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책에는 ‘함께 만든 이’들의 이름이 없을까

활자의 신전, 주연의 이름 뒤에 가려진 조연들의 기록

by 인문 도슨트

당신의 서재에 은폐된 지적 자본의 우아한 폭력:

활자의 신전에서 지워진 그림자 노동이 남긴 서늘한 침묵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기 전, 우리는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엔딩 크레딧을 마주합니다. 단 몇 초의 장면을 위해 고군분투한 막내 스태프의 이름까지 촘촘히 기록하는 이 행위는, 창작이 결코 혼자만의 유희가 아닌 '거대한 협업의 산물'임을 증명하는 경건한 의식입니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연주자와 엔지니어의 이름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것은 이제 상식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유독 책이라는 매체만은 이 상식 밖의 '기묘한 침묵'을 고수합니다. 책장 어디에도 문장을 세공한 편집자, 물성을 구현한 디자이너, 오류를 잡아낸 교정자의 이름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저자의 성명과 출판사의 로고만이 견고한 권력을 과시할 뿐입니다. 우리는 이를 '출판계의 관행'이라 부르지만, 그 실체는 다릅니다. 그 이면에는 지적 노동의 가치를 오직 저자 한 명에게만 몰아주려는 우아하고도 서늘한 선민의식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 배제의 풍경은 거대한 대성당을 지어놓고 첨탑 꼭대기에 설계자의 이름만 새기는 오만함과 닮아 있습니다. 정작 무거운 돌을 나르고 모르타르를 바른 석공들의 헌신은 지하 토대 속에 영원히 매장해버리는 식입니다. 출판 산업은 책을 마치 '천재적 개인의 순수한 정신적 분비물'인 것처럼 포장합니다. 투박한 원석이 매끄러운 책으로 세공되기까지 수많은 전문가의 손길이 닿지만, 최종 결과물은 그 협업의 흔적을 말끔히 지운 채 작가라는 '단독 주연'만이 빛나는 무대로 전시됩니다.


발터 벤야민이 아우라의 붕괴를 예견했음에도, 출판계는 여전히 '저자'라는 신성한 환상을 사수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미셸 푸코의 관점에서 볼 때, 협업자의 이름을 지우는 행위는 단순한 지면 부족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담론의 권력을 독점하려는 의도적인 장치입니다. 지식 생산은 대중문화와 격이 다르다는 낡은 우월의식이 작동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들은 실무적 노동을 은폐함으로써, 지식 사회 특유의 배타적 성벽을 더욱 공고히 쌓아 올립니다.


노동의 가치를 설파하고 평등을 외치는 가장 민주적인 매체가, 정작 제 몸을 만드는 구조 속에서는 가장 봉건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점은 지독한 아이러니입니다.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빛나는 문장들이, 정작 자신을 빚어낸 동료들의 이름은 지워버린 채 작가라는 화려한 조명 아래서만 춤을 추고 있습니다. 지성의 전당이라는 자부심이 타인의 헌신을 투명하게 인정하는 보편적 상식을 가로막는 오만함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책등에 새겨지지 못한 이름들의 침묵은 이 지적 생태계가 얼마나 허구적인 권위 위에 서 있는지를 보여주는 균열의 징후입니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보이지 않는 손길을 계속 부정한다면, 활자의 신전은 결국 시대의 감각과 격리된 고립된 섬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한 명의 천재와 독대하는 일이 아닙니다. 수많은 이의 치열한 노동이 축적된 거대한 광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입니다. 이제 우리도 책의 마지막 장에, 혹은 저자의 이름 곁에 이 모든 여정을 함께한 공동 작업자들의 이름을 나란히 새겨 넣는 변화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작가라는 이름에만 쏠려 있던 조명을 조금 나누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자를 깎고 다듬은 이들을 함께 비출 때 비로소 책이라는 세계가 온전한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은 아닐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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