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수상) 케데헌, 금빛으로 빛나다

수상 소식에 벅차올라 드디어 쓰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리뷰

by 김경리

(스포주의)

작년에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본 이후 주변에 적극 권하고, 올라오는 거의 모든 관련 인터뷰와 영상을 챙겨보며 응원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영어 공부 삼아, 다른 하나는 각자 오랜 어려움과 좌절을 딛고 세상에 눈부시게 피어난 연꽃 같은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듣고 싶었다.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인터뷰들)

'KPop Demon Hunters' cast | Variety

Animators React to KPop Demon Hunters

Maggie Kang & Chris Appelhans Interview

Anderson .Paak Meets Rei Ami

Ep. 240: EJAE

Audrey Nuna


내가 케데헌을 추천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명작이니까. 어릴 때 읽은 명작을 한참 뒤에, 어느 정도 세상 풍파를 겪은 뒤 다시 볼 때 우리는 숨어있던 메시지와 진리를 발견하게 되는데 케데헌도 이러한 특징이 있다고 느꼈다. 어린이가 보기에 또 어른이 보기에 각각의 눈높이, 즉 레벨에 상응하는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마치 <어린왕자>처럼.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그 유명한 '골든'이 나올 때도, 사자보이즈의 '유어아이돌' 무대도 아닌 바로 클라이맥스 부분에 주인공 루미와 귀마가 나눈 대화다.

(아래는 작년에 N번째 관람하며 집에서 찍었던 장면)

'이제 혼문은 깨졌다.'라는 귀마의 말에 루미가 답했다.

'맞아.' 잠깐의 정적 후에 나온 이 다음 대사에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우리가 새로 만들면 돼.


유일한 가족이라 믿었던 사람에게 실망하고, 친구들도 잃고, 평생 숨겨왔던 약점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 절망적인 순간.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어둠에서 걸어 나오는 힘, 그 강인함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귀마와의 대화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스스로를 속이고 친구들을 속일 때는 온전히 알 수 없었던 자신을, 역설적이게도 악당의 말에 하나하나 껍질을 부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어쩌면 귀마는 꽤 좋은 카운슬러인지도.) 내가 가진 자랑스러운 모습, 감추고 싶은 모습, 약점과 결점까지 모두 포함한 것이 '나'라는 존재다. 어느 한 부분만 떼어놓고 볼 수는 없다. 나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거기에서부터 나아가고 성장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게 아닐까.


나를 왜곡하지 않고 제대로 보는 일, 즉 '받아들임'이 놀라운 점은 이 시각을 다른 존재에게도 적용할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고뇌하고 방황하고 아파하듯, 타인도 같은 사람이라 그럴 수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를 인정했듯이 다른 존재를 수용할 수 있다. 이 받아들임은 달리 말해 포용이며 사랑이다. 내가 보고 싶은 어느 한 부분만을 좋아하는 것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볼 수 있을까? 나를 분명하게 알고 받아들일 때 나를 정말로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 루미가 총체적으로 절망적인 상황에서 오히려 땅을 딛고 일어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사랑이다. 나의 한계를 바라보고 그것을 뛰어넘은 것이다. 나를 향한 사랑의 힘으로, 귀마에게서 무고한 이들을 구하겠다는 마음으로, 즉 친구들과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힘으로. (그 과정에서 물론 진우도 큰 역할을 했다... 눈물...)


또 하나 특별히 기억에 남는 건 후반부에 조이와 미라, 매니저 바비의 머릿속에 들렸던 악의 속삭임이다. 그건 귀마의 목소리가 아니고 바로 그들 자신의 목소리였다. 살면서 누구나 종종 듣게 되는 스스로를 비방하고 몰아세우는 내면의 부정적인 목소리, 자주 쓰이는 영어 표현인 '내면의 악마(inner demons)'가 어쩌면 귀마가 상징하는 바라고 느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주인공의 성장과 모험, 우정, 한국의 과거와 현재 문화를 골고루 담고 있는 멋진 작품인 동시에, '마음'에 관한 영화이다. 고뇌에 빠진 사람들의 마음을 밝힐 수 있는 한 편의 아름다운, 존재론적이고 심리치료적인 생각보다 꽤나 심오한 영화다. 제목의 진입장벽에 막혀, 혹은 유명세에 질려 보고 넘어가기엔 아까운 명작이다. 게다가 노래들이 명곡이고(온갖 상을 휩쓸 만큼) 중간중간 매우 웃기기까지(바비, 더피, 서씨...) 한다.

다시 케데헌의 오스카 수상 관련 나의 소감으로 돌아가서...

미국 교환학생 시절 아무도 한국이 어딘지 모를 때, 네가 자란 서울은 어떤 도시냐는 친구의 질문에 전통적인 건축과 현대의 고층 빌딩이 어우러진, 도시를 가로지르는 세상 모든 강 중에 가장 큰 한강이 있고, 산이 많이 있는 아름다운 곳이라고 설명했던 게 기억난다. 한식이 너무 그리워서 기숙사 공용 공간에서 컵라면을 먹을 때 복도 저쪽 방에서 누군가 코를 막고 나오며 이게 대체 무슨 냄새냐고 물어봤던 일도.

아마 요즘이었다면 그 라면 나도 좀 먹어보자고 했을지도. 그때는 몰랐다. 우리 라면과 김밥이 이토록 유명해질 줄은. 그리고 한국 전통과 현대 문화를 담은 애니메이션이 전 세계에 흥행하고 오스카를 받을 줄은. 이젠 서울의 풍경이나 우리의 문화를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세계인들이, 아이들까지 알게 되었다. 한국어 가사를 부르게 되었다. 이것이 문화의 힘이구나. 선조들이 피땀 흘려 지켜온 우리말과 문화가 세상에 '금빛'으로 빛나고 있다.

이런 날이 오는구나... 김구 선생님...!


P.s. 우리도 미국처럼 싱어롱 극장 개봉 좀...


제 모든 글, 그림, 사진, 영상 자료의 AI 활용 및 학습을 엄격히 금지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내가 미생을 좋아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