녁 식사로 다시 한껏 행복해진 우리는 밥 먹기 전에 미리 사둔 케이크와 포르투 와인 한 병을 들고 숙소로 향했다. 사실 오늘은 내 생일이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은 많이 다녔어도 타국에서 생일을 맞는 건 처음이었는데, 아침에 지은이가 자기가 사실 미역국 블럭을 몰래 챙겨왔다고 조식을 먹고있는 와중에 수줍게 이야기했다ㅋㅋㅋㅋㅋㅋㅋ 밥 다 먹었는데 그걸 지금 이야기하면 어떻게 해요~~~!! 그치만 내심 엄청 감동했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와인을 짠 하며 케이크를 먹었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한게 한 가지 있다면.. 저 케이크가 상상 이상으로 너무 달았다는 점, 그리고 포르투 와인 역시 무척 달다는 점이었다. 와이너리 투어에서 대체 뭘 들은거냐... 단짠단짠은 몰라도 단단단단은 영 아니라는걸 다시금 깨달았다. 

근데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다 먹었다ㅎㅎㅎ


이렇게 포르투갈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도 지나간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싫어서 어떡하지! 아무래도 내일 렉쳐랑 튜토리얼은 자체 휴강을 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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