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와 버렸다. 그것도 생판 모르는 중학생에게. 나보다 키도 덩치도 컸지만 아직은 아기인 남자 중학생. 축구 경기 도중 나는 같은 중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사실 중학생 때도 여중을 나와서 남자 중학생을 만날 일도 없었다;;)
내 영혼은 중학생으로 돌아갔으나 껍데기는 40대 아줌마임으로 그 아이는 나에게 미안해하고 당황해했다. 그리고 돌아온 내 40대 영혼은 잘못됨을 인지했으며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다. 염치없고 유치했다. 그래도 변명을 해보자면 나를 막는다고 그 아이는 공이 없는데도 나에게 몸을 자꾸 부딪혔다. 나는 그 힘을 견디지 못했고 반복해 튕겨 나가 감정이 폭발했다. 무릇 불혹이라면 유혹에 휩쓸리지 않는 나이었으나 나는 아니었다. 내 감정의 혼란을 일으켰다고 나 역시 그 감정에 같이 휩쓸린 것이 문제였다. 그 아이의 축구 열정에 물을 끼얹었다. 그 아이의 처지에서는 열심히 했는데 웬 아줌마가 ‘죽을래’라고 말하면 어떻게 느꼈을까를 다시 생각했다. 어른으로 해야 할 도리가 아니었다.
날씨도 축구공도 기압이 빠졌다
자꾸 몸이 부딪치면 불편한 여름과 가을의 중간에서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운동장에 서 있었다. 열대 저기압이란다. 폭풍을 몰고 온다던 저 기압은 공도 마찬가지였다. 축구공에 기압이 조금씩 부족했다. 주기적으로 바람을 넣을 때가 되었다. 그걸 지켜보던 회원 언니가
"공만 바람이 빠진 게 아니라 나도 바람이 빠졌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는 축구장에서 우리는 뛰고 차고 패스를 하고 드리블했다. 바닥이 드러난 체력 밑천에 날씨 탓으로 호소하고 있었다. 드리블은 보기엔 쉬워 보이는데 너무 어렵다고 옆에 언니가 투덜댔다. 드리블은 막상 하면 어렵고 내가 해도 잘 안된다고 속상해했다. 장난이 아닌 날씨 앞에서 우리는 곧 있을 경기를 위해 훈련을 했다.
잠깐 물 마실 때는 해가 구름에 가려지고 우리가 훈련하러 축구장에 서면 해가 마중 나온다. 추석을 코 앞에 두었는데도 더위는 물러나지 않았다. 별것도 아닌 부딪힘의 짜증과 날씨와 모든 것들은 축구 실력을 낮추는 핑곗거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