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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는 대신 유치해지기로 했다

by 춤추는나뭇가지


초등학교 시절, 동네에는 ‘은보’라는 여자가 있었다. 골목을 지나가다 그녀를 마주치면 아이들은 장난처럼 외쳤다.


“미친년이다! 미친년이다.”


은보는 그 소리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화를 내지도 않고, 걸음을 멈추지도 않았다. 늘 혼자였고, 어디로 가는지, 무슨 말을 중얼거리는지 알 수 없었지만 거리 어딘가에 있었다.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는 짓다만 새 둥지처럼 엉켜 있었고, 사계절 내내 원색 옷을 겹겹이 걸쳐 있은 채 돌아다녔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모습이었지만, 아무도 그녀를 진심으로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어른들은 말했다.


“은보는 원래 똑똑한 여자였대. 너무 똑똑해서 머리가 돈 거지.”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몰랐지만, 나는 그걸 곧이곧대로 믿었다. ‘너무 똑똑하면 미쳐버릴 수도 있구나’. 어린 마음에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눈에 비친 은보는 무척 자유로워 보였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어디든 원하는 대로 다니고,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은보에게는 아들이 있었다. 또래 아이들은 은보를 놀리면서도, 그 아이와는 별 탈 없이 어울려 지냈다. 그 아이는 공부도 잘했고, 늘 상을 받았고,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았다. 아무도 ‘은보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그를 외면하지 않았다. 은보는 그렇게 사람들 곁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보였다.


결혼 후, 특히 우울이 깊어졌을 때, 마음속에서 설명할 수 없는 충동이 올라왔다. 차가 달리는 도로 한가운데서 소리 지르고 싶었다. 가슴 깊은 곳에 쌓인 무언가를 터트려야만 될 것 같았다. 누구에게 이해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눌려 있던 감정을 한 번에 쏟아내고 싶었다. 아이를 돌보는 일도, 사람을 만나는 것도, 숨 쉬는 일조차 버겁게 느껴졌다. 그럴 때면 은보가 자꾸 떠올랐다. 차라리 나도 미쳐버리면 편해질 것 같았다. 미쳐버리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은보처럼 되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멀쩡한 옷을 입고, 멀쩡한 얼굴로 하루를 견뎌야 했다. 그래서 더 미쳐 버리고 싶었다.


은보는 누더기를 걸치고도 거리를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도, 누군가를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의무도 없어 보였다. 해야만 할 일도 지켜야 할 체면도 없어 보였다.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은보를 ‘은보는 원래 그런 사람’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달랐다. 내 안에는 나를 감시하는 또 다른 내가 있었다. 울고 싶어도 울 수 없었고, 웃고 싶어도 마음껏 웃을 수 없었다. 항상 잘 지내는 척, 괜찮은 척, 아이들을 잘 키우는 좋은 엄마인 척해야 했다.


그러다 문득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칭찬받지 못해 잊었던 그림을 다시 그려 보았다. 잘 그리지 못해도 좋았다. 아무렇게나 선을 긋고, 유치한 색을 칠하고, 웃으며 그림을 망쳐도 괜찮았다.


유아숲에 아이들과 들어가 반나절 내내 흙투성이가 되어 놀고, 음치인 내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몸치인 내가 제멋대로 몸을 흔들며 춤을 추었다. 누구도 눈치 주지 않았고, 나도 나를 허락해 주기 시작했다.

은보처럼 미치지는 않았지만, 아주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하고 싶은 건 해보고, 하기 싫은 건 잠시 멈추는 것만으로도 삶이 가벼워졌다.


‘유치해지는 것’이 내 안의 무게를 덜어내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은보를 자꾸 떠올린 건, 어쩌면 그녀가 가졌던 그 ‘허용된 자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미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단지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거다.


화방에 들렀다. 문을 열자 물감 냄새가 스쳤다. 붓과 물감을 고르는 것만으로 마음이 조금씩 밝아졌다. 아직 아무것도 그리지 않았는데 벌써 들뜬다는 게, 이상하면서도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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