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들어온다면
좁은 복도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빛은 늘 그렇게 온다.
필요할 때가 아니라, 견딜 수 있을 때쯤.
나는 오래도록
벽에 등을 붙이고 서 있는 법을 배웠다.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때
뒤로 물러설 수도 없을 때
그저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는 법.
군대에서 배운 것 같지만 사실은 어린 시절부터 익숙했던 자세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위로 전선줄들이 어지럽게 얽혀 있다.
하늘은 비어 있는데 사람의 삶은 늘 이렇게 복잡하다.
끊어내지 못한 기억들,
연결된 채 남아 있는 상처들.
나는 그 선들 중 하나를 붙들고 떨어지지 않으려 하루를 건넌다.
눈길 위에 남은 발자국을 본다.
누군가 지나갔다는 흔적.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지만
그 사람이 여기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이 길이 조금은 덜 무섭다.
나 역시 언젠가 누군가의 눈길 위에
이름 없는 발자국 하나쯤은 남기고 싶다고 생각한다.
빛은 오래 머물지 않고
전선은 여전히 팽팽하며
눈은 다시 덮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길을 건너온 내가 어린 날의 나와는 다르다는 것을.
고독은 여전하지만 도망치지 않는 법을 배웠고
과거는 아직 아프지만 붙잡히지 않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오늘도 그렇게 나는 무너지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