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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나뭇가지 Feb 05. 2020

나는 엄마의 감정쓰레기통이 되기로 했다.

엄마 마음 이해하기

어머니가 서울 대학교 병원에 예약날짜가 되어 올라왔다. 우리 집은 계단이 높고 춥고 단독이다 보니 불편한 점이 많아서 동생 집으로 모셨다. 동생 집에 있다고 해서 내가 편한 것은 아니다. 내 집에 머무는 동안은 어머니와 떨어져 있으니 편한 점도 있긴 하다. 24시간 붙어있는 것보다는 덜 신경이 쓰인다.


어머니가 이제 혼자 걷기도 힘드니 누군가 옆에 있어야 한다. 동생은 피아노 학원을 하고 있어서 출근을 하니까, 출근하고 난 오후에는 내가 동생 집으로 출근을 했다. 오늘도 동생이 출근할 때쯤 가야지 하고 준비하고 있었다. 내일모레 시험도 있고 해서 나도 긴장 상태였다.





그런데 이른 시간에 전화가 왔다.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전화를 받자마자 아파 죽겠다고 했다. 짜증을 내며 거센 말을 막 해댔다. 왜 이렇게 아프냐고. 병원에서는 돈 쳐받아먹고 이렇게 사람을 아프게 하느냐고 욕도 했다. 나쁜 놈들이라고. 어젯밤에도 내내 너무 아프고 지금도 몸이 막 요동을 친다며 못 견디겠다고 했다. 지금 당장 응급실로 가야겠다고 했다.


동생 지금 있느냐고 했더니 출근해서 나가고 없다고 했다. 아까 분명 전화기를 통해 동생 목소리가 들렸는데. 알았다고 하고 동생 집으로 갔다. 동생이 문을 열어주었다. 동생은 출근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있는 동생도 없다고 하며 나를 빨리 불러 들인 어머니.


어머니가 누워 있는 침대 옆에 앉았다. 어머니는 병원 가자는 소리도 안 했다. 동생이 있는데도 없다고 했던 것에 대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저기 아프고 밤새 잠을 못 잤고 왜 이렇게 몸이 아프냐고 했다. 이렇게는 못 살겠다고 했다. 아침에 파스를 사다가 온몸에 다 부쳤는데도 아프다고 했다. 파스가 만능은 아닌데. 파스를 가지고 몸의 통증이 다 나으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것은 파스 탓, 병원 탓, 자식 탓, 다 뭔가 누군가의 탓이다. 몸이 힘들어지고 떨리는 증상이 나타나면 신경질적인 게 더 심해졌다. 짜증을 마구 냈다. 가슴이 답답하고 이런 게 싫다고 했다. 어떻게든 이걸 고쳐줘야지 이렇게해서 어떻게 사느냐고 했다.





나는 어머니가 어떤 말을 하든 듣기만 한다. 말하는 데로 받아주고 긍정해주고 다독여주고 할 뿐이다. 어머니가 뭐라 하든 난 "예~" 한다. 나는 어머니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기로 했다. 아마 어렸을 적에 외할머니도 어머니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주지 못했을 것이다. 짜증을 받아주고 화를 받아주고 감정 여과기를 거치며 긍정적인 감정으로 되돌아오는 경험을 못했을 것이다.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모든 것이 부정적인 어머니. 다 남 탓인 어머니. 그런 것을 보면 어머니의 감정을 긍정으로 바꾸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성장하면서 엄마의 엄마로부터 그런 경험을 못해봤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의 엄마가 되기로 했다. 모든 감정 쓰레기를 받아주기로 했다. 긍정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감정 여과기 역할을 해주기로 했다. 아이 양육 시기에 해야 하는 일이지만 어머니도 지금 아기나 다름없다. 툭하면 투정 부리고 짜증 내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다 밖으로 내보낸다. 조절 없이.


나도 엄마에게 그런 경험을 받아보지 못했다. 엄마가 내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줘본 적이 없다. 나도 아이들에게 못해줬다. 나도 못 배웠으니까. 아이들이 많이 커버린 지금에야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해줘야 하는 것들을 배웠다. 이것을 나는 나의 엄마에게 사용하기로 했다. 나는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다. 조금이나마 긍정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죽기 전에 얼마의 시간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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