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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적대는 끼서 Jan 16. 2023

뜻밖의 생일상

네덜란드 교환학생 D+49

2017년 3월 8일 수요일


어제 튜토리얼과 렉쳐를 통째로 자체휴강하니 이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다!

오늘도 우중충한 네덜란드의 날씨는 아침 일찍 도서관을 가겠다는 우리의 결심을 너무나도 쉽게 꺾어버렸다.

그래, 이런 날은 집에서 쉬어야지...^^


12시즈음 일어나서 점심으로 식빵피자를 만들어 먹었다. 여행가기 전에 찬밥 처리용 리조또를 만들며 반 정도 쓰고 남겨둔 냉장고 속 토마토소스가 떠올라서, 곰팡이 피기 전에 얼른 해치우려고 만들었다. 그냥 식빵에 소스를 슥슥 바르고 양파, 버섯, 토마토, 베이컨, 피자치즈를 올려 오븐에 10분 구우니 완성. 어제 마침 장을 봐 둬서 재료가 넉넉했다.


그저께 여행에서 돌아왔을 땐 냉장고 안에 유통기한이 제일 길길래 남겨두었던 치킨까스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어제는 지은이가 월남쌈이 먹고 싶다고 해서, 새로 장봐서 사온 재료들을 이 치킨까스와 함께 싸 월남쌈을 만들었었다. 내친 김에 프리츠도 조금 튀겼는데, 케찹과 함께 당연한 듯 마요네즈를 짜는 나를 발견하고 네덜란드인들의 식성에 동화되어가는 것만 같아서 조금 소름이 돋았다. 근데 진짜 이제는 감자튀김은 마요네즈에 찍어 먹어야 할 것만 같다...


어제 먹은 월남쌈과 오늘 먹은 식빵피자


밥을 먹고 빈둥거리다가 아리아나 그란데 암스테르담 콘서트 티켓팅을 했다. 좋은 자리의 표는 거의 다 팔린 상태라 시야가 별로인 자리에 91유로를 줘야 했지만, 여기서가 아니면 언제 또 아리를 직접 보겠나 싶어서 냉큼 샀다. 


오늘은 영아언니랑 나현언니가 생일을 축하하는 의미라면서 저녁식사와 티타임에 초대했다. 밥이랑 차는 우리가 준비할테니 몸만 와! 라는 느낌으로 언니가 야심차게 메뉴판까지 보내줘서 깜짝 놀랐다ㅋㅋㅋㅋ 사실 여행중에 끼어 있던 생일이라 그냥 '올해 생일은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하고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생일상을 받게 되자 마음이 울렁울렁했다. 혼자 떨어져 온 이 머나먼 나라에서 나를 신경써주는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지낼 수 있다니, 새삼스레 행복하다고 느꼈다.


영아언니와 나현언니가 만들어준 까르보나라 불닭! 아쉽게도 홍차랑 티라미수는 못 찍었다ㅠㅠ


교환학생을 준비할 때만 해도 외국에서 외국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지내보는 첫 경험인 만큼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많았고, 결국 공부를 하러 가는 거니까 외국인 친구를 많이 사귀고 영어도 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돌아보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친해지는 데에 그 사람의 국적이나 언어가 뭐가 중요한가 싶다. 어떤 사람들은 '기껏 교환학생 가서 한국인들끼리만 몰려다니면 영어 하나도 안 늘고 어차피 다 부질없어요' 라고 말하지만, 새로운 사람들과 인연을 맺는 것에 굳이 그렇게 이익과 손해를 따져야 할까? 그 사람이 한국인이면 어떻고, 외국인이면 또 어떤가. 그냥 나랑 마음 맞고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면 그만인 걸. 떠올려 보면 여기서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어울렸다. 가까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한국인 친구들, 함께 벨기에 여행을 다녀온 맷, 라이, 리지아, 에드워드, 크리스티앙과 파블로 등 5층 사람들, 펍크럴에서 만난 피온과 탱, 3층의 마키, 샐리, 벨렌, 페이잉, 페루 친구들, 튜토리얼의 체리, 아이리시 펍에서 만난 메건.. 이곳에 온지 아직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많은 추억들이 생겼다. 남은 시간동안도 부디 지금처럼 행복하게 보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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