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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사삼 May 02. 2020

제품의 logos, pathos, ethos

철학자에게 배우는 제품을 만든다는 것 - 1

오늘날 제품을 만드는 사람에게도 철학자들은 굵직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철학 공부를 하며 가슴에 새긴 큰 가르침들을 모아 정리해보려 합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제품을 통해 사용자와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박사 학위를 포기하겠다는 말을 처음 꺼낸 미팅에서 교수님이 그 이유를 물으시자 나는 답했다. 연구란 것이 사용자와 한 두 번 문답을 나누고 마무리 지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대화가 아니었다. 난 좀 더 오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욕도 먹고 칭찬도 들어가며 사용자와 지지고 볶고 하고 싶었다. 그놈의 프로토타입 말고 진짜 제품으로.


그렇게 필드에 나온 지 1년 반쯤 되었다. 그 사이 사용자와 참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열심히 기획하고 개발해서 말을 걸면(사용자님 이거 어때요?) 얼마 지나지 않아 답이 온다(되게 별론 데요?). 사용자와의 대화도 모든 대화가 그렇듯이 늘 즐겁지만은 않더라. 즐거운 대화만큼 지루하고, 재미없는 데다가 때로는 고통스러운 대화도 있었다.


대화에도 수다, 문답, 다툼, 정보 전달 같이 다양한 종류가 있다. 내가 1년 반 동안 사용자와 나눈 대화는 무엇이었을지 돌아본다. 아무래도 '설득'에 가장 가까웠던 것 같다. 더 좋은 가치를 드리는 것이라고, 당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드리고 있다고 알아주길 바라면서 제품을 통해 설득했다.


그러나 설득이라는 것이 참 쉽지가 않았다. 기나긴 설득에도 불구하고 우리 제품을 떠나는 사용자들, 아예 내 말을 들을 마음조차 없는 사용자들을 보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늘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던 와중 알쓸신잡 아테네 편을 다시 보기 하다가 우연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을 알게 되었다. 수사학은 '설득의 기술'이다. 특히 대중 연설에 관한 기술을 연구한 것이다. 제품을 통해 사용자를 설득하는 것 역시 일대일의 설득이 아닌, 대중 연설의 측면이 강하지 않은가. 『수사학』을 파헤쳐 보기로 했다.


『수사학』에 따르면 설득의 힘은 세 가지의 결합에서 온다. 바로 logos, pathos, ethos다.


logos


logos는 논리이다. 설득을 잘하기 위해서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품의 logos는 무엇일까.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어떤 것을 개발할지, 어떻게 개발할지 결정하는 것이지 않을까. 왜 어떤 것은 개발되어야 하지만,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은가. 왜 어떤 것은 다른 것보다 우선적으로 개발되어야 하는가. 왜 이런 방향으로 개발되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에 논리적으로 답을 얻고 '당신은 이런 이유로 이 제품이 필요합니다'라며 사용자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pathos


pathos는 설득하려는 사람의 감정을 헤아리는 것이다. 설득받는 사람이 ‘저 사람은 내 감정을 이해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면 더욱 잘 설득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품의 pathos는 무엇일까. 사용자를 수단으로 여기지 않고, 목적으로 여기는 것이지 않을까. 회사를 키우기 위한, 내가 성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자를 생각하면 사용자를 ‘분석’하게 된다. 하지만 사용자를 목적으로 여기는 순간 우리는 사용자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공감해주기를 원하지 자신을 분석해주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런 공감의 결과를 제품에 고스란히 녹여내어 사용자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ethos


ethos는 설득하는 사람의 성품을 말한다. 설득하는 사람의 목소리, 이미지, 카리스마, 아우라 등이 설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즉 ethos는 누가 설득하는지에 따라서 같은 logos, pathos를 사용하더라도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제품의 ethos는 무엇일까. 사용자가 제품과 브랜드에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아닐까. LG의 백색가전에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두터운 신뢰, 오너로 인해 시작된 대한항공의 불매운동 등은 ethos가 어떤 식으로 설득 과정에 영향을 주는지 잘 보여준다.


사람의 성품이 한순간에 바뀌지 않듯이, 제품의 ethos는 순간의 노력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관성 있는 철학을 꾸준하게 제품에 녹여낼 수 있는 팀만이 긍정적이고 특색 있는 제품의 ethos를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는 logos의 시대에 살고 있다. 기업의 경영진들은 더욱 조밀하게 짜인 논리에 이끌린다. 그리고 그들을 설득한 그 논리로 사용자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에게 pathos는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불확실하다. ethos가 중요한 것은 알겠지만, 철학을 고수하자니 철학을 버렸을 때 얻을 수 있는 순간의 이익이 너무 달콤하다.


데이터는 logos 예찬론자들에게 과학이 준 최고의 선물이다. 데이터는 logos를 위한 최고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데이터를 잘 다루는 팀은 logos의 측면에서 사용자에게 더 큰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데이터는 logos를 돕고, logos는 다시 데이터에게 기회를 주며 제품 만드는 것을 ‘과학’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나의 팀이 logos에 잠식되어가는 것을 느낄 때면 무언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내가 어제 찾아가 대화했던 사용자는 대시보드 속의 숫자가 되어 있다. 그는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받지 못하고, 해체된다. 공감되지 않고, 분석당한다. 제품에서 사람 냄새가 아닌 숫자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어느 날 친구가 운영하고 있는 스타트업에서 데이터를 따라 마케팅을 하다 보니 어느새 제품의 가치를 전달하는 것보다 더 예쁘고 잘생긴 광고 모델을 찾는 데에 집중하게 되었다는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지나치게 logos만을 쫓다가 ethos를 잃은 셈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리스토텔레스도 같은 상황을 목격했다는 것이다. 그는 『수사학』에서 사람들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설득의 방식이 logos, pathos, ethos의 순이라고 했다.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니,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는 동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본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반대로 ethos, pathos, logos의 순으로 더 큰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자연’을 설득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설득 방식은 logos로 충분하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을 설득하려 한다. 인간은 논리적으로 선택하지만은 않는다. 때로는 논리가 부족하더라도 나에게 공감해주는 사람이, 평소에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 설득할 때 더 마음이 간다.


그렇기 때문에 설득하려는 자는 탄탄한 논리를 만들어내는 것보다도, 사람에게 공감할 수 있는 능력(pathos)과 자신만의 확고한 이미지(ethos)를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라면 최근 배민이 겪은 일을 좋은 예시로 삼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배민은 확실히 ethos를 가진 기업이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배민의 ethos는 B급 감성으로 대표되는, 그들이 배달 고객에게 가진 ethos이다. 하지만 배민이 배달업체 점주님들에게 ‘상생하는 기업’이라는 ethos를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는 점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배민은 매출이 30% 정도 날아가는 것을 감수하며 무려 두 번이나 상생을 위해 BM을 바꾼 적이 있다. 또한 경영지식이 부족한 점주님들을 위해 무료로 전문가 강의를 제공하는 배민 아카데미를 운영하기도 하며, 배민 장부와 같은 고부가 서비스도 과감하게 무료로 제공해왔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 ‘상생하는 기업’이라는 배민의 ethos가 ‘폭리를 취하는 독점 기업’으로 뒤바뀌어 버린 모양이다. 안타깝지만 배민은 배달 고객과 점주님 모두에게 수년간 공들여 쌓아 왔던 ethos를 대부분 상실했다. ethos를 잃은 배민이 이제 어떤 logos와 pathos를 사용해도 예전 같은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것을 보니 아리스토텔레스의 통찰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번엔 사용자의 입장에서 pathos와 ethos가 느껴졌던 제품을 떠올려본다. 토스가 그랬다.


나는 복잡한 일을 죽어도 싫어하는 사람이라 은행 앱을 쓰는 것이 여간 싫은 일이 아니었다. 그런 내가 토스를 처음 경험해보았을 때 느낀 감정은 편리함 그 이상이었다. 이 팀은 금융을 어려워하는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알고 있구나. 그때의 나는 토스 팀의 pathos에 제대로 설득당했다.


토스는 간편송금 이후의 행보에서도 꾸준히 나를 감동시켜주었다. 이 팀은 확실히 금융을 어려워하는 사용자에게 공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정말 확고한 자기 스타일대로 해내었다. 토스의 모든 페이지와 버튼에서 그 철학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러니 생전 투자의 투자도 모르던 내가 ‘토스가 믿어보라니까’ 투자를 시작해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토스는 ethos로 나를 설득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제품을 사용하지 않을 때, 우리는 설득당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 우리를 제대로 설득해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토스와 같이 ethos, pathos, logos를 조화롭게 활용할 줄 아는 팀들이 많아진다면 ‘사용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더 행복한 일이 될 것만 같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메시지는 2,000년이 지나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제품 만드는 일이 결국 인간을 위한 일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복잡한 인간과 사회를 끊임없이 고찰하며 단순한 명제로 풀어낸 위대한 철학자들의 가르침이 제품 만드는 일이라고 굳이 비껴갈 일이 있을까.


나 역시 우리 팀에서 logos를 앞세워 자신 있게 내놓은 기능이 사용자들로부터 외면받았을 때를 반추해본다. 그 기능을 받아본 사용자들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었을지, 그리고 우리 제품을 어떤 이미지로 그리고 있었을지. 나는 설득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나의 탄탄한 논리를 입증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logos의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logos의 유혹에 의식적으로 저항해보려 한다. logos, pathos, ethos를 함께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 제품을 만들고 싶다. 특히 내 제품만의 맑은, 따뜻한, 믿음직한, 인간적인 ethos를 만들어내고 싶다.


“아무리 고민해봐도 내가 저 제품을 쓸 이유가 부족하고(logos), 쓸 기분도 아니지만(pathos), 양해성의 팀이 만든 제품이라니 일단 써봐야지(ethos).”


이런 짜릿한 순간을 경험할 날이 찾아오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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