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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렁거릴 땐, 낮은 자세로

by 춤추는나뭇가지

어린이집 차량이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린 아이들을 인솔하여 숲으로 향했다. 준비체조를 하고 유의사항을 이야기하고 나무들이 우거진 데크길을 걸어갔다. 늘 선두에 서는 건 나다. 앞서가며 위험 요소는 없는지 확인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1분쯤 걸어가는데 갑자기 앞이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당장 토할 것만 같았다.

중간에 아이들을 놔두고 화장실에 갈 수는 없다. 마침 평상이 있어 아이들을 그 위로 올라가 앉게 했다. 나도 평상에 앉았다. 앉거나 누우면 조금은 가라앉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내 등 쪽에 서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의 핏기 없는 얼굴을 볼 수 없으니 다행이었다.


이 증상이 처음 시작되었던 건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쯤, 엄마와 함께 밭일을 하다가 더위에 견디지 못하고 나는 먼저 밭에서 나왔다. 길을 걸어가는데 몸이 휘청거렸다. 엄마의 눈치를 살피던 내가 조심스레 “먼저 집에 갈게요...” 말하고 나왔는데,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속이 점점 울렁거려 왔다. 토가 나올 듯해 화장실에 가야 할 것 같았다. 멀리 마을에 집 한두 채가 보였지만 걸어가기엔 멀게만 느껴졌다. 결국 나는 길가에 주저앉아 무성한 풀 위에 토해버렸다. 속을 비워내자 울렁거림이 조금은 가라앉는 듯했다. 기운 없이, 그늘에 앉아 있다가 토사물이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질 생각도 없이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한참을 그렇게 누워 있는데 어머니가 길모퉁이를 돌아왔다.


“아유, 더럽게...” 엄마가 말했다. 내가 나무 그늘에 앉아 쉬고 있는 줄 알았던 엄마는 시큼한 냄새와 더러운 토사물 옆에 누워있는 나를 향해 화를 냈다.


“더럽게 토해 놓고, 왜 거기 누워 있어.”


엄마의 목소리는 매몰찼다. 엄마가 무서워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나는 엄마의 바쁜 걸음을 따라 걸었다. 사실은 조금만 힘을 내면 그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 떨어진 나무 그늘로 옮겨 앉아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얼마나 힘들었으면 여기까지 와서 쓰러져 있었을까’ 하며 엄마가 나를 안쓰러워해주기를 바랐다. 내가 아프다는 걸 엄마가 알아주었으면 했다. 어쩌면 한마디 위로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번개 맞은 나뭇가지처럼 무참하게 꺾여버렸다.


엄마는 내가 아프다는 사실은 신경 쓰지 않고, 토사물이 퍼져 냄새나는 길가에 누워있었다는 것에만 화를 냈다. 평소에도 엄마가 화를 내면 무서웠다. 그 후로는 엄마가 화를 내기도 전에 미리 주눅이 들었다. 꾸중을 들을까 봐 내가 하는 행동을 자꾸만 점검하는 버릇이 생겼다.


집에 도착해 마루에 몸을 내던지듯 쓰러져 누워버렸다. 여전히 속은 울렁거렸고, 머리는 멍했다. 그때 아버지가 소금물이 담긴 대접을 들고 와서 내 입에 대주었다. 그 짜디짠 소금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것이 고통스러웠지만 나는 그 소금물도 벌컥벌컥 마셨다. 이상하게도 맛없는 소금물이 위로가 되었다.


차가운 마룻바닥의 기운이 등을 타고 온몸으로 전해지면서 속도 조금은 진정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 기억 속에 더 강하게 남아 있는 건 아버지의 소금물이 아니라 어머니의 역정이었다.


아픈 마음을 알아달라는 아이의 단순한 바람이었는데, 그 바람은 끝내 엄마에게 닿지 못했다. 풀밭에 누워있던 아이의 눈빛 속에 ‘엄마, 나 좀 봐줘요...’하는 말이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대신 울렁거림으로 남았다.


무더운 여름만 되면 똑같은 증상이 일어난다. 그래도 몸이 아픈 건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었지만, 마음의 울렁거림은 오래 남았다. 기대감이 무너지거나 외면당했을 때, 혹은 무시당했을 때, 그때마다 속이 울렁거리고 숨이 막혔다. 어린 날의 한 장면이, 성인이 된 지금도 불쑥불쑥 내게 영향을 미친다.


그런 증상이 찾아올 때 나는 이제 대처하는 방법을 안다. 자세를 낮추고 잠시 기다려야 한다. 앉거나 누워있으면 천천히 진정이 되어간다. 데크에 앉아 가방에서 그림책을 꺼내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는 사이 어지럼증도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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