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한 땅에서 위대한 연주자가 탄생하는 방법
마지막으로 진짜 나무로 된 피아노를 만진 게 아마 작년 11월이였던 것 같다.
아는 사람 없는 이 곳에서 피아노를 치게 될 거라곤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해
악보 하나 가져오지 못했다.
이 곳에서 알게 된 이웃집 할머니께서 피아노 치고 싶을 때 언제든 자신의 집으로 오라하셔서
급한 대로 태블릿에 Imslp 어플을 다운 받아 치고 싶은 곡을 정해서 가져가곤 했다.
5월과 6월에 있는 공휴일 때마다 이웃집 할머니네 가서 피아노를 치곤 했다.
지난 주 목요일, 공휴일을 맞아 이웃집 할머니댁을 찾았다.
그 날은 피아노를 치러 간 세번 째 날이였다.
연습했던 곡 중엔 지난 번에 쳤던 곡도 있었고, 할머니네서 처음 치는 곡도 있었다.
발코니를 활짝 열고, 텃밭에 가신 할머니가 집에 안 계신 동안 한 두 시간 반 정도 쳤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시고 나서도 꽤 오래 연습을 했는데, 연습을 마치고
할머니께서 수다 타임을 제안하셨다.
우리나라와 독일의 차이점,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교육과 사회 시스템 등등 이런 저런 질문을 던지시더니,
궁금하셨다고 한다.
오페라 극장이던 오케스트라던 한국 사람이 없는 곳이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유럽 음악을 배운 건지,
유럽 음악에 담긴 감성을 어쩌면 그렇게 잘 표현하는 지...
그러게나 말이다.
5월 초부터 이 곳 하이덴하임에서 열리는 오페라 축제 공연기획부에서 실습을 하고 있는 나는
일하면서 심심치 않게 한국인 이름들을 발견하곤 했다.
공연하러 오는 오케스트라 단원 명단,
노래하러 오는 솔리스트 명단,
한국인 한 명씩 발견 할 때면 괜스레 맘이 뿌듯했다.
할머니께는 우리나라도 전통음악이 있고, 학교에서 배우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악보 시스템과 음악이론을 익혀야 하기에
서양 음악 (유럽 음악)도 필연적으로 다뤄진다고 설명해드렸다.
그리고 더불어 음악은 그 뿌리가 유럽이건 아니건
결국 인간이 가진 하나의 언어이기 때문에 (menschliche Sprache)
느끼고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이 가능한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현지 시간으로는 어제 임윤찬 군이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쿨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다.
쇼팽 콩쿨 조성진, 얼마 전 퀸 엘리자베스 최하영에 이어
또 하나의 우승 소식.
이 쯤 되면 정말 사람들이 궁금해 할 것도 같다.
이 작은 나라에 음악을 잘하는 사람이 어찌 이렇게도 많은 것인가.
임윤찬 군의 파이널 무대도 봤고, 인터뷰 기사도 봤는데,
앞으로가 기대되면서도 어린 나이에 다가올 변화들을 잘 감당해낼 수 있을 지 우려도 된다.
(물론 내가 뭐라고 우려를 할까마는...;)
내가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게 맞다면
한 피아니스트가 어느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연주자들이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 되었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콩쿨만 봐도 결선 진출하는 한국인들 정말 많다.
그런데 문제는 그 상향 평준화 된 연주자들을 다 받아줄 무대와 일자리가 없다는 사실이다.
음악을 배우는 일은 사실 많은 인내와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효율이 중시되는 시장 경제 체제, 그리고 입시 대비 다른 과목들의 중요성을 생각하자면,
예체능 교육은 우선순위에서 쉽게 뒤로 밀려나곤 한다.
계속 좋은 음악가들이 나오려면,
그리고 좋은 음악가들이 함께 공생해가려면
경쟁하고 비교하고 순위를 매기기보다
끈기와 자신만의 감성과 표현을 길러주는 음악 교육이 사회에 깊이 자리 잡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글의 흐름과 논리가 너무 비약일 수 있으나
꼭 콩쿨에서 1등 해야만 위대한 연주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기에 몇 자 끄적여 본다.
피아노를 얼마 배우지 않은 아이가 열심히 연습해서 한 곡을 무대 위에서 연주해도
충분히 옆에 있는 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그런 감동과 아름다움을 사람들이 잘 발견하고 누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