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에 얽힌 사는 이야기
여름은 면의 계절이다
육수든 물이든 면에 따라 길어져 오른 시원한 액체가 그나마 타는 목구멍을 적셔주기 때문이다
내 고향은 운동회 때나 중국집을 가던 깡촌이었기에 덥다고 냉면을 사먹는 호사를 누릴 순 없었다
여름이면 국수를 삶아 한 소뜸 식힌 후 설탕을 푼 물에 말아 먹는 게 유일한 호사였다
그런 우리에게 냉면을 알려준 문화사절은 초여름에 온 교생이었다
광주 대학에서 온 키 작은 여자 교생쌤은 하얀 얼굴에 빨간 볼이 특징으로 여드름까지 맺힌 볼 때문에 더욱 얼굴이 부풀어 보였다
수업에 참여한 지 몇 주 지나자 교생쌤과 우리는 제법 친해져서 어느 수업에 우린 첫사랑 얘기를 들려달라고 졸랐다
빨간 볼이 터질 듯 부푼 쌤은 아쉽게도 들려줄 사랑 얘기가 없노라 한탄하면서 대신 노래를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눈 키우고 도시사람의 첫사랑 얘기를 기대한 우리는 김이 새 시루묵했지만 쌤은 아랑곳 없이 칠판에 가사를 적었다.
한 촌사람 하루는 성내와서 구경을하는데
이 골목 저 골목 다니면서 별별것 보았네
맛좋은 냉면이 여기있소
값싸고 달콤한 냉면이오
냉면국물 더 주시오
아이구나 맛좋다
<냉면>
예닐곱 줄 되는 단촐한 가사가 낯선 가락에 실렸다
당시 우린 비록 안테나를 돌리며 티비를 보던 산골이었지만 서태지와 듀스 듣던 문화혁명기를 맞은 사춘기였는데 쌤은 우리에게 구성진 가락의 노래를 선보였다
우린 당연스레 흥미를 보이지 않았는데 내겐 유독 마지막 가사 "아이구나 맛좋다" 는 구절이 입에 맴돌았고 냉면은 잊을 수 없는 맛이 입에 감돌만큼 진미일 거라고 기억됐다
좀 더 큰 도시로 고등학교를 갔지만 그렇다고 냉면을 영접해보지는 못했다
냉면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 대도시 서울!에 와서야 먹어봤다
첫 해 여름, 동문 선배들이 '서울의 시내', 종로에서 술을 샀다. 메뉴는 감사히도 삼겹살이었다
김치찌개에 소주 먹던 술문화가 당연했던 새내기에게 고기 안주는 '성공한 서울살이'의 지표로 느껴졌다
몇년 차이 나는 선배들과 어우러져 정신 없이 고기와 술을 먹다보니 파장 분위기였다
자리를 정돈하는 우리에게 사장님은 후식냉면이 서비스라며 작은 그릇에 담긴 무언가를 내왔다. 물냉면이었다. 정확히는 양념장을 푼 칡냉면이었다. 이는 객관적인 표현일 뿐이고 당시의 내 감상대로 적자면 그것은 먹을 수록 달콤한 쫄깃한 것이 성수 같은 고귀하고 새콤달콤한 육수에 맛 에너지를 한껏 감추며 웅크리고 말아져 있던 성찬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공장에서 찍어낸 후식냉면이었을 뿐인데 난 그 냉면이 후에 몇년 찾아갈 정도로 맛있었다. 지금은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돈사랑'같은 지극히 평이한 이름의 고깃집이었다. 진귀한 냉면을 영접했다고 해서 바로 냉면 사랑에 빠져든 건 아니었다. 가난한 고학생에게 돈을 지불하고 먹을 음식으로 면은 사치였다.
이후 교생쌤의 '냉면' 노래를 우연히 듣게 됐다. 당시 뜨거운 거리로 자주 내몰렸던 나는 미디어에서 들어보지 못한 노래들을 거리에서 많이 들었는데, 아스팔트가 녹아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어느 여름에 그 노래가 귀에 들렸다. 여대의 음악전공자들이 뜨거워진 판을 식히는 문예공연을 준비한 것이었다. 한여름 아스팔트보다 뜨거웠던 스무살 사내라면 응당 여대생에 눈이 가야 생물체다운 이치였지만 나는 '냉면' 노래에 빠져 그 옛날 창문 넘어 산바람이 사춘기 소년들의 귓등을 식혀주던 그 시절에 빠져들었다.
제대와 졸업, 취업을 하면서 산골소년의 이미지를 제법 벗었다. 아니 악으로 깡으로 나는 도시남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이사한 곳도 남산을 뒤를 봐주고 한강을 내려다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땅, 젖과 꿀이 흐를 것 같은 부내나는 동네, 한남동에 안착했다. 물론 오해는 금물이다. 수도 서울 부자들의 부동산 시계인 유엔빌리지 쪽의 한남동은 아니고 아직도 한남동의 지붕으로 뜨거운 볕과 차가운 북풍을 온몸으로 막고 사는 보광동 넘어가는 언덕배기의 한남동이다.
여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남동 한남' 코스프레에 푹 빠져 급기야 강건너 논현동 아가씨까지 사귀면서 마치 한강이 우리의 프라이빗 비치이고 한남대교가 우리의 오작교인양 동네 데이트를 즐겼는데 여름의 초입에 그 친구가 한남동 동A냉면으로 날 인도했다. 동A냉면은 매운 칡냉면이었는데 순전히 매운맛으로 먹는 냉면 같았다. 매운맛은 맛이 아니라 통증이라고 배웠던 터라 "아이구나 맛좋다"해야할 냉면으로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당시엔 냉면보다 여친이 중요했으니 매운 면을 먹고 주둥아이를 똥집마냥 오무린 채 손부채질까지 하면서 호호 입술을 달래는 여친이 너무 귀여워 동아냉면의 단골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날 잠자리에 누워 나는 빨갛고 부푼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대지 못한 것을 원통해 하면서 그 입술이 계속 생각나 쉬이 잠들지 못했는데 나중에는 입술보다 빨간 그 냉면이 더 생각나는 기이한 일을 경험했다. 역시 매운맛은 무서운 맛이었다.
그해 여름 우리는 냉면집 문지방이 닳도록 찾았으며 그녀는 입술이 닳도록 호호 불었고 나는 주머니가 닳도록 털어 선동아 후베라 코스로 그녀의 혀를 달랬고 덕분에 입술이 닳도록 뽀뽀를 할 수 있었다. 가을이 돼도 동A냉면은 내 최애식사였으나 냉면으로 시작한 연애의 운명인지 더위가 가시면서 그녀도 가시었고 사랑이 닳으면서 동A냉면에 대한 애정도 닳아버렸다
잠잠했던 냉면투어에 불을 지핀 건 한 방송이었다. MSG가 마치 악마의 똥이라도 되는양 떠들어대던 그 방송은 100% 천연 요리는 찾아다녔는데 속초의 한 냉면집을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냉면으로 소개했다. MSG는 물론 밀가루 1도 섞지 않은 함흥냉면이라고 하는데 방송에서 주구장창 어르신이 힘들게 냉면을 수작업으로 뽑아내는 걸 보여주니 속초를 안 갈 수가 없었다. 그집은 함흥냉면이었고 우리는 물냉과 비냉를 하나씩 시켜먹었다. 맛은 정말 좋았다. 당시 팩트체크보다는 사람 현혹하는 말솜씨가 좋았던 그 방송의 피디에 우리는 기꺼이 셀프 가스라이팅했기 때문에 비록 200킬로 이상을 달려왔지만 전혀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은 냉면이라고 극찬하면서 다음날 눈뜨자마자 또 그집을 찾는 충성까지 보였다.
이후에도 난 그집을 3~4년 더 다녔다. 이후 발길을 끊은 건 그집 냉면맛이 변한 건 아니고 나의 변심때문이었다. 강릉과 속초를 사랑해서 아직도 일년에 서너 번을 가지만 이제 냉면은 거의 안 먹는다. 난 장칼국수에 여생을 맡기기로 다짐했기 때문이다.
다음 냉면은 냉면 맛 보는 사람들의 운명인 평양냉면이었다. 회사가 을지로에 있었는데 그 동네는 아재들의 천국이다. 고개만 돌리면 '50년 전통' 식당들이 아직도 손님들을 긁어모으며 돈을 쓸어담는 곳. 그중에 내 생각에 가장 가성비 좋게 돈을 쓸어담는 곳은 평양냉면이었다. 회사 아재임원들 따라 갔던 을G면옥 첫날을 잊지 못한다.
초복도 아니었는데 이미 인도까지 줄이 길었다. 말로만 듣던 평냉의 첫경험이었기에 설렜는데 뜨악볕에 줄부터 서는 게 평냉을 맞이하는 첫 순서라니 과연 평냉은 아무나 먹을 수 없구나 싶었다. 그래도 불평할 수 없는 것이 내 앞뒤로 백발이 노인분들이 지팡이에 의지해 서계셨다. 아... 난리 때 평양에서 오신 분들이 드시니 평냉이겠구나! 따위의 잡생각이 넘칠 정도로 기다리다 평냉을 '영접'했다. 아니 '접수'했다.
가히 역사에 남을 음식이라면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해도 부족함이 없는 비쥬얼이나 맛이어야 하는데 평냉은 맛도 비쥬얼도 무색무미에 가까웠다. 즉 '뭥미'였다. 상당히 실망하였기에 한 번 먹어본 경험으로 마감하려고 했으나 나를 데려간 두 아재는 오는 내내 "평냉 첫경험은 원래 그런 것이다. 두 번째부터 평냉의 진가를 알게 된다. 나는 다섯 번만에 알았다." 이따위 말들을 늘어놓으며 동A냉면으로 냉면을 배운 내 혀를 현혹하려 했다.
지조와 절개를 인생1법칙으로 삼아온 나는 그길로 오장동으로 향해 함냉 한 사발을 조졌다. 그날밤 잠자리에서 비빔함냉의 고소한 참기름이 아직도 코에 매달려 있는 것같아 쉬이 잠들지 못했다. 내일 또 가서 비빔함냉 먹어야지! 내일 가면 만두도 시켜야겠다. 거기도 수육을 팔면 좋을텐데. 그래도 을G면옥 수육은 맛있더라. 평냉에서 수육맛이 나는 것 같던데. 그러고보니 육수를 다 먹을 때면 묵직한 고기향이 나던데. 별 거 없어보이더니 투뿔한우가 내 몸에 들어온 거구나. 그런데 그 집 면은 왜케 잘 끊겨? 메밀이 많이 들어갔다던데. 메밀도 무맛이던데? 아니 먹다보니 좀 고소한 것 같기도. 그러고 보니 평냉 먹고 뒷맛이 개운했던 거 같네. 텁텁함이 없고
이상했다. 그것은 마치 달을 보다 블랙홀로 타임슬립하는 느낌이었다. 다음날 출근해서 나는 아재들에게 다시 평냉을 먹어보자 권했고 그들은 그믐날 담을 넘는 처자를 보듯 음흉한 미소를 띈채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게 나는 을G면옥, 필D면옥, 을M대, U래옥 등 성지순례를 밟는 신도가 돼버렸다.
불혹의 나이에 들면서 지조와 절개 대신 세상은 다양하고 한 가지만 고수하면 꼰대가 된다는 섭리를 통달하면서 이제 다른 맛들을 찾는다. 평냉과 함냉을 평등하게 끼고 살면서 다른 냉면들도 애정하게 됐다. 남P면옥 동치미 냉면은 무의 달달하고 시원한 맛이 좋다. 봉P양의 육향과 부드러운 면도 좋다. 다 좋다!
최근에 회사가 이사하면서 이 동네 평냉집을 찾았다. 부1면옥은 남대문시장 내에 있는데 정치인들 싸인이 많더라. 암암, 서민 코스프레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냉면은 참 좋은 메뉴지. 여튼 그 집은 다른 평냉집과 육수와 면이 모두 다르다. 진퉁도 아니고 짝퉁이라기엔 또 개성 있는 맛이고... 여튼 이 집은 이도저도 아니지만 누구나 좋아할 물냉과 비냉맛이라 자주 찾고 있다. 가서 꼭 빈대떡을 시키기는 하는데 어쩌면 빈대떡때문에 가는 것 같기도 하다
지조와 절개를 내던지 내 혀에 감사하며 오늘은 콩국수를 먹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