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순천에 다녀가요
어렸을 때부터 친구(별명: 탁구공)를 홀로 키우셨어요
올해 94세
5년 전부터 남도 바닷가 요양병원에 계셨어요
지난 8월 친구가 내려가 뵀을 때 말씀도 잘하셨대요
친구 다녀간 후로 급격히 안 좋아지셔서
9월부터는 물만 드실 수 있었대요
보통 그 정도면 한두 달 못 버티신다던데
할머니는 석 달을 물로만 사셨대요
이번 달부터는 의식도 없었답니다
10월에 오랜 직장생활을 끝내고 탁구공은 사업을 시작했죠
12월 초에 만났는데 생각만큼 잘 안 된다며 웃더라고요
지난주에 통화할 땐 쉽지 않다며 연말에 술 먹자고 하더라고요
며칠 전, 탁구공은 갑자기 할머니가 너무 보고싶더랍니다
그래서 어제 혼자 차를 몰고 새벽에 내려갔대요
11시에 할머니를 뵀는데 신기하게 탁구공 말에 반응하시더래요
눈도 맞췄대요
잘 계시라고 설에 올테니 좀만 더 힘내시라고 인사했대요
다시 차를 몰고 올라오는데
전주를 지날 때 병원에서 연락왔대요
어젯밤 8시쯤 순천에 도착했어요
저와 탁구공이 고등학교를 다닌 곳이죠
할머니 초상이니 문상객은 가족과
탁구공과 할머니 관계를 아는 고향친구 넷 뿐이었어요
탁구공이 저희에게 술 한 잔씩 따라주고
우리 중 제일 큰, 소처럼 큰 친구에게
지난 여름에 들은 할머니 유언을 전했어요
할머니는 그 친구를 '대장'이라 불렀었습니다
"대장이에게 너 잘 부탁한다고 전해라."
소처럼 덩치가 커도
나이 마흔이 넘어도
우린 할머니 앞에서는 애인가 봐요
할머니 유언에 눈물이 왈칵 차오르더라구요
눈 보기 어려운 남도에,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더더욱 희귀한 남도에서
눈 오는 성탄절에 할머니를 보내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