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빚어낸 지혜와 사랑의 기록
글 / 김석용
할머니 댁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맡게 되는 건 흙냄새입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게 그 향은 늘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새벽 다섯 시면 어김없이 정원으로 나가셨습니다. 허리가 구부정해도, 무릎이 아파도 하루도 거르지 않으셨죠.
"식물도 사람처럼 관심받고 싶어 한단다." 할머니의 말씀이었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식물들과 대화하는 할머니를 보며 진정한 돌봄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꾸준함이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작은 습관의 반복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봄이 오면 할머니는 씨앗을 심으셨습니다. 여름엔 잡초를 뽑고 물을 주셨죠. 가을엔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고, 겨울엔 다음 해를 준비하셨습니다. 할머니에게 계절은 달력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급하다고 봄에 가을 열매를 바라면 안 된다." 할머니의 철학이었습니다. 기다림의 미학을 아는 사람만이 진짜 결실을 맛볼 수 있다고 하셨죠. 요즘 뭐든 빠르게 해결하려는 세상에서 할머니의 가르침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할머니는 작은 씨앗 하나를 심을 때도 정성을 다하셨습니다. 손바닥만 한 화분에서도 생명이 자랄 수 있다고 믿으셨죠. 그 믿음이 정원을 가득 채운 풍성한 결실로 이어졌습니다.
"씨앗은 땅속에서 기다릴 줄 알아야 싹을 틀 수 있단다." 할머니의 말씀처럼 모든 시작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보이지 않는다고 포기하면 안 되죠. 땅속 깊은 곳에서 뿌리를 내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할머니 정원에서 자란 채소들은 혼자 드시지 않았습니다. 이웃들과 나누고, 손주들에게 주며 기뻐하셨죠. 수확의 계절이면 할머니 댁은 작은 축제가 되었습니다.
"혼자 먹는 밥보다 함께 나누는 한 끼가 더 맛있다." 할머니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정원에서 기른 것들을 나누며 사람들과의 관계도 키워나가셨죠. 진정한 풍요는 혼자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누리는 것이라는 걸 보여주셨습니다.
할머니가 떠나신 후에도 정원은 남아있습니다. 할머니 손길이 닿은 나무들이 여전히 자라고 있죠. 그곳에 서면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서두르지 마라, 자연의 시간을 따라가거라."
할머니의 정원은 단순한 텃밭이 아니었습니다. 삶의 지혜가 자라는 교실이었죠. 꾸준함, 인내, 나눔, 기다림의 소중함을 가르쳐주는 살아있는 책이었습니다. 이제 내가 그 가르침을 실천할 차례입니다. 작은 화분 하나부터 시작해서 할머니가 심어주신 사랑의 씨앗을 키워나가려 합니다.
진정한 성장은 조급함이 아닌 꾸준한 돌봄에서 나온다는 것, 그리고 혼자가 아닌 함께할 때 더 큰 기쁨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을 할머니의 정원에서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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