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고 고유한 세계의 섬

이탈리아 시칠리아, 일본 오키나와

by 지리는 강선생

2부에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화산섬, 제주도와 울릉도의 고유한 자연과 문화를 살펴보았습니다. 2부의 마무리는 시야를 넓혀 지리학적 고립과 교류가 만들어낸 독자적인 세계의 섬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대륙과는 다른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을 일구어온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와 일본의 오키나와가 그 주인공입니다.



시칠리아: 지중해의 심장이자 문명의 교차로


이탈리아 반도 남쪽 끝에 위치한 시칠리아(Sicilia)는 마치 우리나라의 제주도를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시칠리아의 면적은 약 2만 6,000㎢로 제주도의 14배에 달하며, 인구는 500만 명이 넘는 거대한 섬입니다. 시칠리아를 이해하는 첫 번째 단서는 섬 동쪽에 우뚝 솟은 에트나(Etna) 화산입니다. 해발 3,300m가 넘는 에트나 화산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활화산으로 섬의 지형뿐만 아니라 경제와 문화의 근간을 형성했습니다.

에트나 화산.jpg


화산은 파괴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축복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수천 년 동안 분출된 화산재는 시칠리아의 토양을 극도로 비옥하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온난한 지중해성 기후가 결합하면서 시칠리아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제국의 곡창지대’로 불렸습니다. 비옥한 화산 토양은 밀, 올리브, 토마토, 레몬, 포도 등 고품질 농산물을 생산하는 기반이 되었고, 이는 이탈리아 내에서도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하는 시칠리아 미식 문화를 탄생시켰습니다. 쌀을 튀겨 만든 아란치니(Arancini)나 신선한 해산물을 곁들인 파스타는 섬이라는 환경과 풍요로운 농업 자산이 결합한 음식입니다.

시칠리아에서 유래된 아란치니.jpg
해산물이 풍부한 시칠리아 파스타.jpg


역사적으로 시칠리아는 지중해 한복판이라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한 탓에 끊임없는 침략과 식민 지배의 역사를 겪었습니다. 고대 페니키아와 그리스, 로마를 비롯하여 이후 이슬람, 바이킹, 스페인 등 수많은 세력이 이 섬을 거쳐 갔습니다. 이렇게 문명의 교차로에 위치한 시칠리아는 섬 곳곳에 그리스 신전과 이슬람 양식의 건축물이 공존하는 독특한 경관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잦은 외부 세력의 지배는 주민들에게 국가 권력에 대한 깊은 불신을 심어주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가족과 지역 중심의 강력한 결속력을 낳았고, 이것이 변질되어 발생한 것이 바로 시칠리아의 ‘마피아(Mafia)’입니다. 마피아는 본래 외세의 압제로부터 지역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한 자구책에서 시작되었으나, 점차 기업형 범죄 조직으로 진화했습니다. 영화 <대부>의 배경이 된 시칠리아는 고립된 섬 사회가 외부 세계에 대응하며 만들어낸 독특하고도 어두운 장소성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시칠리아는 풍요로운 미식과 어두운 역사의 흔적이 공존하는 지중해의 독특한 섬입니다.



오키나와: 류큐의 혼과 에메랄드빛 국경


태평양 서쪽 끝에는 우리의 제주도와 닮은 듯하면서도 전혀 다른 역사를 품은 오키나와(Okinawa)가 있습니다. 일본 최남단 오키나와현의 중심이 되는 이 섬은 면적 약 1,200㎢로 제주도보다 조금 작습니다. 하지만 오키나와가 갖는 역사와 지정학적 가치는 그 크기를 압도합니다.


오키나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류큐국(琉球國)'이라는 독립된 역사를 먼저 알아봐야 합니다. 이곳은 19세기 후반 일본 제국에 병합되기 전까지 조선, 명나라, 동남아시아와 활발히 교류하던 해상 무역 국가였습니다. 류큐국은 지리적으로 일본 본토보다 오히려 대만이나 중국 대륙과 더 가까웠기 때문에 오키나와의 전통문화는 일본식이라기보다 범아시아적인 색채가 강합니다. 붉은 기와지붕, 마을 입구의 수호신 시사(Shisa), 독특한 뱀가죽 현악기 산신(Sanshin)은 류큐 왕국이 꽃피웠던 독자적인 문명의 유산입니다.

해상무역왕국 류큐국.png


오키나와의 자연은 아열대 기후(쾨펜의 기후구분으로는 Cfa)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에메랄드빛 산호초 바다와 야자수가 어우러진 경관은 이곳을 ‘아시아의 하와이’로 불리게 했습니다. 온난한 기후 덕분에 파인애플, 사탕수수, 커피 등 일본 본토에서는 재배하기 힘든 열대 작물들이 이곳의 주력 특삭물입니다. 이러한 이색적인 남국의 경관은 오키나와를 일본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탕수수 밭을 가로질러 들어선 미군 기지라는 극단적으로 대조된 풍경을 보여줍니다.


오키나와의 현대사는 전쟁과 부대(Base)라는 단어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오키나와는 제2차 세계대전(태평양 전쟁) 당시 지상전이 벌어졌던 비극의 장소였고, 전후 미군정 시기를 거치며 미군의 동북아시아 군사적 요충지로 재편되었습니다. 현재까지도 일본 내 미군 부대의 약 70%가 오키나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는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든든한 방패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지만, 섬 주민들에게는 일상적인 소음과 환경 오염, 그리고 각종 범죄라는 억압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오키나와 미군기지.jpg


오키나와의 음식 문화인 ‘참푸르(Chanpuru)’는 '섞다'라는 뜻으로 이와 같은 오키나와의 운명을 상징합니다. 류큐의 전통 식재료에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통조림 햄(스팸) 등이 섞여 만들어진 요리들은 외부의 침입과 변화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소화해낸 오키나와 사람들의 생존 전략을 보여줍니다. 이는 한국의 의정부, 동탄의 부대찌개의 탄생과 그 결을 같이 하는 음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키나와의 음식문화 참푸르.jpg


제주도가 '제주 4·3'이라는 근현대사의 아픔을 품고 있듯 오키나와 역시 아름다운 바다와 천혜의 자연에 가려진 전쟁과 부대라는 무거운 역사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 아픔을 특유의 공동체 정신인 ‘유이마루’와 평화를 향한 강한 의지로 승화시켰습니다. 우이마루는 '서로 돕는 순서가 돌아온다'는 의미로 일을 함께 나누고 나중에 보답하는 오키나와 특유의 공동체 정신을 상징합니다. 이처럼 일본 본토와는 다른 자신들만의 ‘오키나와 정체성’을 확고히 지켜나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