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양해성 Sep 29. 2019

산타클로스가 평범한 물류 노동자라면 어떨까

격동의 라스트마일 물류 혁신 속에 놓인 산타클로스

산타 할아버지는 라스트마일 배달원이다.


라스트마일(Lastmile)은 물류의 여러 배송 수단 중 사용자와 만나는 최종 단계를 의미한다. 쿠팡의 로켓배송, 마켓컬리의 샛별배송이 모두 라스트마일 혁신의 결과물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부릉(VROONG) 역시 오토바이를 이용한 음식 배달을 중심으로 라스트마일을 혁신해나가고 있다.


산타 할아버지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아이들에게 최종적으로 전달하는 라스트마일 종사자다. 이런 산타 할아버지는 라스트마일 종사자의 눈에 그저 '신'이다. 하룻 밤에 전 세계의 가정집을 도는 배송 속도는 말할 것도 없고, 고객들의 잠을 깨우지 않고 양말 속이라는 정확한 배송 위치까지 지켜주는 UX는 덤이다. 운송 수단으로 루돌프를 사용하기에 탄소 절감의 효과도 있고, 무엇보다 무료 배송이다. 게다가 휴일에 일한다.


하지만 만약 산타 할아버지가 평범한 인간이라면 어떨까. 2019년도 크리스마스에 평범한 라스트마일 노동자로 살아가는 산타 할아버지를 상상해봤다.




2019년 크리스마스의 다음 날 강남 어딘가, 서울의 산타들이 송년회를 하고 있다.


"나 때는 말이야. 진짜 굴뚝으로 다녔었어. 힘들었지만 그 나름의 로망이 있었다."


은평구 산타가 잔뜩 취해서 또 옛날 얘기를 꺼낸다. 그는 산타 붐이 불었던 1970년대에 처음으로 산타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나이 스물셋 때의 일이었다. 이제 갓 군대를 제대한 나이에 산타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게 참 싫었던 그는, 이제는 정말 백발의 할아버지가 되었다.


강산이 두세 번 변하는 동안 사회도, 기술도, 아이들도 바뀌었다. 이런 변화에 적응하는 것은 산타의 숙명이라지만 최근 몇 년 동안에 그 변화의 속도는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빨라졌다. 은평구 산타와 같은 베테랑들에게도 이런 변화들은 놀랍기만 하다.


"세월 참 빠르죠. 그동안 모든 게 진짜 많이 바뀌었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다들?"


관악구 산타의 얘기에 다들 잠시나마 지난 날을 돌아본다. 짧았던 침묵을 깨고 성북구 산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일단 예전에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정말 다양했는데 요즘엔 거의 다 같은 걸 고르지. 아무래도 헤이지니 때문이지 않을까."


헤이지니는 아동용 장난감을 리뷰하는 구독자 200만 명의 키즈 유튜버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이의 선물을 고르는 게 부모들의 숙제이자 낙이었는데, 이제 그런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이들이 헤이지니를 통해 장난감을 미리 경험하고 부모에게 선물을 선정(?)해주기 때문이다.


"오래된 얘기지만, 전 루돌프 네비게이션이 완전 신세계였어요. 하나 부족한 게 있다면 목적지 근처에 루돌프 댈 곳을 추천해주는 기능이 아직 없다는 거예요. 요즘 마포에 루돌프 댈 곳이 없다니까요."


주차공간이 넉넉하지 않은 빌라촌이 많은 마포구 담당 산타가 불만 섞인 목소리로 얘기하자 많은 산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주차 문제는 아직도 모든 산타가 겪는 고충이다.


"나는 우리 말고도 새벽에 배송하는 사람들이 생긴 게 제일 신기해. 쿠팡맨인지 뭐시기인지. 예전에는 진짜 우리 밖에 없었잖아. 요즘 애들은 우리가 새벽 배송 원조인 거 아나 몰라."


중랑구 산타가 말했다. 마켓컬리와 쿠팡 프레시와 같은 서비스의 성공으로 이제 새벽에 배송을 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2019년에 8,000억 원의 규모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새벽 배송 시장을 처음 개척한 이들은 바로 산타들이다. 한국에서는 이제 새벽 배송이 막 시작되는 단계이지만 산타들은 12세기에 이미 새벽 배송 서비스를 런칭했다.


12세기 당시 산타의 새벽 배송을 기록한 그림


"그때 마켓컬리에서 오퍼 왔을 때 은평구 형님이 의리로 저희 곁에 남아주셔서 저희도 여기 있는 거 아닙니까. 존경합니다 형님."


중랑구 산타의 알랑 방귀에 은평구 산타의 기분도 나쁘지는 않다. 마켓컬리의 제안을 거절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오래도록 새벽 배송 노하우를 쌓은 산타들을 모셔가기 위해 라스트마일 회사들이 너도 나도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그는 괜히 후배 산타들의 얼굴을 한 명씩 눈에 담아본다. 그를 믿고 따르는 후배들을 보자 산타로 남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자신과 함께 전설의 두 산타로 칭송받았던 송파구 산타의 얼굴이 떠오르자 금세 침울해졌다. 그가 동료 산타 12명과 함께 쿠팡맨이 된 건 산타 업계 최대의 사건이었다.


이 광고 하나에 12명의 산타가 넘어갔다


"송파구 자식... 그 자식 때문에 사람 부족해서 우리가 산타 플렉스 만든 거 아니냐."


결국 은평구 산타가 폭발했다. 산타 플렉스는 일반인들이 자신의 차를 이용하여 원하는 시간만큼만 산타로 활동하는 서비스이다. 직고용 산타만으로 크리스마스 물량을 처리할 수 없게 되어 고육지책으로 시작한 서비스다. 올해 크리스마스에도 서울지역에 250명 정도의 산타 플렉서들을 모집할 계획이다.


"데이터 보니까 우리가 강북쪽이 케파(Capacity)가 제일 부족해. 1인당 선물수가 다른 지역의 1.7배 정도 된다고. 그니까 산타 플렉서들은 주로 강북쪽에 들어갈거야."


은평구 산타는 최근 DDC, 즉 Data-driven Christmas에 빠졌다. 그는 아이들의 수, 산타의 수, 도로 상황, 루돌프의 체력, 선물의 무게 등을 모두 데이터화 시켜서 최적의 배송 경로를 추천해주는 서비스를 2021년까지 런칭하는 것이 계획이다.


"배송도 배송이지만 저는 일반인 산타들이 우리처럼 애들 양말에 꼬박꼬박 선물 잘 꽂아 넣어 줄지 모르겠어요. 빨간 옷 입고 수염 붙이면 산타 되는 줄 아는데, 산타의 핵심은 사실 고객 경험이지 않습니까."


관악구 산타가 말했다. 그의 말에 배송 전문가로서의 자부심이 묻어 나왔다. 그런 관악구 산타가 기특했는지 은평구 산타가 화답한다.


"얘기 한 번 잘했다. 이제는 산타도 고객 경험을 생각해야 돼. 그게 우리 차별점이라고. 애들을 만족시켜야 산타도 있는 거야. 다들 꼬박꼬박 배송 완료 사진 보내고 있지?"


배송 완료 사진은 요즘 산타들이 밀고 있는 아이템이다. 최근 이른바 'Children Experience'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산타가 배송을 완료할 때 아이들의 부모에게 SMS로 사진을 보내주는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부모들의 반응이 폭발적이다. '진짜 산타가 있어?'라고 묻는 애들에게 산타의 존재를 확인시켜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문 앞에 두고 가주세요'라는 요청도 많아서 더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다.


최근 산타가 제공하기 시작한 배송 완료 알림 서비스


"그럼요. 꼬박꼬박 보내고 있죠. 그나저나 다들 루돌프는 어떻게 쓰고 계세요? 저는 올해부터 그냥 공유 루돌프로 사용하고 있어요. 돈 꽤 아꼈죠."


마포구 산타가 말했다. 최근 크리스마스 하루를 위해 루돌프를 1년 내내 관리해야하는 산타들의 부담을 덜기 위한 공유 루돌프 서비스가 등장했다. 산타는 자신이 필요한 시간 만큼만 루돌프를 사용할 수 있어 좋고, 루돌프는 평소에는 테마파크에 활용되어 회전율이 좋아진다. 최근에 많은 산타들이 공유 루돌프로 갈아타고 있다.


"나도 공유 루돌프지 뭐. 어쩌겠냐 일년에 하루 타겠다고 일년 내내 먹이주고 똥 치우는게 딱 봐도 미친 짓이잖냐. 그래도 20년 함께한 루돌프 순돌이 마지막으로 탄 날에 속상해서 술 많이 마셨다."


순돌이의 얼굴이 떠오르자 관악구 산타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는 올해 처음으로 공유 루돌프 서비스를 이용했다. 블랙박스도 장착되어 있고, 완전자차까지 되는 최고급 루돌프 서비스였지만 순돌이의 빈자리를 모두 채우지는 못했다. 자신의 눈에 고인 눈물이 부끄러웠는지 관악구 산타가 담배를 피러 홀로 밖에 나간다.


"우리도 슬슬 일어나자. 이건 내가 계산할게. 2차 가자."


은평구 산타의 말에 빨간 옷의 긴 수염 아저씨들이 하나 둘씩 일어난다.





참고자료 :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14/2019061401758.html

http://www.outsourci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82763


작가의 이전글 콕 찔러보기는 페이스북의 실수일까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