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공이 내 얼굴로 날아왔다. ‘축구왕슛돌이’ 만화 속 한 장면처럼 공은 찌그러져서 오고 있었다. 누군가가 킥을 찼다. 공이 얼굴에 맞기 직전 가까스로 눈을 떴다. 꿈이었다. 내 몸은 현실인 줄 알고 반응했다. 움찔. 경험은 꿈에서도 몸에 각인되었다. 실제로도 공을 얼굴에 맞았을 땐 코끝은 찡해지고 눈물이 찔끔 나왔다. 책을 읽다가 선잠이 들었는데 그 찰나의 순간에도 나는 축구 꿈을 꾸었다. 무더운 여름날 점심을 먹고 나른해서 에어컨을 켜고 누웠다. 그 자세로 어려운 책을 읽노라니 꿈나라로 가는 게 마땅했다. 일어나서 잠시 황당했다.
독서회가 코앞이라 발등엔 불이 떨어져 집중해서 읽는데 잠든 이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책도 못 읽고 축구도 못 하는 이방인임을 이 선잠으로 증명했다. 축구의 세계에서도 책의 세계에서도 적응하지 못하는 나는 어느 세계에도 속하지 못했다. 그런 낯섦이 쌓이고 쌓여 오해를 만들었다. 어쩌면 무지에서 오는 것 일수도 있겠다. 축구의 세계에서 나만의 오해는 많고 참 창피하다.
몸짓으로 의견을 전달할 때
축구 경기 중 내가 받은 공을 같은 팀 선수에게 내 쪽으로 와서 공을 받으라고 나는 손바닥을 펄럭였다. 오라는 손짓을 흔들었더니 상대방은 혼란스러워했다. 오라는 건지 가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고. 손짓을 소리 없이 하려면 분명하게 표현했어야 했다(그래서 말을 하면 되는 것을 손짓은 왜 했는지...). 두 손바닥을 내 쪽으로 보면서 밖에서 안으로 끌어당기는 포즈를 해서 내 쪽으로 오라는 행동을 명확하게 보여줬어야 했다. 가라고 할 때는 손등을 내 쪽으로 보이면서 가슴부터 밀어냈어야 했다. 그 말을 듣기 전까지 내 행동의 오류를 상대방의 소통 부족으로 착각했다.
수비할 때 오프사이드 라인 맞추기 있기? 없기?
우리 팀이 공격하는 순간, 사이드백을 맡았던 나는 오프사이드 라인을 맞췄다. 센터백보다 뒤로 가지 않으려 했다. 오프사이드 라인을 맞추는 일은 우리가 수비할 때 필요하다. 경기가 끝난 후 다시 생각해 보니 공격할 때 수비 라인을 맞추는 일은 바보짓이었다. 하지만 수비수인 나로서는 언제 상대편이 공을 뺏어 우리 쪽으로 넘어올지 모르니 대비를 해 놓는 것이라고 변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상황은 공격이 상대편에 넘어갔을 때 생각해도 크게 늦지 않음을 이제야 알았다. 단지 우리 팀의 공격에서 수비로 전환될 때 내 몸의 반응이 늦었다. 그 반응은 게으름이었다.
축구인이라면 잘 넘어지는 법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태어나서 걸음마를 배우고 넘어지지 않는 법을 익힌다. 그렇게 40년을 넘어지지 않으려고 살았다. 축구를 배우고도 잘 넘어지는 법을 모르는 채 1년을 살았다. 부상을 예방하려는 자세, 잘 넘어지기였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부딪힌 곳의 충격을 내가 감당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부딪혀도 안 넘어지니까 누가 봐도 창피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불안정한 자세였지만 안 넘어지니까 균형감각이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무릎으로 상대편의 온몸을 받았을 때 무릎의 통증은 1년간 떠나지 않았다. 상대편은 오히려 앞으로 잘 굴러 다친 곳이 없어 보였다. 나도 배웠어야 했다. 잔디에서 잘 구르면 많이 다치진 않는다. 누군가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었다. 내가 내 몸을 잘 챙기는 일이 더 중요했다.
왼쪽은 눈썹을 그렸고 오른쪽은 축구가 끝나고 지워진 실제 내 눈썹이다.
축구할 때 화장은 포기했다
요즘같이 더운 날씨에는 화장이 소용없다. 눈썹도, 아이라인도 땀으로 지워지기 때문이다. 자외선차단제를 발랐다는 데 의의를 둔다. 아이라인을 그리지 않은 날이 많아지더니 이제는 눈썹까지 포기하는 상태가 되고 있다. 눈썹을 그리지 않으면 슈퍼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언니 눈썹 어디 갔어요?”
여성축구 회원 한 명이 말했다. 눈썹 문신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다 씻은 후에도 남이 있다면 눈썹은 꼭 그렸는데 이제는 안 하기로 했다. 눈썹이 없는 내 모습도 나임을 알릴 필요가 있었다. 친구의 기준은 눈썹 없는 내 모습을 본 적이 있느냐 없느냐로 갈린다. 최근 나만의 친밀도 구분이었다.
시어머니께 고민을 말했다.
“눈썹 문신을 새로 하려면 기존에 있던 건 지워야 하지요?”
“아니. 기존 눈썹 위에다 같은 모양으로 또 그리면 돼.”
세수를 하고 나서도 없어지지 않을 눈썹이, 그 귀차니즘이 갑자기 무서워졌다. 시대에 따라 눈썹 모양은 달라지는데 문신을 하면 평생 그 눈썹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무서운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물론 기술이 좋아져서 문신을 지우기도 하더라). 최근 인플루언서 ‘랄랄’의 명화목욕탕 아주머니 부케가 떠올랐다. 그 부케의 상징이 바로 초록 얇은 라인의 눈썹 문신이다.
눈썹 문신을 하지 않겠다. 원하는 눈썹의 모양도 매일 다르게 그릴 수 있을 테니까. 눈썹의 라인은 내가 꾸미고 싶을 때 맞추면 된다. 축구할 때도 오프사이드 라인은 수비할 때만 맞추면 된다. 우리 편과 몸짓으로 목소리로 호흡을 맞추고 넘어지는 타이밍을 맞추면 된다. 그렇게 하는 축구의 바보짓은 맞추면 되는 일이었다. 물론 축구공이 내 인사이드에 딱 맞추는 일은 아직도 어렵지만 말이다.
ps. 축구장에서 업사이드 라인맞춰!를 하도 외치길래. 알아보지도 않고 Up side line 인줄 알았습니다만 Off side line 이었답니다;;;; 그래서 글도 다시 교정을 마치고 오프사이드 라인으로 맞췄습니다;;; 나만 이런가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