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운을 담은 그날들의 기록
글 / 김석용
고요한 오후, 창가에 앉아 있으면 문득 바람이 찾아옵니다. 소리 없이 다가와 커튼을 살짝 들어 올리고, 책장을 넘기며, 머리카락을 간질입니다. 그 바람 속에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멀리서 출발해 이곳까지 도착한, 보이지 않는 여행자의 발자취가 스며 있습니다.
바람은 계절의 전령사입니다. 봄바람은 꽃향기를 품고 와서 겨우내 얼어붙었던 마음을 녹입니다. 여름바람은 푸른 잎사귀의 속삭임을 전하며 생명의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가을바람은 익어가는 곡식의 소식을 알리고, 겨울바람은 쉼의 시간이 왔음을 알립니다. 각각의 바람은 저마다의 온도와 향기, 그리고 이야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기억 속 따뜻한 순간
바람이 불 때마다 떠오르는 기억이 있습니다. 할머니 집 마루에 앉아 부채질하시던 할머니의 손길, 학창시절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리던 그 날의 상쾌함, 첫 여행지에서 맞은 낯선 바람의 설렘. 이런 순간들이 바람결에 실려 현재로 돌아옵니다. 시간은 흘렀지만, 그때의 감정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역 계단을 오르며 만나는 아침 바람은 하루의 시작을 알립니다. 점심시간 빌딩 숲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잠시나마 답답함을 씻어줍니다. 퇴근 후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스치는 저녁 바람은 수고했다고 토닥여줍니다. 바람은 언제나 우리 곁에서 조용히 위로를 건넵니다.
바람은 말이 없지만 많은 것을 전합니다. 나뭇잎을 흔들며 자연의 언어를 들려주고, 구름을 밀며 하늘의 이야기를 그려냅니다. 빗방울을 몰고 와 대지를 적시며, 씨앗을 날려 새로운 생명의 가능성을 퍼뜨립니다. 우리가 귀 기울이면, 바람은 늘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삶은 늘 바쁘고 시끄럽습니다. 하지만 잠시 멈춰 서서 바람을 느껴보면, 마음속 깊은 곳의 고요를 만날 수 있습니다. 바람은 우리에게 숨 쉴 공간을 만들어주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줍니다.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단순한 존재의 기쁨을 느끼게 합니다. 그 고요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신을 마주합니다.
바람은 멈추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역풍을 맞기도 하고, 때로는 순풍을 타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바람과 함께 흐르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 나아갈 방향을 찾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오늘도 바람은 우리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려 불어옵니다.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준비가 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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