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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우 Jan 29. 2024

23. 부상으로 얻은 생각의 확장

뻥하고 공을 차고 싶은 마음 내려놓기

축구 시합을 하다가 엄지발가락에 금이 가고 3주가 지났다. 왼쪽 발에 많은 힘을 기대며 오른쪽 엄지발가락을 들고 뒤꿈치로 걸어 다녔다. 뼈는 잘 유지만 되고 있었고(조금씩이라도 뼈가 붙어야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엑스레이상으로는 뼈의 상태가 잘 보이지 않았다. 아무 일이 없는 정상인 상태가 얼마나 그립던지. 다치고 나서야 알았다. 무탈이 얼마나 소중한지. 공을 찰 수 있고, 경기를 뛸 수 있는, 별일 없는 상태를 나는 원했다.           


고통, 고난이 필요하다    

 

배가 안전하게 똑바로 나아가기 위해 싣는 배의 바닥짐처럼 누구나 항시 어느 정도의 걱정이나 고통, 고난이 필요하다.
_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은 앞으로 공을 찰 날이 많이 남은 앞날을 위한 가르침이었다. 내가 비록 함께 훈련하고 뛰지 못하더라도 내 동료들을 위해서 축구장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 이 날은 공간 전술훈련이었다. 보통 축구장 안으로 들어가서 감독님의 지시사항을 듣는다. 안에 있을 때는 내 머리가 나빠서 감독님이 말하는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자책했었다. 생각 없이 뛰다가 감독님께 지적받기를 반복하기 때문이었다. 혼날까 봐 창피하기도 했고 다른 회원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해서 미안하기도 했다. 또 지적받은 내용을 잘하려다 보니 머릿속이 복잡했다.    


       

밖에서 보는 자의 여유     


부상자는 축구장 안에서 함께 뛸 수 없었다. 긴장감이 없이 밖에서 보고 있노라니 감독님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공을 차지 못하자 여유가 생긴 것이다. 어차피 차지 못한다는 마음의 내려놓음이었다. 여유는 실력이 있어서 가질 수 있는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걱정과 두려운 마음을 내려놓음에서 오는 안정이었다. 


         

지적은 특혜이고 사랑이다     


감독님은 한 명 한 명에게 실수한 부분에 대해서 다시 알려주신다. 내가 안에 있었다면 속상했을 텐데(잔소리와 지적으로 여겨져) 밖에서 바라보니 감독님이 하는 지적은 향상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오는 특혜였다. 


우리의 삶은 현미경으로 봐야 할 정도로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한데, 우리는 그 점을 시간과 공간이라는 두 개의 강력한 렌즈로 확대해 엄청나게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시간이란 그것의 지속에 의해 사물과 우리 자신의 극히 공허한 존재가 실재한다는 허상을 주기 위한 우리의 머릿속에 든 하나의 장치다.
_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그 상황에서는 지적당한 부분이 작은 점인데 현미경으로 확대해 엄청난 잘못처럼 착각하고 있었다. 지적해 봤자 고쳐지지 않는 사람에게는 충고하지 않는다. 조금만 말해도 고쳐질 것 같은 사람에게 고치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지적은 사랑이었다.          

      


“다치고 나서 다 나을 즈음이 제일 무서운 거야. 가장 조심해야 할 시기야.” 축구장에서 들은 말이다. 맞다. 오늘도 공을 차고 싶었다. 차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두 번 찼는데 통증이 밀려왔다. 더 조심해야 할 시기, 바로 지금이다. 공을 차고 싶은 마음을 좀 더 참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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